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3만명 피해 막았죠”... IT회사 닮은 경찰청 통합대응단

이기우 기자 2026. 6. 11. 16: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수사 ‘컨트롤 타워’ 가보니...
1~4월 보이스피싱 피해,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수준 감소
팀미션·노쇼 등 신종 사기도 분석

지난달 12일 서울 은평구의 한 주택에 은평경찰서 수사관들이 출동했다. 이곳에 사는 60대 여성 A씨는 “개인정보가 도용돼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보유 주식 12억4000만원을 모두 현금으로 바꾼 상태였다. A씨는 범죄 조직의 지시에 따라 휴대폰도 새로 개통했다. 이 휴대폰은 악성 앱에 감염돼 112 등 신고 전화도 모두 범죄 조직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경찰이 이곳을 찾은 것은 A씨가 범죄 조직으로 돈을 송금하기 직전이었다. 끈질긴 설득 끝에 A씨는 겨우 자신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경찰은 즉시 증권사에 계좌 지급정지를 요청해 사기 피해를 막았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것은 지난해 9월 출범한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의 요청에 따라서였다. 통합대응단이 범죄 조직 측 IP와 자주 접속하는 A씨를 보이스피싱 피해자로 의심하고, 은평경찰서에 연락해 자택을 찾도록 한 것이다. 지난해 9월부터 이달까지 이렇게 피해를 예방한 사례는 약 3만명, 예방 액수는 307억원에 이른다.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에서 상담원들이 보이스피싱 신고에 응대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박성원 기자

지난달 14일 찾은 서울 KT광화문빌딩 웨스트의 통합대응단 사무실 모습은 일반 경찰서보다는 IT 기업에 가까웠다. 20~30대의 젊은 경찰관 50여명이 5~6대씩 일렬로 배치된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이들은 통합대응단 데이터분석담당관실 소속 분석관들로, 보이스피싱을 비롯해 투자리딩방·팀미션사기·노쇼사기 등 각종 피싱 사기 수법을 분석한다. 신용수 분석수사1계장(경정)은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을 거친 석사 이상 전공자, 은행원·개발자 출신 등 금융·통신 분야 실무경력자, 빅데이터 분석이나 가상자산 추적 관련 자격증 보유자 등을 선발했다”고 했다.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에서 데이터 분석을 맡은 경찰 직원들이 근무하는 모습. 이들은 금융·통신 관련 실무 경험이 있거나 빅데이터 분석, 가상 자산 추적 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가들이다. /박성원 기자

통합대응단은 기존 경찰청 산하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센터가 확대된 것이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1조원을 돌파하자 보이스피싱 대응에 대한 ‘컨트롤 타워’로 출범했다. 기존 신고센터에선 상담원 40여명이 평일 업무 시간에만 근무했지만, 단 규모로 커지면서 인력이 140여명으로 늘었다. 이 중 70여명은 24시간 교대 근무하며 피해 신고를 접수한다. 이와 함께 데이터분석담당관실이 신설돼 보이스피싱 및 각종 피싱 사기 수법을 분석하는 것이다.

통합대응단은 이를 통해 피싱 사기 범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대포폰·악성 앱·사설 중계기 등 각종 범행 수단 차단과 피해자 구제 활동 등에 나서고 있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새로운 수법을 확인하고 이를 차단하는 것이 데이터분석담당관실의 주 업무다.

지난달 14일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에 접수된 보이스피싱 신고 현황이 전광판에 표시돼 있다. /박성원 기자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기승을 부리는 ‘팀 미션’ 사기의 전용 메신저를 확인해 지난 3월 차단한 것이다. 팀 미션 사기는 간단한 부업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며 피해자를 유인한 뒤, 고수익 임무에 참여하기 위한 보증금·위약금 등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사기 수법이다. 팀을 짜서 미션을 수행하게 하지만 피해자 외 다른 팀원들은 모두 범죄 조직원이다.

통합대응단은 최근 이 과정에서 범죄 조직들이 카카오톡 등 일반 메신저 대신 사기 목적으로 제작한 자체 메신저 앱을 설치하게 유도하는 것을 확인했다. 통합대응단 라연우 경감은 “계정이 차단될 우려가 없고, 다른 메신저에선 제한되는 자동답변 기능이나 조직원 실적 확인 등을 위해 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지난 2월에는 이렇게 자체 메신저를 사용한 팀 미션 사기가 전체 팀 미션 사기의 60%를 차지했다. 대응단은 이를 분석해 범죄 조직이 개발한 앱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구글·애플·삼성전자 등에 요청해 해당 앱을 차단했다. 이 결과 4월 이후로는 해당 메신저가 이용된 범죄가 1건도 없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 관계자가 보이스피싱 신고, 차단 등 추이를 표시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박성원 기자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대응단 출범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4월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225억원으로 전년 동기 4261억원 대비 47.8% 줄었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집계되는 투자리딩방·로맨스스캠·노쇼사기·팀미션 등 신종 사기 피해액이 395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조3162억원, 신종 수법 피해액이 1조593억원이었는데 역전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대응단은 신종 수법 피해 차단을 올해 목표로 삼고 있다. 외부 기관과의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 범죄 조직이 주로 이용하는 네이버·카카오 등 포털 측과 MOU를 체결했다. 금융위원회·과기정통부와는 다음달까지 범죄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연동해 범죄 이용 계좌, 의심 계좌, 위조 신분증 등 각종 범죄 정보를 공유한다는 계획이다. 오창배 통합대응단장(경무관)은 “각종 사기 수법이 더욱 교묘해지는 만큼 피해 예방·차단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