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만세운동 100주년…숨은 주역, 기독 청년들을 기억하다
이념·계층·종교를 넘어선 연대
신간회 설립·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이어져
이념의 벽에 가려 역사적 의미 충분히 조명되지 못해
정부, 13명 포상…연희전문 9명·배재고보 2명
"기독청년들의 역할·신앙의 역동성 주목해야"
"지도부 검거 이후 실질적 역할"
"복음에 대한 확신, 이념 대립 넘어 시대의 고통에 응답"
[앵커]
6월 10일은 역사적으로 또 다른 의미를 지닌 날인데요. 3·1 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으로 평가받는 6·10 만세운동 100주년입니다.
6·10 만세운동은 그동안 3·1 운동과 달리 교계의 관심에서 다소 비켜나 있었는데요.
당시 현장에는 기독교 신앙으로 시대의 고통을 끌어안고 거리로 나선 기독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오요셉 기자입니다.
[기자]
1926년 6월 10일, 순종 인산일. 조문 행렬 사이로 독립을 외치는 학생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학생들이 주도한 이 독립 만세운동은 3·1운동 이후 침체됐던 독립운동에 다시 불을 붙였고, 좌우 합작 단체인 신간회 설립과 1929년 학생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민족운동의 물줄기를 텄습니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종교계가 이념을 넘어 힘을 모은 6·10 만세운동은 오늘날 분열을 넘어 평화와 연대를 모색하는 역사적 현장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
"독립을 위해 이념과 종교를 넘어 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주신 위대한 선열들께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6.10 만세운동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국민적 연대와 통합을 통해서만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냉전과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6·10 만세운동은 오랫동안 '조선공산당과 천도교가 주도한 운동' 정도로 기억되며 기독교계의 관심에서는 멀어졌습니다.
연세대 홍성표 교수는 "지도자 중심의 기존 역사 서술 속에서 6·10 만세운동을 실제로 이끌었던 학생들의 역할과 그 안에서 작동했던 기독교의 역동성이 함께 지워졌다"고 지적합니다.
6·10을 며칠 앞두고 조선공산당 지도부가 사전 검거되면서 운동은 사실상 좌초 위기에 놓였지만,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은 기독학생들의 자발적인 결의와 촘촘한 네트워크였다는 설명입니다.
[홍성표 / 연세대 객원교수,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사실 6.10 만세운동의 제일 큰 (역할을) 한 게 연희전문학교이고, 그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었고요. 학생들이 어디서 모였냐 하면, 6월 8일에 연희전문 뒤편 송림에 모여서 회의를 한 겁니다. '우리가 하자'. 그래서 거기서 태극기를 만들고 준비를 하고요. 6월 9일엔 연희전문 학생 이석훈이라는 분의 하숙집에서 (시대일보) 명함 인쇄기를 빌려 옵니다. 거기서 격문을 찍고…"

실제로 정부가 6.10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특별포상한 독립유공자 13명 가운데 9명이 연희전문학교, 2명이 배재고등보통학교 출신으로, 대부분이 기독교학교 학생들입니다.
6·10 만세운동 직후엔 연희전문과 배재고보, 피어선성경학원, 협성신학교 등 기독교학교 학생들이 연대해 '제2의 6·10 만세운동'을 준비했지만, 일제의 사전 검거와 탄압으로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3·1운동 이후 교회가 교세 확장과 내부 문제에 더 치우쳐 있을 때, 기독학생들은 민족의 현실과 아픔에 공감하며 신앙으로 독립운동에 나선 것입니다.
[홍성표 / 연세대 객원교수,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연희전문학교 학생들은 '진짜 기독교가 무엇이냐'를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연희전문학교 기관지를 보면 '이게 무슨 기독교냐, 진짜 기독교라면 민중의 아픔에 동참해야 하고 같이 가야 된다'는 비판이 적나라하게 그 잡지에 나옵니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면 오늘 같은 식민지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조선이라는 '현장성'이 더 중요했던 거죠."

홍 교수는 당시 "기독학생들이 '복음은 어떤 이념보다 높다'는 확신 아래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단순한 대립을 넘어 민족의 미래와 시대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당시 기독학생들의 정신과 잊힌 교회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일이 분열과 갈등의 오늘의 한국교회가 어떻게 갱신되고 변화해야 할지를 비춰 줄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홍성표 / 연세대 객원교수,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당시 우리 교회는 생각보다 건강했고, 그런 이념에 흔들리지 않았고, 토론하고 질문하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것이 역사에서 연구가 안되고, 지도자 중심으로 연구하다 보니 교인들의 모습이 빠져버려서 우리가 당시 교회의 역동성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걸 다시 기억하는 게 오늘의 한국교회가 어떻게 갱신되고,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6·10 만세운동의 숨은 주역이었던 기독청년들의 연대와 용기, 그리고 진짜 기독교가 무엇인지 물었던 그 질문이,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한국교회를 향하고 있습니다.
CBS뉴스 오요셉입니다.

[영상기자 이정우 최내호] [영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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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오요셉 기자 alethei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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