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 뜬 연구자들의 비밀기지...데이터로 K해양주권 지킨다

최원석 기자(choi.wonseok@mk.co.kr) 2026. 6. 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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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동해 왕돌초 해양기지 가보니]
바다 한복판 53m높이 구조물
세계가 놀랄 해양 데이터 관측
해양·기후 연구 핵심거점 역할
경북 울진군 후포항에서 1시간 30분 배를 타고 나가면 보이는 왕돌초 해양과학기지의 모습. [사진=해양과학기술원]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항에서 1시간 반가량 배를 타고 나가자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기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망망대해에 아파트 19층 높이의 연구시설이 우뚝 서 있었는데 ‘이걸 어떻게 지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육지와 기지를 잇는 건 어선 한 척. 주변을 둘러봐도 바다가 끝없이 펼쳐질 뿐, 섬도 등대도 없었다.

선장이 신호를 주자 연구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파도가 거칠고 조류가 빠른 이곳에서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30초. 연구원들은 일사분란하게 모든 짐을 들고 내렸다. 혹시라도 손에 든 연구 자료와 실험 장비가 떨어뜨릴까 노심초사했다. 철망으로 만들어진 기지의 바닥 사이로 검푸른 파도가 일렁였다.

이곳은 왕돌초 해양과학기지다. 지난 9일 개소한 왕돌초 기지는 한국의 네 번째 해양과학기지이자, 동해에 생긴 첫 기지다. 서해에 2곳, 남해에 1곳의 기지를 갖고 있던 한국은 바다 전역을 아우르는 관측망을 완성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철제 계단을 오르자 드론 한 대가 반겼다. 드론은 15분의 주변 비행을 마치고 스스로 보관함에 들어갔다. 한 시간에 한 번씩 드론은 주변을 비행하며 해류의 색깔을 관측한다. 이외에도 각종 첨단장비들이 수온, 염도, 파도의 모양(파랑), 일조량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관측 데이터는 무궁화 위성을 거쳐 부산에 위치한 해양과학기술원으로 전송된다.

총 5개의 층으로 구성된 왕돌초 기지는 연구자들의 생활 시설과 실험실, 관측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요한 경우, 연구자 4명이 일주일 정도 거주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생활하며 실시간 해양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양생물을 수집해 실험한다.

기지에 37가지 첨단 관측장비 구비
바다 한가운데 ‘거대 연구 플랫폼’
기지가 위치한 왕돌초는 동해의 주요 해류인 동한난류가 시작되는 곳이다. 다른 곳보다 조류가 거센 이유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인 만큼 해양생물이 다양하고 생태계도 복잡하다. 왕돌초 인근을 제대로 분석하면 동해 전체의 생태계를 이해할 수 있는 셈이다.

과학의 기본은 측정이다. 첨단과학의 시대에도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오늘날 해양 데이터를 관측하는 방법은 인공위성, 드론 등 다양하지만 해양과학기지가 없으면 첨단장비들도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인공위성이나 드론이 바다의 수온이나 염도를 직접 측정할 수는 없다. 이들은 바다의 색을 측정한 뒤 보정을 거쳐 수온 등을 추정한다. 이때 보정에 필요한 기본적인 수치를 해양과학기지에서 직접 측정한다.

바다 곳곳에 떠 있는 부이 역시 탑재할 수 있는 관측 장비가 한정적이다. 반면 왕돌초 기지에는 37가지의 첨단 관측장비가 총 86점 구비되어 있다. 이들은 실시간으로 해양 데이터를 측정하고, 연구자들은 직접 기지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험을 진행한다. 필요하면 더 많은 장비를 탑재할 수도 있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거대 연구 플랫폼과 같다.

고정된 위치에서 오랫동안 연속적인 측정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부이는 계속 떠다니기 때문에 한 위치에서 데이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측정할 수 없다. 정진용 해양과학기술원 해양데이터‧인프라본부장은 “자연은 언제나 주기적으로 변한다”며 “같은 자리에서 오래 측정할 수 있어야 자연의 장기적인 추세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 같은 변화도 모두 이러한 기지에서 측정된다.

해양수산부·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해양 기후변화 감시체계 구축하고
해양 영토 주권 수호해 나가겠다”
드론으로 촬영한 왕돌초 해양과학기지의 전경. [사진=해양과학기술원]
해외에도 해양과학기지를 세워 장기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미국이나 일본 등은 주변 영해가 너무 넓어 해양과학기지로는 전 해역을 파악할 수 없다. 이들은 연구선을 상시 운용해 직접 이동하며 여러 곳의 데이터를 측정한다. 한국의 장기 해양 관측 데이터는 세계적으로도 귀한 편이고, 국내 기지를 이용하고자 하는 해외 연구자들의 협업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우주로 눈을 돌리는 시대, 바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뭘까. 바다를 모른 채 지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 본부장은 “인류가 아는 모든 행성 중 이렇게 물로 뒤덮인 행성은 지구밖에 없다”며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를 연구하는 건 과학의 기본”이라고 했다. 기후변화 추이, 태풍 경로 등을 정밀 분석하는 데도 해양 데이터는 필수다.

왕돌초 기지 건설은 동해의 영토 주권을 지키기 위한 행보이기도 하다. 일본과의 동해 주권 갈등 속에서 한국이 동해에서 연구를 하는 것 자체가 해양 주권을 행사하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기존에 동해 해양 연구 거점이 독도 하나였으나, 이번에 왕돌초가 추가됐다. 이경재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미래성장본부장은 “우리 영해에서 우리가 연구하는 건 당연한 만큼, 해양 주권을 공고히 할 근거가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양수산부와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은 “앞으로도 첨단 해양 관측 분야의 연구개발이 지속될 수 있도록 지원하여, 해양 기후변화 감시 체계 구축과 해양 영토 주권을 수호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울진 최원석 기자]

매일경제·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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