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넘어선 물가, 떨어진 미사일 재고, 꿈쩍 않는 이란···‘진퇴양난’ 트럼프

정유진 기자 2026. 6. 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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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하지 않는 이란을 향해 “발전소·교량 파괴” 엄포까지 놓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국 제한적인 공격만 가하다 멈췄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을 틀어쥐고 꿈쩍 않는 이란과 4%를 넘어 고공행진 중인 물가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처한 그의 처지를 드러낸다. 초조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군사작전 재개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무기 비축량 부족으로 그 역시 여의치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전날에 이어 다시 한번 이란에 강력한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폭스뉴스 인터뷰에선 “발전소·교량에 대한 공습이 임박했다”며 “이란은 협상 과정에서 계속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고 분노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미 중부사령부의 공격이 한창 진행되던 도중 폭스뉴스를 통해 “이란 당국자들이 나에게 직접 폭격을 멈춰달라고 요청했다”며 “이란에 대한 공습이 곧 끝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즉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부인하며 “이란 당국자들이 트럼프와 연락했다는 거짓 주장은 이란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은폐”라고 현지 언론을 통해 반박했다.

미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이날 미국이 이란을 대규모로 공습하기 직전 백악관이 이란 측에 인명 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사전 통보를 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미 동부시간 기준 지난 9일 오후 5시쯤 군사시설만 공격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이란 측에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습을 곧 멈출 것이라고 예고까지 한 것은 이란이 미군의 공격에 대한 맞대응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전면 폐쇄하겠다고 선언하고, 이날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넘어선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날 미 노동통계국은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대비 4.2%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3년 4월(4.9%) 이후 3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전쟁 이전인 지난 2월 2.4%에 머물렀던 물가 상승률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인한 고유가 때문에 계속 오름폭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가 급등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려는 듯 취재진에게 “나는 인플레이션을 사랑한다”고 말했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자신에 우호적인 매체인 뉴욕포스트를 통해 “전쟁이 끝나면 물가가 많이 낮아질 것이란 말을 하려 했던 것”이라고 급히 해명했다.

백악관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주택 가격과 약값이 하락하고, 일자리가 늘고 있다면서 경제 정책을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폴리티코는 물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날 노동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물가 상승으로 인해 평균 실질임금이 0.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일 공개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0%는 트럼프 대통령의 물가 정책이 불만스럽다고 답했다. 이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임기 말 63%보다 더 높은 수치다.

호르무즈 해협.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유가 상승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려는 듯 미군이 지원하는 비밀 작전으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1억 배럴이 넘는 석유를 빼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가 아니라 85~90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 덕분”이라며 “해협을 통제하는 것은 이란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라면서, 미군이 지난 한 달간 통과시키는 데 성공한 선박 200여척은 전쟁 전 3000여척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조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 재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 MOU에 대한 이란의 답변을 2주 가까이 기다리면서 점점 더 초조해지고 있다”면서 소식통을 인용해 “단기적인 대규모 군사작전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폭스뉴스에 이란이 미국 협상팀이 제시한 합의안에 서명하지 않으면 “내일 밤 그들을 폭격해 박살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4년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난해 6월 이란 핵시설 폭격 작전에 이어 이번 대이란 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무기 비축량이 빠르게 소진된 상황에서 대규모 군사작전 재개도 쉽지 않은 선택지가 됐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미국이 토마호크·패트리엇 미사일 비축량을 보충하는데 3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추산했다.

NBC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약 7개 방위산업체 대표들을 만나 무기 생산을 늘리라고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군수품 비축량 현황에 불만을 품고 있어서 회의가 “험악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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