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애리의 유럽문화예술기행] 아랍·비잔틴·라틴 문화의 용광로 시칠리아 팔레르모


이탈리아 남쪽, 지중해의 햇살이 가장 강렬하게 내려앉는 섬 시칠리아(Sicilia). 그 중심에 자리한 도시 팔레르모(Palermo)에 발을 들이는 순간, 우리는 수천 년의 문명이 켜켜이 쌓인 거대한 역사서와도 같은 도시를 만나게 됩니다.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이곳에 항구를 세우며 시작된 도시는, 이후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비잔틴 제국의 영향 아래 놓였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색채를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아랍인들이었습니다. 9세기, 아랍인들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팔레르모는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하게 되었고, 정원과 수로, 향신료와 과학, 그리고 세련된 도시 문화가 꽃피었습니다. 이후 이 땅을 차지한 노르만 왕조는 놀랍게도 이러한 문화를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랍·비잔틴·라틴 문화를 융합하며 전혀 새로운 형태의 문명을 만들어냈습니다.
팔레르모의 공기 또한 복합적인 향기를 품고 있습니다. 시장 골목에서는 아랍의 향신료 냄새가 풍기고, 성당의 종소리에는 유럽 중세의 리듬이 담겨 있으며, 거리의 건축물은 마치 동서양의 경계가 무너진 듯한 풍경을 보여줍니다.


도시의 상징적인 관문인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를 통해 도심으로 들어가 봅니다. 16세기에 세워진 이 문은 왕과 귀족들이 도시로 들어오던 화려한 입구였습니다. 웅장한 아치와 조각 장식은 마치 "이제부터 당신은 시칠리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바로 그 곁에는 팔레르모의 영광스러운 시대를 보여주는 노르만 궁전(Palazzo dei Normanni)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외부는 거대한 요새처럼 견고하게 지어졌는데, 초기 아랍 토후국의 성채를 바탕으로 노르만 왕들이 증축하여 왕국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이 궁전의 진정한 백미는 내부의 왕실 예배당, 팔라티나 예배당(Cappella Palatina)입니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숨을 멈추게 됩니다. 벽과 천장 전체가 수백만 개의 황금 모자이크 조각으로 덮여 있고, 중앙 돔의 '전능하신 그리스도(Pantocrator)' 모자이크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천장에는 이슬람식 목조 장식과 기하학적 아라베스크 문양이 이어집니다. 비잔틴 양식의 성화와 라틴 전통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궁 근처에는 팔레르모 대성당(Palermo Cathedral)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성당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증축과 개조가 반복되면서 고딕, 바로크, 아랍풍 요소까지 한 건물 안에 뒤섞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팔레르모의 역사를 돌에 새겨놓은 거대한 건축 박물관처럼 느껴집니다. 조금 더 내려가면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카페의 활기가 넘치는 프레토리아 분수(Fontana Pretoria)를 만나게 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아름다운 분수이지만, 수많은 누드 조각 때문에 한때는 "부끄러운 분수"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대리석 인물들이 물줄기 사이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은 팔레르모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그 길은 '네 개의 모서리'라는 뜻의 콰트로 칸티(Quattro Canti)로 이어집니다. 네 개의 바로크 건물이 원형 무대처럼 교차로를 감싸고 있는 이곳은 '팔레르모의 심장'이라 불립니다. 햇빛이 시간에 따라 건물 한 면씩 번갈아 비추며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마치 거대한 연극 무대의 조명처럼 극적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시칠리아의 수도 팔레르모는 수많은 정복과 융합의 역사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응축된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파란만장한 역사는 어두운 그림자 또한 남겼습니다. 바로 마피아(Mafia)의 탄생입니다.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시칠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 권력 대신, 가문 중심의 사적 보호 체계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마피아의 시작이었습니다. 초기의 마피아는 단순한 범죄 조직이라기보다, 지역 주민들을 보호하는 일종의 의적 같은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후, 정치 권력과 막대한 자본이 결탁하면서 마피아는 점차 거대한 범죄 조직으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팔레르모의 마시모극장(Teatro Massimo)이 영화 <대부3>의 촬영 장소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가문을 합법화하려 했던 대부의 딸이 극장 계단에서 암살당하는 비극은 시칠리아 마피아의 숙명과도 같은 폭력의 악순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팔레르모는 단순히 마피아의 도시로 기억되기에는 너무나 풍부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이곳은 수천 년 동안 서로 다른 문명과 민족, 종교와 예술이 만나고 섞이며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 지중해 문명의 교차로였습니다. 거리의 시장과 성당, 황금빛 모자이크와 오페라 극장, 그리고 사람들의 삶 속에는 여전히 아랍과 유럽, 동양과 서양의 시간이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나애리 전 수원대학교 유럽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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