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추진해도.. 216만 노인 씁쓸한 이유

손유지 2026. 6. 11. 08:1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왜 지금] 70세 취업자 216만명 시대 열려
노후소득 불안에 은퇴 대신 일터 찾아
고령층 고용 확대 속 저임금 구조 '그늘'
정년연장 넘어 '노후보장 체계' 손질 목소리

[지데일리] 일흔을 넘어도 일터를 떠나지 못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지난해 70세 이상 취업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200만 명을 돌파하면서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노동시장 구조를 얼마나 빠르게 바꾸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노후를 여유롭게 보내는 은퇴 생활보다 생계를 위해 다시 일터로 향하는 고령층이 증가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마주한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70세 이상 취업자가 처음으로 200만명을 돌파하며 초고령사회 한국의 노후소득 불안과 고령층 노동시장 확대 현실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AI생성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5년 기준 70세 이상 취업자는 216만2000 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보다 9.2% 증가한 수치다. 70세 이상 취업자가 200만 명을 넘어선 것은 관련 통계를 별도로 집계하기 시작한 2018년 이후 처음이다. 

KOSIS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21만9000 명이었던 70세 이상 취업자는 2021년 156만6000 명으로 증가하며 150만 명을 돌파했고, 이후에도 연평균 7~9% 수준의 증가세를 이어왔다. 불과 4년 만에 50만 명 이상이 늘어나면서 200만 명 시대에 진입하게 됐다.

이 같은 현상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고령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섰다. 

기대수명은 길어지고 있지만 은퇴 이후 생활비 마련에 대한 부담은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 수급액만으로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고령층이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 물가 상승은 노년층의 경제적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 식료품과 공공요금, 의료비 등 필수 지출이 증가하면서 연금이나 저축만으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가구가 늘고 있다. 은퇴 후에도 일자리를 찾는 이유가 건강 유지나 사회활동 참여보다 생계유지에 있다는 조사 결과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70세 이상 취업자 증가가 긍정적 측면과 우려를 동시에 안고 있다고 분석한다. 우선 건강한 고령층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면서 경제활동 인구 감소를 일부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으로 평가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고령 인력이 노동시장에 남는 것은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본과 독일 등 고령화가 먼저 진행된 국가들도 정년 연장과 고령자 고용 확대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반면 상당수 고령층이 종사하는 일자리가 저임금·단기 일자리라는 점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노인 일자리 상당수는 경비원, 청소원, 환경미화원, 단순 노무직, 농림어업 종사자 등에 집중돼 있다. 근로 강도가 높은 직종임에도 임금 수준은 높지 않은 사례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 악화 위험이 커지는데도 생계를 위해 계속 노동해야 하는 현실은 노인 빈곤 문제와 직결된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은퇴 이후 안정적인 소득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시장은 노후 생활을 지탱하는 마지막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 자체가 불안정할 시 노인 빈곤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세대 간 일자리 갈등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된다. 청년층 취업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고령층 고용 확대가 청년 일자리를 줄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존재한다. 다만 고령층과 청년층이 주로 종사하는 직종이 상당 부분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대체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히려 고령층이 수행하는 업무의 질을 높이고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 역시 노인 일자리 확대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공공형 노인일자리 사업 규모는 매년 확대되고 있으며 민간 분야 고령자 고용 지원 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다만 단순히 일자리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기보다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고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고령층에 편입되고 있고 평균수명 또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할 수 있는 노인이 많아지는 사회는 결코 부정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원하는 삶을 위해 일하는 것인지, 아니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것인지에 있다.

한 인구정책 전문가는 "70세 이상 취업자 216만 명이라는 숫자는 한국 사회의 활력을 보여주는 지표이면서 동시에 노후소득 보장 체계의 한계를 드러내는 경고음이기도 하다"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노인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노인이 원할 때 일하고 원한다면 편안하게 은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