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용지 부족 당일에도 국제 참관행사…세금 4억 쓰고 11개국 앞에서 ‘망신’
선거 지연 사태 그대로 노출됐지만
선관위 “대부분 상황 잘 몰랐을 것”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3 지방선거에서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해외 선거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국내 선거 제도를 소개하는 국제 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선거 지연 사태가 해외 선거 관계자들에게 그대로 노출된 꼴이라 ‘국제 망신’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선관위는 이달 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11개국의 선관위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국제 선거 참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한국의 선거·정치 발전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선거 관리 기법을 전 세계와 공유하고자 2014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올해의 경우 나이지리아·에콰도르 등 11개국 31명의 선거 관계자들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4일까지 한국을 찾았다.
문제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전국이 뒤집힌 본투표 당일에도 해당 프로그램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들 해외 선거 관계자들은 투표소와 개표소 등을 직접 방문해 선거 절차와 운영 과정을 참관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행사 말미에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데다 행사 자체도 영어로 진행됐기 때문에 대부분 상황을 잘 알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전반적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서는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일정 마무리 단계인 토론회에서 일부 해외 선거 관계자들이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선관위에 질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선관위는 올해 1월 작성한 ‘2026년도 예산 사업 설명 자료’에서 한국 선거제도 해외 전파 사업에 4억 1900만 원을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참가자 항공료와 숙박비, 식사 비용 등을 선관위에서 지불하는 식이다. 선관위는 올해 프로그램에서 항공료 및 숙박비로 2억 400만 원을, 오·만찬 등에 700만 원 등을 각각 사용하겠다고 계획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한국 외에도 여러 국가에서 선거 참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주최하는 국가에서 비용을 일부 부담해 참석하는 식으로 많이 진행이 된다”고 밝혔다.
이미 진행된 행사를 중단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선관위가 존재 이유인 선거 관리에 부실한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세금 4억 원을 쓰고 국가 망신을 시킨 꼴이 됐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책임을 지고 사퇴한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은 올해 프로그램 개회사에서 “대한민국이 쌓아온 선거 행정 자산이 각 국가의 민주주의의 토대를 공고히 하는 데 실질적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민주주의의 기반이 흔들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관위는 선거 관리 업무가 핵심인 독립된 헌법기관인데, 무능하고 나태한 기관으로 전락했다”며 “현재 한 명뿐인 상임위원을 3명으로 늘리는 등 조직 구조 개편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지혜 기자 hoje@sedaily.com남소정 기자 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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