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하다] 독일은 재선거… ‘투표용지 사태’ 선거무효 가능할까
득표 차 웃도는 오류가 핵심
당락 바뀔 초박빙 지역 초긴장
투명한 데이터 검증이 정공법
6·3 지방선거 당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단순한 현장 행정 착오를 넘어 참정권 침해를 다투는 헌정 쟁점으로 비화했다. 사태의 규모는 초기 알려진 수준을 크게 넘어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식 집계 결과 전국 140개 투표소에 투표용지가 추가로 송부됐다. 이 가운데 실제 추가 용지를 사용한 곳은 91곳, 투표가 중단됐다 재개된 곳은 26곳에 달한다. 투표용지를 제때 받지 못해 한 표를 행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유권자는 전국적으로 4700명을 웃돈다.
선관위와 서울 5개 구선관위 등 7곳을 압수수색했다. 투표용지 관리 기록 역시 도마에 올랐다. 선거인 수가 3856명인 서울 잠실7동 제2투표소 현장의 보관상자 인쇄 매수는 절반 수준인 1900매로 파악됐다. 해당 보관상자는 법원의 증거보전 결정문이 당도하기 전 폐기물 업체에 수거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후 증거인멸 논란까지 번졌다.
![‘이제석 광고연구소’ 대표로 공익광고 전문가인 이제석 씨가 11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풍자하는 기습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은 이 씨가 선관위 앞에 내건 ‘민주주의 꽃은 매진입니다’ 현수막. [이제석 광고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11/dt/20260611120702129lkuj.jpg)
◇ 대한민국 선거무효의 잣대, 공직선거법 제224조
서울시 유권자의 선거소청 제기로 사태는 이제 법정 다툼으로 이동했다. 법적 쟁점은 명확하다. 공직선거법 제224조는 선거에 관한 규정 위반이 있더라도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때”에 한해 전부 또는 일부 무효를 결정·판결하도록 규정한다.
대법원의 판단 기준 역시 선관위의 무능 자체보다, 그 무능(관리상 하자)이 실제 후보의 당락을 바꿀 가능성이 있었느냐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법정에서는 투표하지 못한 정확한 유권자 수, 투표 중단 시간, 대기표 배부 및 18시 이후 투표 연장 절차의 적법성, 추가 투표용지 이송 기록, 폐기 논란이 일어난 증거 보존 상태 등이 해당 선거구 후보 간 득표 차와 엄밀히 교차 검증될 전망이다.
![주요 대학교 총학생회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진행하는 1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알바트로스탑 앞에 시국선언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며 학생들이 벗어둔 학과 점퍼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11/dt/20260611120703450oqzh.jpg)
◇“조작 없는 ‘관리 부실’도 부정선거”
현재까지 이번 사태를 투표함 교체나 고의적인 개표 조작 등 좁은 의미의 부정선거로 단정할 확정적 물증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범죄 행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선거관리 부실에 따른 참정권 박탈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 선거사법 기준은 특정 후보를 돕기 위한 조작이 없었더라도 국가의 행정 붕괴가 유권자의 투표 기회를 빼앗았다면 그 자체로 선거권 침해를 구성한다고 본다. 국제선거제도재단(IFES)과 선거 지식 네트워크(ACE) 등 주요 선거 연구 기관은 선거 과정의 훼손 행위를 세 범주로 나눈다. 고의적 조작인 사기(Fraud), 선거관리기관의 절차 위반과 시스템적 실패를 뜻하는 관리 부실(Malpractice), 비의도적 준비 부족인 행정 오류(Maladministration)다. 사라 버치(Sarah Birch)와 제프리 칼슨(Jeffrey Carlson) 등 정치학자들 역시 조작 의도가 없더라도 국가 기관의 관리 실패로 참정권이 제한됐다면 이는 선거 무결성(Electoral Integrity)을 위협하는 넓은 의미의 선거 부정이라고 정의한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5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11/dt/20260611120704851zfol.jpg)
◇ 해외 법원 “절차 위반 규모가 당락보다 크면 무효”
특히 해외 판례는 의도적인 표 조작이 없더라도 선거관리 실패 자체가 재선거 사유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가장 강력한 비교 대상은 2021년 독일 베를린 선거다. 당시 연방의회·주의회·구의회 선거와 주민투표, 베를린 마라톤이 겹치면서 현장 운영이 붕괴했다. 투표용지 부족, 타 지역구 용지 오배부, 장시간 대기 사태가 연쇄적으로 터졌다. 이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관리 오류의 체계성을 인정해 베를린 2256개 투표구 중 455곳의 연방의회 선거 일부 재실시를 명령했고,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는 주의회 선거 전면 재실시를 결정했다. 관리 오류의 광범위성이 입증되면 단순 투표용지 부족도 선거무효의 합당한 사유가 된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2016년 오스트리아 대선 결선도 짚어봐야 할 잣대다.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후보가 약 3만표 차로 신승했지만,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는 우편투표 개표 과정의 절차 위반을 이유로 재투표를 명령했다. 실제 표 조작 증거가 발견되진 않았으나, 절차 위반에 노출된 표의 규모(약 7만7000표)가 두 후보의 득표 차보다 커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투표 후 사후 관리에 실패해 선거가 뒤집힌 사례도 있다. 2013년 호주 서호주 상원 선거에서는 재검표 과정에서 투표지 1370장이 분실됐다. 호주 고등법원은 이 분실표가 초박빙이던 의석 당락에 짙은 영향을 미쳐 결과 재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 해당 상원 선거를 무효화하고 재선거를 지시했다. 이는 증거보전 전 보관상자 수거 논란이 빚어진 대한민국 선관위가 뼈아프게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이 외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루저른 카운티는 2022년 선거 당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시간을 연장했고, 이후 소송에서 행정 실수를 인정해 배상금 지급에 합의했다. 영국도 2010년 총선 당시 대기열 관리 실패로 투표를 못 한 유권자가 속출하자 관련 규정을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무효 판결까지 가지 않더라도 국가가 엄중한 사후 책임을 진 경우들이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 참가자들이 지난 7일 밤 서울 송파구 개표소였던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 모여 있다. [연합뉴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11/dt/20260611120706192rxmy.jpg)
◇ 전체 무효 문턱은 높지만… ‘초박빙 접전지’가 화약고
법리와 선례를 종합하면, 현 사태가 광역단체장이나 전국 단위 선거 전체 무효로 직행할 확률은 매우 낮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오세훈 후보와 차점자 간 최종 표차가 약 6만표에 달해, 현재 거론되는 전국 피해 유권자 규모(4700명 이상)만으로는 공직선거법상 전체 ‘결과 영향성’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진짜 폭발력은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 교육감 등 수십~수백 표 차로 당락이 갈린 초박빙 접전 선거구에 숨어 있다. 특정 투표구에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해 미투표자가 집중됐고 그 추산 규모가 최종 득표 차를 웃돈다면, 해당 지역의 ‘일부무효’나 ‘재투표’ 청구는 피하기 힘든 법정 쟁점으로 부상한다. 증거 훼손 논란이 심화하여 미투표자 규모조차 파악하기 힘들어진다면, 호주 사례처럼 선거 결과의 원천적 불신으로 이어질 위험도 다분하다.
과거 3·15 부정선거의 반성 위에서 관권 선거를 차단하기 위해 헌법기관으로 독립한 중앙선관위가 정작 자신들의 선거관리 부실로 수사를 받는 처지에 놓였다. 의혹을 제기하는 유권자를 음모론자로 깎아내리며 방어막을 칠 여유는 없다. 얽힌 실타래를 푸는 유일한 정공법은 투표소별 송부 내역, 대기표 배부 절차, 보존된 CCTV 기록 등 파편화된 모든 실증 자료를 숨김없이 꺼내놓고 투명하게 검증받는 것뿐이다.
김윤정 기자 kking15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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