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노화 풀 열쇠, 100세 한국인에게 있다고? [K롱제비티의 꿈]

심희진 기자(edge@mk.co.kr) 2026. 6. 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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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국제백세인 학술대회 가보니]
14개국 연구자 수백명 집결
“지금 쓰는 표준유전체론 한계”
한국 100세인 데이터 보고
글로벌 연구자들 초미의 관심
9~12일 전북 고창군 웰파크시티에서 열린 제30회 국제백세인컨소시엄(ICC) 연례학술대회에서 전 세계 노화 분야 석학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웰에이징 시대 개척자로서의 백세인’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14개국 19개 팀이 참여해 인류의 생물학적 노화 기전을 고찰하고 고령화 사회의 지속 가능한 대안을 논의했다. [ICC]
인류가 질병과 노화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사용해온 ‘표준 유전체(Hg38)’에 치명적인 모순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건강하게 장수한 사람의 표준 유전체가 아닌, 유전질환 보유자들의 정보를 포함한 채 정상 기준으로 활용돼왔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한국 백세인 유전자가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토대로 전 세계 초고령층 데이터를 집대성한 ‘범게놈(인류 전체의 다양성을 반영한 통합 유전체) 지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0일 전북 고창 웰파크시티에서 열린 제30회 국제백세인컨소시엄(ICC) 학술대회에서는 글로벌 화두인 롱제비티(건강한 장수) 실현을 위한 유전적·환경적 지표들이 대거 제시됐다. 9일부터 12일까지 이어지는 올해 학술대회에는 전 세계 14개국 19개 팀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인류의 생물학적 노화 기전을 고찰하고 고령화 사회의 대안을 논의했다.

이날 가장 중점적으로 다뤄진 주제는 단연 ‘표준 유전체의 한계’였다. 의학계가 유전자 변이를 판독할 때 절대적 기준점으로 활용해온 Hg38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발표를 맡은 윤사중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그동안 정상 기준으로 사용해온 데이터가 사실상 ‘유전질환 등을 앓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한 이들’의 유전 정보 조합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기증 당시에는 건강해 보였으나 사후 추적 결과 심각한 유전병을 앓았던 이들의 데이터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인류가 원인 불명의 변이를 분석하면서 정작 대조 기준점은 건강하게 장수하지 못한 이들에게 두고 비교하는 모순을 범해왔다”고 짚었다. 윤 교수는 대안으로 글로벌 장수학 권위자인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의 지원을 받아 한국 백세인 60명의 유전자를 정밀 분석했다.

그는 “이론상 건강한 장수자들은 암 유발 변이가 없어야 한다”며 “조사 결과, 전원에게서 유방암 등을 일으키는 ‘BRCA1’ 유전자 변이가 단 한건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00세 한국인 데이터가 무결점 표준 유전체의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암 유발 변이 하나도 없어
치매 관련 연구 진전에도 단초
지난 10일 전북 고창 웰파크시티에서 열린 제30회 국제백세인컨소시엄(ICC) 학술대회에서 윤사중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ICC]
또 다른 특징은 체내 만성 염증을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인 ‘ORAI1’에서 발견됐다. 분석 결과, 한국 백세인의 99.74%에서 ORAI1 유전자의 끝부분이 잘려나간 변이가 관찰됐다. 이로 인해 기존 표준 유전체에서는 301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됐던 ORAI1 단백질이, 백세인에게서는 84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짧은 형태로 나타났다.

윤 교수는 “이러한 구조적 차이 덕분에 세포 내로 칼슘이 과도하게 유입되는 경로가 차단돼 노화 과정에서 만성 염증성 질환을 자연스럽게 피해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인 데이터에서 ‘장수의 결정적 단서들’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이를 글로벌 표준으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윤 교수는 “한국 백세인 데이터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첫 단추로, 궁극적인 목표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전 세계 5개 대륙에서 최소 1000명 이상의 백세인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라며 “맞춤형 신약 개발에 쓰일 수 있도록 해당 데이터를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공공 데이터베이스와 연계해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무료로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극복한 백세인의 뇌 연구도 큰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 글로벌 제약사들은 치매의 원인 물질을 제거하는 약물 개발에 몰두해왔으나 실제 임상적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자벨 카스타뇨 하버드 의대 교수팀은 발상을 뒤집었다. 뇌 속에 치매 인자가 가득 쌓여있음에도 사망 직전까지 맑은 정신을 유지했던 백세인들의 ‘방어 메커니즘’을 분자와 세포 수준에서 추적한 것이다.

인지 능력을 보존한 백세인들의 뇌 조직을 살펴본 결과, 신경세포의 생존을 돕고 뇌 속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별아교세포의 비율이 일반인보다 월등히 높았다. 치매 유발 물질이 공격해오더라도 별아교세포가 뇌 속 유해 물질을 청소하고 세포 사멸을 막는 방패막 역할을 해온 셈이다.

실제 나이는 100세가 넘었지만 인지 기능은 70대 수준을 유지하는 백세인들의 뇌 역시 면역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카스타뇨 교수팀이 이들의 뇌 조직을 분석한 결과, 만성 염증을 일으키는 특정 마이크로RNA(miRNA)의 발현이 일반인보다 유독 낮게 나타나는 사실을 규명했다.

인지 능력이 우수한 초고령층은 특정 miRNA의 활성화가 선천적으로 억제돼 있어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독성 염증 반응으로부터 뇌를 스스로 보호하고 있었던 셈이다.

카스타뇨 교수는 “그동안 바이오 업계가 miRNA를 제어하는 치료제를 뇌 속으로 안전하게 집어넣는 ‘전달 기술’ 개발에 공을 들여왔다면 우리 연구는 그 치료제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목표물을 찾아낸 것”이라며 “이미 성숙해있는 기반 기술에 백세인의 유전적 방어 기전이라는 실증 데이터가 더해진 만큼 특정 miRNA 표적 기술이 치매를 예방하고 뇌 노화를 역전시킬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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