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하는 아빠, 출근하는 엄마

매일 아침 여섯시 반 쯤 나는 눈을 뜬다. 아들과 놀아주던 아내가 출근을 하면 나는 아들 밥을 차려 먹인다. 등원시간까지 간단하게 놀아주다가 옷을 갈아입히고 차로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집에 돌아와 운동을 하고 나도 비로소 일을 시작한다. 내 직업은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일이다. 집이나 작업실 컴퓨터에 앉아 한창 활자와 씨름하고 기타를 뚱땅거린다. 그러다 오후 세 시 반 쯤 되면 하던 일을 내려놓고 아들을 데리러 간다. 하원 뒤에는 같이 놀이터나 키즈카페에 가서 또다시 놀이 시간을 갖고, 아내가 돌아오면 나는 다시 저녁 준비를 한다. 밥을 먹고 조금 놀다가 아들이 잠자리에 들면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거나, 낮에 하던 일을 마무리하다 잠이 든다.
어려서 매일 듣던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라는 노랫말은 우리 아들에게는 조금 의아할 수 있는 이야기다.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아니면 자는 동안에는 아빠도 일을 하지만 아빠가 출근하는 모습은 보지 못하기에 아들은 그런 사실을 알 수 없다. 공연이나 강연을 하러 가는 날이 있지만 정기적인 일은 아니고, 일하러 가는지 놀러 가는지도 알 턱이 없다. 아빠는 바깥 일 하는 사람이 아니고 밥을 차려 먹여주고 놀아주는 사람. 주방놀이 장난감들 앞에서 냄비와 국자 장난감을 가리키며 '아빠, 아빠' 하고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노래 가사에서처럼 매일 아침 뽀뽀를 해 주고 출근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엄마다.
이제는 성역할의 구분이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다. 집안일이든 바깥일이든, 상황이 되고 적성에 맞는 사람이 하면 된다. 프리랜서 창작자로 살고 있는 나는 소득이 들쭉날쭉한 대신 시간적인 여유가 남들보다 많다.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해야 하는 아내 대신 등원과 하원을 맡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집안일은 적성 따라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청소나 빨래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 지저분하다는 것을 발견하는 감각이 예민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나는 그것이 좀 부족한 편인데 다행스럽게도 성격이 깔끔한 아내가 청소 빨래를 대부분 해결하곤 한다. 그 대신 나는 나름 요리에 소질이 있다. 대단히 화려한 음식은 잘 하지 못해도 집에서 흔히 먹는 음식 예닐곱 가지 정도는 돌아가며 차려낼 수 있는 수준이다. 자연스럽게 이유식부터 지금 먹는 유아식까지 아들의 식사도 내가 맡게 되었고, 주방 살림을 맡고 있으니만큼 설거지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갖게 되었다.

그런데 아기가 보는 그림책 속에는 아직까지 남녀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던 전 세대의 잔재가 남아 있다. 아빠는 이대팔 가르마에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있고, 엄마는 앞치마를 매고 국자나 뒤집개 같은 것을 들고 웃고 있다. 화분에 물을 주거나 아이와 캐치볼을 해 주는 가정적인 아빠도 나오지만 유독 앞치마와 국자는 엄마의 아이템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그림책 속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는 엄마의 모습도 통 본 적이 없다. 과거보다 많이 개선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질 부분이 아직 분명히 존재한다.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책 속에 나오는 모습과 다른 부분에 대해 아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잘 설명해줄 자신은 있다. 다만 그런 걸 보면 밥 하는 아빠도, 출퇴근 하는 엄마도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는 이야기 정도만 하고 싶다.
시인이자 싱어송라이터로 사는 동시에 육아하는 아빠, 밥 하는 아빠로 사는 삶은 쉽지만은 않다. 낮에 일을 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앉자마자 바로 하원을 하러 갈 시간이 찾아오는 느낌이고, 밤에 일을 하려고 하면 졸음이 쏟아지곤 한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다. 어린이집에서 나오며 환하게 웃는 아들을 반겨주는 일, 놀이터와 키즈카페에서 신나게 뛰놀며 나날이 커 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그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희열이다. 한참을 고민해서 장을 보고 정성스럽게 만든 반찬을 앞에 두고 밥을 뚝딱 비우는 아내의 모습과, 좋아하는 반찬을 입에 넣고 신이 나서 짧은 두 팔을 파닥거리는 아들의 모습은 밥 하는 아빠만 볼 수 있는 특권이다. 이처럼 노력에 비해 과분한 보상들을 혼자 받고 있노라면 내가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해내며 살아가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곤 한다.
아들도 잘 키워내고 밥도 잘 해 먹이면서 훌륭한 시인, 대단한 싱어송라이터까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것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나의 꿈이다. 그렇지만 만약에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실패한 인생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다른 친구들이 우리 아버지는 판검사입네, 우리 아버지는 의사입네 할 때 우리 아들은 "야, 그래도 우리 아빠가 손맛 하나는 기가 막혀" 하고 자랑할 수 있다면 내 인생도 낙제는 아니리라. 며칠 전에는 아내에게 이런 말도 했다. 아들이 나중에 독립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고단할 때 "아, 집에 가서 아빠 밥 먹고 싶다." 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나는 이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선 내 모습만큼이나, 그리고 직접 쓴 책을 들고 연단에 선 내 모습만큼이나 냄비와 국자를 쥔 내 모습도 사랑한다고.
*칼럼니스트 강백수(인스타그램 baeksoo_kang)는 200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0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6시에 잠들던 예술가로 살다가 이제는 6시에 일어나는 아빠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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