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의 보석’ 덮친 中 스캠 조직… 스리랑카, 캄보디아 대신 ‘온라인 범죄 허브’ 전락
올해만 1000명 이상 체포
관광지 호텔이 범죄 소굴로
느슨한 비자 정책 역풍
캄보디아와 미얀마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던 온라인 사기(스캠) 조직이 각국 단속을 피해 인도양 섬나라 스리랑카로 거점을 옮기고 있다. 스리랑카 경찰은 올해 들어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사이버 범죄 혐의로 외국인 1000명 이상을 체포했다. 2024년 한 해 전체 체포 인원 430명 대비 두 배를 넘는 수치다.
10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스리랑카 수사 당국은 최근 사이버 범죄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단속을 확대했다. 체포된 외국인은 중국을 중심으로 베트남, 인도 국적이 많았다. 프레드릭 우틀러 스리랑카 경찰 대변인은 5월 AFP에 “최근 몇 주 사이 이들 조직 규모가 분명하게 드러났다”며 “지금도 매일 경찰에 신고 전화가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동남아시아 스캠 산업은 원래 카지노와 온라인 도박, 치외법권성 경제특구, 부패한 현지 권력과 결합한 대형 단지 모델로 몸집을 키웠다. 철조망을 두른 단지에 인력을 가두고 강제 노동을 시키는 방식이다. 올해 1월 캄보디아 당국은 이 모델을 대표하던 프린스그룹 회장 천즈(陳志)를 체포해 중국으로 송환했다. 미국 법무부는 그가 캄보디아 강제노동 스캠 단지를 운영하며 전 세계 피해자에게 수십억 달러 피해를 입혔다고 보고 약 150억 달러(약 23조 원) 상당 비트코인 몰수 절차에 들어갔다.
캄보디아 전역에 걸친 강도 높은 단속에도 온라인 사기 조직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로이터가 전한 국제앰네스티 보고서를 보면 캄보디아 내 의심 스캠센터 86곳 가운데 당국 개입이 확인된 곳은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24곳에 그쳤다. 단속 도중 사기 범죄 가담 용의자들이 다른 지역이나 국경을 넘어 이동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들 조직은 해체 대신 더 작고 빠르게 흩어지는 쪽으로 운영 방식을 바꿨다.
이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곳이 스리랑카다. 스리랑카 경찰 당국에 따르면 조직원들은 관광객으로 입국해 해변 휴양지 빌라나 수도 콜롬보 인근 아파트, 사무실을 짧게 빌려 사기 사무실로 사용했다. 단속 조짐이 보이면 노트북과 휴대전화만 챙겨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실제 올해 3월 스리랑카 경찰은 공개하지 않은 온라인 스캠 범죄 거점에서 중국인 135명을 한번에 붙잡았다.
바로 다음달 4월에는 힌두사원과 해변으로 유명한 북서부 관광 명소 칠라우의 한 호텔을 급습해 152명을 체포했다. 체포된 범죄 용의자 가운데 133명은 중국인이었다. 같은 달 스리랑카 세관은 중고 휴대전화와 노트북 수백 대를 밀반입하려던 중국인 9명을 적발했다. 중고 휴대전화와 노트북은 콜센터형 사기 조직이 사무실 한 곳을 차릴 때마다 들여오는 필수 장비다. 비슷한 시기 콜롬보 인근 다층 아파트에서도 같은 혐의로 외국인 120명이 체포됐다. 남부 갈레와 마타라 해안에서는 하룻밤 사이 다섯 차례 단속으로 인도인 192명과 네팔인 29명을 검거했다. 유사한 범죄가 활개를 치자 스리랑카 경찰은 빌라나 아파트를 의심 조직에 빌려준 건물주도 범죄 방조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계 범죄 조직이 가까운 동남아를 떠나 멀리 인도양 섬나라까지 옮겨 온 이유를 두고 전문가들은 입국 장벽, 운영 공간, 통신 품질, 자금 이동 편의 네 가지 조건을 꼽는다. 스리랑카는 경제위기 이후 외화 확보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주요국 국민에게 30일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다. 비용을 내면 최대 6개월까지 체류를 연장할 수 있다. 정부는 무비자 대상을 40개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다국어 채팅과 영상통화, 가짜 투자 플랫폼을 돌리는 데 필수인 통신망도 안정적이고, 대포폰에 쓸 유심(SIM) 카드 구하기도 쉽다.
‘운디얄’로 불리는 비공식 송금망은 암호화폐를 포함한 범죄 수익을 규제망 밖에서 해외로 옮기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송금망은 은행을 거치지 않고 현지 환전상·중개인 네트워크를 통해 외국 돈을 스리랑카 루피 맞바꾼다. 기록이 불투명하고 추적이 어려워 사기 조직이 범죄 수익을 숨기거나 해외로 빼돌리는 데 악용되기 쉽다. 여기에 그간 중국 일대일로 인프라 사업으로 형성된 중국인 거주 사회도 중국계 범죄 조직에 위장막이 됐다. 20년 넘게 스리랑카를 연구해 온 산자나 하토투와 연구원은 블룸버그에 “아파트 단지와 쇼핑 단지, 때로는 동네 전체에 중국인이 거주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사이버 사기 조직을 단죄할 법적 틀은 부족하다. 스리랑카는 국제투명성기구 2025년 부패인식지수에서 182개 국가·지역 가운데 107위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스리랑카에 사이버 스캠 운영을 다룰 법 체계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고 짚었다. 탐사보도 매체 OCCRP에 따르면 스리랑카 재무부 산하 공공부채관리실은 익명의 해커들에 이메일을 해킹 당해 호주에 갚아야 할 대외채무 상환금 250만 달러(약 38억 원)를 갈취 당했다. 사이버 사기 피해자 지원 단체 ‘오퍼레이션 샴록’을 세운 에린 웨스트 전 미국 검사는 블룸버그에 “스리랑카에서는 우리가 추적하기 훨씬 어려운 방식으로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며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어떤 환경에서도 범죄에 개입할 수 있는 고도로 숙련된 사기 인력망이 이미 완성된 상태”라고 했다.

중국계 범죄조직이 주도한 스캠 산업은 중국인도 주요 피해자로 삼았다. 주스리랑카 중국대사관은 7일 성명에서 “수만 명의 중국인이 국경 간 도박으로 재산 피해와 신체적 위해를 입었다”며 “올해 초부터 스리랑카와 온라인 도박, 통신 사기 관련 공동 법집행을 강화했다”고 했다. 대사관은 이어 “단호하고 즉각적인 조치로 범죄 확산을 막지 못하면 스리랑카 국제 이미지와 공공 안보, 사회 안정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대사관은 지난달에도 미얀마와 캄보디아, 아랍에미리트(UAE) 단속 이후 불법 행위가 스리랑카로 옮겨 왔다며 “중국 정부는 이 흐름을 매우 주의깊게 보고 있다”고 했다. 이전 성명에서 중국대사관은 스리랑카의 발달한 통신 인프라, 유리한 지리적 위치, 느슨한 비자 정책, 친절한 현지인을 중국계 범죄 조직이 유입된 요인으로 직접 지목했다.
전문가들 역시 스리랑카에 스캠 조직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고 했다. 아시아재단 요한 레버트 연구원은 지난달 호주 로위연구소 기고에서 “사기 조직들은 국경을 넘어서 스스로 쪼개지고, 재배치하는 능력을 일관되게 입증해 왔다”며 “스리랑카 내 스캠 조직 규모는 아직 작지만,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매력적으로 만든 조건이 스리랑카에 그대로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줄리아 딕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블룸버그에 “결국 스리랑카 공무원들이 실제 스캠 박멸 조치에 나설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캄보디아처럼 뒤에서 실질적인 이득을 챙기고 있는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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