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화장실(化粧室)과 화장장(火葬場), 같은 듯 다른 역정

지난 50여 년 우리 사회는 참 많이 변했다. 우리 생활 중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을 꼽으라면 바로 화장실과 화장 문화도 뺄 수 없을 듯하다. 먼저 변소 뒷간은 화장실로 환골탈태했다. 거의 무에서 무려 95%로 폭증한 화장 문화는 스마트하게 변신한 화장장과 새로 탄생한 납골당이 자리 잡았다.
이 둘 다 경제발전과 농경사회에서 도시 산업사회로의 이행의 결실이라는 점, 그리고 과거에는 모두 으슥한 후미진 곳에 두었다는 것,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었다는 점에서 같았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는 처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해갔다.
참 곤궁했던 지난 시절, 도시 달동네 등 영세 서민은 재래식 변소마저 집집이 두기 어려웠다. 몇 가구 또는 몇십 가구가 공동변소를 두곤 사용하는 게 예사였다. 도시 서민을 위한 최초의 공동주택인 시민아파트에는 복도 가운데 공동 화장실이 있었다. 사람의 생리상 아침이면 공동 화장실 앞에 줄을 서던 모습이 일상이었다. 정 사정이 급한 이는 후미진 곳이나 옆 동네로 달려가기도 했다. 우리네 삶이 참 팍팍하던 시설의 처절한 풍경이었다.
상하수도망이 점차 완비되어 가고, 정화조가 보급되자 재래식(별명 '푸세식') '변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택이든 아파트든 소중한 대접(?)을 받아 이름부터 고급스럽게 '화장실'이 되었다. 탈 바꾼 화장실이 끝내는 주거 안방 깊숙이 침투했다. 이젠 집안 화장실 숫자로 부의 척도를 가릴 정도로 처지가 상승했다. 나라와 국민 경제력 증대와 기술 발전 덕분이었다.
화장터 변모는 좀 다르게 진행되었다. 사회가 좀 나아지자, 화장터라는 이름부터 바꾸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아직 이건 현재 진행형이다. 화장장 반대운동 현수막이나 유인물에는 꼭 '화장터'라고 비하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진전은 벽돌 화장아궁이(火葬竈)를 버리고 화장하는 기계 화장로(爐)로 바꾸었다. 겉모습도 최신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했다. 비리하고 매캐한 냄새가 나던 벽돌 가마, 시커먼 연기와 검댕을 내뿜던 높은 굴뚝이 사라졌다. 가족 잃은 서민들의 아픈 가슴을 더 쓰리게 했던, 유골 빻던 쇠 절구통도 노잣돈 타령도 자취를 감추었다.
모든 기술 분야가 그렇듯 현대식 화장로 기술은 애초 일본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었다. 그런데, 21세기 초입 우리 것이 일본은 물론 서양 기술 강국을 따라잡았다. 국산 스마트 화장로는 화장장 도착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화장이 진행된다. 화장로 배출가스 허용 기준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까다롭다고 할 정도까지 진전했다.
오늘날 국산 스마트 화장로는 전혀 완전 재연소 기능의 가스난로, 고성능 청소기 먼지통, 디젤자동차 요소수 촉매 장치, 고도 공기청정기 등을 이어놓은 것보다 월등히 우수한 배출가스 정화설비가 붙어 있다. 배기가스 99.999% 정화에다 겨울철 연통에서 내뿜는 수증기(白煙)까지 잡아낸다. 그런데도 화장장 반대운동에서 "환경오염" 운운, "주민 보건 저해" 등 타령을 늘어놓는다. 내내 듣다 보니 이젠 진부하기만 하다. 도시를 누비는 대형 자동차 몇십 대나 대형 빌딩들이 내놓는 오염과 비교라도 해보았는지 묻고 싶다.
그런데도 화장실이 안방을 차지하는 동안, 우리 화장장은 변두리 오지로 내몰렸다. 모 시립 화장장 이전지는 "인적없는 외진 곳"이라고 표현했다. 다른 시립 화장장 이전지는 '도로를 몇 km 개설하고 올라간 산 중턱'이었고, 어떤 곳은 눈에 띄지 않도록 '지하화'해서 숨겼다. 화장장은 사람의 일생이 담긴 시신을 원초적 자연 상태로 돌려보내는 소중한 의례 공간이다. 그럼에도 몰아내고 감추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오늘날 화장장 없는 지역민들은 쓸 수 있는 화장장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맨다. 어려우면 혹 예약취소라도 나타나길 학수고대한다. 이걸 우리 언론은 '화장 대란'이라고 부른다.
연식이 좀 된 필자이기에 지난날 공동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고, 빈 변소 칸 찾아 헤매던 도시 서민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화장장 건립 반대 소리가 나는 곳은 화장장이 없는 곳이다. 그들에게 묻습니다. "언제까지 눈치받아 가며 남의 화장장에 줄을 서시렵니까?"
박태호 대한장례지도사협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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