“투표함 보관의무 없는데요”…핵심증거 폐기한 선관위가 한 말

조병연 기자(cho.byeongyeon@mk.co.kr), 전경운 기자(jeon@mk.co.kr) 2026. 6. 1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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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선관위 등 7곳 압수수색
투표용지 보관함 이미 폐기돼
증거인멸 우려 커져 강제수사
공무원의 선거 관여 여부와
용지 부족 방치에 수사집중
노태악·허철훈 출석 가능성
6ㆍ3 지방선거 투표지 부족사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 관계자가 11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선거국장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11일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공식 출범하기 이전임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7곳을 압수수색한 배경에는 선관위의 증거 인멸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합수본은 이날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 분석을 통해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관위 공무원들의 고의에 의한 것인지 입증에 나설 방침이다.

이날 오전 중앙선관위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합수본은 중앙선관위·서울시선관위·각 지역 선관위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무유기 등 혐의를 적용했다. 공무원의 선거 관여가 이뤄져 선거의 자유를 방해했는지, 투표용지 부족 사실을 알고도 이를 방치했는지 파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날 서울동부지법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잠실7동 제2투표소 현장 검증을 진행하며 핵심 증거로 꼽히는 투표용지 보관함 확보에 나섰지만 이미 폐기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증거인멸 우려가 커졌다. 선관위는 “법적으로 보관 의무가 없다”고 설명했으나, 합수본은 투표용지 보관함 이외의 증거들도 훼손이나 폐기될 우려가 크다고 보고 선제적인 강제수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전반에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입증하기 위해선 투표용지 인쇄 비율이 유권자 대비 50%로 낮춘 배경과 이러한 결정을 선관위 사무총장 임의로 행한 배경을 알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날 합수본은 서울시선관위 사무실에서 투표용지 인쇄 계획서와 관련 회의록, 예산서, 업무일지, 상황보고서, 투표록, 지방선거 관련 CD 자료 등을 확보했다. 또한 이번 선거와 관련이 있는 각 지역 선관위 사무처장 등 간부와 실무 직원의 PC 파일에 대한 포렌식 분석도 진행했다.

공직선거관리법 위반과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선관위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인지했음에도 고의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본투표일 오후 2시부터 투표소 일선 공무원들은 단체 대화방을 통해 투표용지 부족을 호소했는데, 이날 투표용지 배포가 지연된 전말을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수사에 따라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 위원장과 허철훈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등 선관위 주요 인물이 경찰에 연쇄 출석할 가능성도 있다. 노 전 위원장과 허 전 사무총장은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5일 사의를 표명하고 대법원장은 사흘 만인 8일 이를 수용했다.

선관위 운영의 문제점도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선관위가 올해 2월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이광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에 따르면 중앙과 시·도, 구·시·군 선관위까지 총 공무원 정원이 3034명이다. 그런데 이번 6·3 지방선거에 동원된 선거관리 인원은 전국적으로 41만명에 달했다. 선관위 직원 3000명이 41만명이 동원된 선거 투·개표소 상황을 관리·통제했어야 하는 것이다.

소수의 인원으로 전국 1만4288곳의 투표소와 257곳의 개표소를 실수 없이 통제·관리하기 위해서는 엄격하고 구체적인 관리 지침과 매뉴얼이 필수였지만 위기대응 체계가 사실상 없었던 것이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불러온 근본적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다.

조현욱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전날 첫 회의 후 “투표용지 부족 시 선관위 대응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선관위 역시 사태 발생 원인으로 인쇄 비율 부적정, 상황 판단 부족, 가이드라인 부재, 위기대응 체계 부재를 제시했다.

2026 지방선거 투표지 부족사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 관계자가 1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종합상황실에서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25개구 선관위의 투표용지 인쇄 축소 결정을 전수조사한 결과 인쇄율을 50%로 낮춘 송파·광진구는 위원회 회의를 개최하지 않고 서면 의결로 대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파구와 광진구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을 넘어 투표 중지 사태가 발생한 곳이다.

선관위 개혁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되는 선관위원장의 상근직화는 이미 예전부터 국회 논의가 거듭돼왔지만 선관위는 이에 대한 입장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용빈 전 선관위 사무총장은 지난해 3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선관위원장 상근직화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말에 “일단 저희들 입장에서는 동의한다는 의견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위성곤 전 민주당 의원이 한 달 뒤인 지난해 4월 발의한 위원장 상근직화 법안에는 “중앙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며 입장을 뒤집었다.

위철환 선관위 위원장 직무대행은 이날 ‘국민 여러분께 올리는 말씀’을 통해 이번 사태가 발생한 배경을 설명했다.

위 직무대행은 “송파구의 전체 투표율은 65.8%로 실제 송파구 전체로 보면 투표용지가 4만2000여 매가 남았지만 송파구 내 146개 투표소별 투표용지 분배에 실패한 것이 뼈아픈 실수였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참담한 마음으로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거듭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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