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종교가 된 아르헨티나, “대표팀 위해 지구 끝까지 간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아르헨티나 팬들의 독특한 축구 문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르헨티나 축구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로는 ‘파시온(Pasión·열정)’이 꼽힌다. 단순한 응원을 넘어 대표팀을 국가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아르헨티나 축구의 가장 큰 특징이다.
글로벌 스포츠전문매체 디애슬레틱은 11일 월드컵 본선 진출 48개국의 축구 문화를 소개하는 시리즈를 통해 아르헨티나를 조명했다. 현지 팬들과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 단어는 ‘열정’이었다.
■ 세계 어디든 따라가는 원정 응원
아르헨티나 팬들의 가장 큰 특징은 거리와 비용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응원단체 ‘라 반다 아르헨티나’ 창립자인 크리스티안 크리벨리는 “대표팀이 경기하는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든 찾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팀 경기를 보기 위해 지구상에서 가장 외진 지역까지 가본 적이 있다”며 “다시는 갈 일이 없는 곳일지라도 아르헨티나가 경기한다면 간다”고 설명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당시 수많은 아르헨티나 팬들은 한 달 가까이 중동에 체류하며 대표팀을 따라다녔다. 2024 코파 아메리카 때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와 마이애미 일대는 아르헨티나 응원단으로 가득 찼다. 팬들은 이를 두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바로 아르헨티나 축구 문화라고 말한다.
■ 대표팀은 스포츠가 아닌 정체성
아르헨티나 팬들은 대표팀을 단순한 스포츠팀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팬 바니나 파올리요는 “내 삶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만큼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팬 니콜라스 오레야노는 “아르헨티나에서 축구는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의식이자 정체성”이라며 “낯선 사람과 함께 골을 넣고 서로 껴안으며 울어본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화는 대표팀 경기 때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승리하면 전국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고 패배하면 사회 전체가 침울해진다. 대표팀의 성적이 국민 정서에 영향을 미칠 정도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멕시코전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충격패를 당한 뒤 탈락 위기에 몰려 있었다. 그러나 리오넬 메시의 선제골이 터지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아르헨티나 팬들은 10분 가까이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현지에서는 “국가 전체가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 경기 내내 노래하는 응원 문화
유럽의 많은 경기장에서는 득점 장면이나 결정적 순간에 응원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지만, 아르헨티나 팬들은 경기 시작부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응원가를 부른다.
디애슬레틱이 소개한 사례에 따르면 한 독일 팬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축구를 본 뒤 독일 축구가 심심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아르헨티나 팬들은 경기 내내 노래를 부른다. 그것이 진짜 축구 같다”고 평가했다.
아르헨티나 팬들은 오히려 팀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 큰 목소리로 응원하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긴다. 크리벨리는 “우리는 잘할 때보다 힘들 때 더 크게 응원한다”고 말했다.

■ 브라질과 잉글랜드를 향한 강한 라이벌 의식
아르헨티나 축구 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강한 라이벌 의식이다.
축구적인 측면에서는 브라질이 최대 경쟁자다. 남미 예선과 코파 아메리카, 월드컵 등 주요 무대에서 끊임없이 맞붙어온 두 나라는 서로를 가장 의식하는 관계로 꼽힌다.
팬들은 “무슨 종목이든 브라질은 이기고 싶다”고 말한다. 최근 아르헨티나는 브라질 원정에서 사상 첫 월드컵 예선 승리를 거두고,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맞대결에서는 4-1 대승을 거두며 우위를 점했다.
반면 감정적인 라이벌은 잉글랜드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과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의 ‘신의 손’ 사건은 지금도 아르헨티나 축구 문화에 깊게 남아 있다. 일부 팬들은 브라질보다 잉글랜드와의 대결에서 더 큰 감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 성공이 더한 자신감
아르헨티나는 202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으로 28년 만에 메이저 대회 정상에 복귀한 뒤 2022 카타르 월드컵과 2024 코파 아메리카까지 연이어 우승했다. 리오넬 메시와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이 이끄는 현재 대표팀은 현지에서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북중미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도 2위 에콰도르를 승점 9점 차로 따돌리며 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서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아르헨티나 팬들은 스스로를 “참기 힘들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디애슬레틱은 “자신감의 바탕에는 최근의 성적뿐 아니라 대표팀을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독특한 축구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세계 어디든 따라가고, 경기 내내 노래하며, 대표팀의 승패에 함께 울고 웃는 열정이 오늘날 아르헨티나 축구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정리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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