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려고 농부된 특전사 [산지컬 100]

서현우 2026. 6. 1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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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탄고도1330 첫 완주자 박남규씨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_ 편집자

지난해 4월 특전사 티셔츠를 입은 한 사람이 대둔산을 오른다. 그는 사람이 없는 평일 한적한 삼선계단에서 배낭을 내려놓더니 로프를 꺼낸다. 그리고 6시간 동안 절벽을 오르내리면서 쓰레기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사람이 걸어 내려갈 수 없는 곳들까지 구석구석 쓰레기를 주워 배낭 하나를 가득 채웠다.

이 과정이 담긴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왜 홀로 그 고생을 하면서 치웠냐'는 물음에 그는 "쓰레기를 버리면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치워야 한다"는 경각심을 알려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전날 고향에 놀러온 친구들과 함께 고향 명산이라고 대둔산을 보러 가자고 꼬드겨서 같이 올랐는데 삼선계단 밑에 쓰레기가 잔뜩 떨어져 있는 게 보여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창피했단다.

다음날, 일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일손을 멈추고 대둔산으로 다시 향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배운 암벽등반 기술을 활용해 쓰레기를 주웠다. 그제야 속이 시원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밀린 일을 했다. 어떤 일이냐면, 쌀농사다. 원래 가업이 농사였냐면 그것도 아니다. 농사를 생업으로 삼은 건, 단지 농한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산에 가려고 내린 선택이다. 추수가 끝나면 곧장 배낭을 챙겨 히말라야로 떠나 몇 달 떠돌거나, 국내 산줄기를 몇 개 종주하고 돌아온다.

첫 히말라야였던 2024년 에베레스트 쿰부 3패스 3리 트레킹.

주말 산행만으로는 산에 대한 갈증이 채워지지 않아서 특전사는 농부가 되기로 선택했다. 논산에서 '충청머시매'란 유튜브를 운영하는 박남규씨다.

박씨의 고향은 논산이다. 논산에서도 비교적 시골인 곳에서 태어난 탓에 매일 뛰어놀며 자랐다. 운동신경이 꽤 좋았다. 운동부도 했다. 레슬링이다. 중학교 때 전국대회에 출전해서 동메달을 땄을 정도다.

산도 운동부를 통해서 처음 올랐다. 학교 근처 야산에서 뒤에서 다리를 잡아주고 손으로 기어 올라가기, 오리걸음으로 정상까지 올라가기 등의 훈련을 했다. 동계전지훈련이라고 운동화만 신고 정상까지 한 번에 눈 쌓인 산을 뛰어올라갔던 적도 있다. 신발 안으로 물이 다 스며들어 얼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어렸을 때라 재밌었던 기억으로 남았다. 그게 나중에 알고 봤더니 계룡산이었다.

"원래는 고등학교도 운동부로 진학하려고 했었는데 마음을 접었어요. 구타 폭행이 너무 심했거든요. 그래서 일반학교로 진학했죠."

대둔산.

특전사 훈련으로 백두대간 종주

운동으로 끓어오른 피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거리를 찾다가 무술에 심취하게 됐다. 태권도, 합기도, 특공무술 등을 도합 10여 단을 딸 정도로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군대도 특전사로 갔다. 복무기간 중 1년에 6~7개월은 산속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때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훈련이고 작전인지라 비법정탐방로도 모두 이용했다. 한겨울에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땅을 파고 자는 등 그런 훈련이었다. 한라산도 탐방로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그는 "그때까진 산은 늘 훈련의 대상지자 고난의 공간이라는 정도로만 인식됐다"고 했다.

제대 후 실전의 대상지인 사회는 더 고난스러웠다. 경호·보안업체에서 일을 했는데 휴일 보장도 없고 위계질서도 심했다. 군대생활의 연장이었다. 무술을 좋아하던 차에 기회가 닿아서 미국 체육관 사범으로 갔었다. 나름 사업구상도 있었다. 현지에서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영어 체육관을 차려보겠다는 꽤 그럴싸한 계획이었다. 문제는 현지 관장도 다른 계획이 있었다. 하루 3~4시간씩만 재우면서 건축에 청소 업무까지 시키곤 월급을 떼먹었다. 결국 그는 큰 배신감만 느끼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고향친구하고 지리산을 갔었죠. 원래 제대할 때 최소 10년은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더라고요."

노고단 코스였다. 군대에서 하던 대로 산에서 숙영할 생각으로 텐트며 취사도구를 챙겨 넣은 탓에 배낭이 거대했다. 노고단에서 레인저에게 바로 딱 걸렸다. "가방이 왜 이렇게 크냐"고 떠보는데 순진하게 "텐트 치고 자고, 라면 끓여먹으려 한다"고 답했다. 군대에서 산을 배운 탓에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자연공원법을 몰랐다.

울릉도 나리분지 백패킹 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산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설명을 듣는데 마침 폭설이 내려 눈이 50cm나 쌓였다. 그래서 노고단 산장에서 이틀 지내다가 길이 열리자 바로 하산했다. 그게 '취미로서의 등산'으로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 이후 산은 힘든 사회생활 중에 버팀목이 됐다. 너무 힘들면 배낭에 이것저것 생존도구를 넣고 3~4일간 떠돌이처럼 이름도 모르는 산을 그냥 아무렇게나 다녔다. 그런 생활이 10년 동안 이어졌다. 그때 아버지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군대 제대할 때 아버지한테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던 적이 딱 한 번 있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농부셨거든요. 논산이 원래 다 쌀 농사하는 동네죠 뭐. 제가 어리니까 일절 농사일을 못 돕게 하시다가 중학생이 될 무렵엔 농사를 접고 건설업을 하셨어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는 농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왠지 모르게 한 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도 키우고요."

아들의 '농사지어 보고 싶다'는 한마디는 아버지의 마음에 10년 동안 심어졌다. 그리고 타지를 전전하며 영 정착하지 못하고 고생만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며 점점 싹을 틔웠다. 그래서 조금씩 돈을 모으는 대로 땅을 사들였다. 얼추 둘이 농사지으며 살 만한 땅이 모이자 아들에게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전화했던 것.

농한기 덕에 산의 세계가 새롭게 열렸다

"땅이 3만~4만 평 정도라 둘이 열심히 지으면 보통 회사 다니는 사람의 급여 절반 정도밖에 못 벌어요. 그래도 동네에서 단위면적당 수확량은 1등입니다. 영업비밀이 있어요. 남들보다 2~3배씩 일하거든요."

농부가 되자, 산의 세계가 새롭게 열렸다. 사람들은 그의 1년 생활 패턴을 보고 "산 타는 게 직업이고 농부가 부업인 사람"이라고 했다. 1년을 다소 거칠게 쪼개보자면 6개월은 농사짓고, 3개월은 건설 등 아르바이트를 뛰고, 3개월은 산만 다닌다. 농한기의 존재로 인해서 산을 더 깊고, 오래 탈 수 있게 됐다.

말 그대로 농부가 천직이었다. 그는 "일할 때 '산에 간다'는 목표가 있으니까 좀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계속 설레는 마음이다"라며 "그래서 한 해가 무척 빨리 간다. 그게 너무 재밌다"고 했다. 술 한 잔 안 마시고, 아껴 쓰고, 쇼핑은 등산장비만 하고, 3개월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유류비나 식비 등 산 다닐 자금을 만든다. 그런 삶이 현재까지 꼬박 7년이나 이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정호수중 하나인 4,790m에 위치한 고쿄Gokyo호수. 호수 우측에 위치한 고쿄 리Gokyo Li (5,360m)로 가서 렌조라패스(5,417m)를 넘으면 쿰부 3패스 3리 트레킹 하산길에 접어든다. 박씨는

운탄고도1330 첫 완주자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산행하고, 휴가를 내서 종주하는 게 일반 사회인들의 사이클이지만, 그는 농한기 때는 평일에도 산을 가고 주말에도 산을 갈 수 있다. 그의 산행은 그래서 좀 기형적이고, 특수하다. 산 이름도 검색하지 않고 도로를 따라 차를 몰다가 산이 예뻐 보이면 멈춰서 올라갔다 오기도 했다. 시간이 많으니, 진정한 자유를 찾아 날아들 듯 산에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산은 설악산입니다. 혼자 1박2일로 6주 연속 간 적도 있어요. 논산에서 편도 380km니까 교통비만 15만 원씩 썼죠. 그래도 너무 좋았어요. 설악산에만 11일간 머문 적도 있어요. 이 코스로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자고, 다음날엔 다른 코스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식이었죠. 농사를 지으니까 차도 마침 화물차거든요. 그래서 차를 일종의 베이스캠프로 삼아 다니며 경비를 좀 줄일 수 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산행은 4년 전에 했던 강원도 21일 연속 산행이다. 21일 동안 강원도에 살면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고 싶은 산을 갔다. 등산과 백패킹을 계속 반복했다. 체감온도가 영하 30℃ 이하로 추운 날씨에 눈이 1m 이상 쌓여 있어도 즐겁게 러셀하며 혼산을 즐겼다. 너무 힘들었지만, 재밌었다.

"그게 21일이 된 게 3주 연속 주말에 소속 산악회 산행 약속이 강원도에 잡혀서 그렇게 된 거예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렇게 혼자 산 타다가 토요일에 전국 각지에서 온 선배들하고 같이 산행하고 백패킹하며 놀고, 그때 선배들이 '그러면 다음주에 이 산 가봐라' 하고 추천해 주면 기분 내키는 대로 날씨랑 컨디션 되는 대로 가보는 식이었죠."

그 외에도 시간을 오래 들여야 하는 길들을 한 번에 답파했다. 진안고원길은 한 번, 제주올레는 두 번 걸었다. 제주올레는 2~3일은 아름다운데 그 이후로는 백패킹하며 걸으니 발바닥이 뜨겁고 아파서 힘들어 미칠 지경이었단다. 그래도 분명 재미는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걷기길은 운탄고도 1330이다. 눈이 많이 내렸는데 길 위에 발자국이 단 하나도 없었던 날에 걸음을 내디뎠다. 바로 앞에서 멧돼지 가족을 만나기도 할 정도로 한적했다. 12월이었다. 그렇게 눈 길 위에 새긴 첫 걸음을 종착지의 마지막 한 걸음까지 이었다. 5박6일 동안 백패킹하며 갔다. 이 산행은 운탄고도 1330 인증센터 명예의 전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길이 개통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가서 걸은 거라 그가 첫 완주자기 때문이다.

동계 강원도 비박. 영하 16℃의 날씨였다.

국내 등산규제에 질려 해외로 눈길

지금은 해외트레킹에 열을 올리고 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세계의 산을 봐두고 싶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산도 충분히 좋고 예쁘지만, 자유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앞서 대둔산에서 쓰레기를 주웠을 때도 어떤 이들은 인터넷에서 '비법정탐방로에 갔으니 불법'이라 쏘아붙였다. 도로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웠더니 무단횡단이라 힐난 받은 느낌이라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또 단순히 그 문장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되는 저변과 구조가 짜증났다.

"그저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쇠락해 가는 백두대간 산촌 마을을 복구하자면서 정작 백두대간을 가장 많이 가는 등산객들의 완전종주를 막는 것부터 이해가 안 가요. 365일 수십만 명씩 대간길을 밟아대자는 것도 아니고 예약제로 1인당 4만~5만 원씩 받아서 다른 탐방예약제 노선처럼 500명, 1,000명 인원 제한을 두면 되는 것 아닐까요? 뭐든 일단 막고 보는 게 너무 답답합니다."

군대에서 배운 산과 자연은 이렇게 자유가 속박된 공간이 아니었다. 자연이 주는 고난을 그대로 몸으로 받고, 또 그걸 슬기와 끈기로 이겨내는 시간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해외로 나갔다. 일본도, 유럽도, 미국도 통행과 취사와 야영의 자유가 훨씬 폭넓게 보장됐다.

박씨는 "물론 나라마다 산림구조가 다르다는 특수성이 있는 걸 감안해서 더 교육을 하고 제한을 둔다는 전제로 조금은 열 수 있는 만큼은 세계표준에 맞게 열어 주고, 또 산 다니는 사람들은 지킬 건 잘 지키면 문제없이 모두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해외트레킹은 콘셉트가 딱 정해져 있다. 한 달 살기다. 어느 지역, 어느 코스든 거기서 한 달을 뼈빠지게 걸었다. 돌로미티 알타비아2, 히말라야는 쿰부쓰리패스 쓰리 리Li, 안나푸르나, 마르디히말 트레킹 등을 했다. 일반적으로 트레커들이 많이 가는 곳이기도 하고, 여행사 상품으로도 널리 판매되는 곳이라 친숙한데 그는 좀 남다르게 걷는다. 산장도, 로지도 이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백패킹이다.

서울 용산공원에서 만난 박남규씨.

"배터리 충전을 해야 할 때만 숙소에 들어가서 잤어요. 그 외에는 정해진 캠프사이트나 마을 주민들이 예쁘고 좋다고 알려주는 곳을 찾아갔죠."

운행은 최대한 느리게 했다. 하루에 10~15km를 8~9시간에 나눠 걷는다. 무게와 고소 때문에 더 빠른 운행은 어려웠다. 30일치 식량과 야영장비에 취사장비까지 들어가니 배낭무게가 30kg을 훌쩍 넘긴다. 그나마 특전사 훈련 덕인지 트레킹 중 먹는 양이 극단적으로 적어서 그 정도다.

"요새 말로 '치팅 데이'처럼 중간에 제대로 된 음식을 사먹을 수 있을 때는 사먹어요. 기본 식단은 아침에 일어나 믹스커피 하나 끓여 마시고, 걷다가 점심에 에너지바 1~2개 먹고, 저녁에 라면 하나. 이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보통 한 번 트레킹 다녀오면 몸무게가 7~8kg씩 빠지죠."

여행사 상품가 1/5 가격으로 트레킹

이런 방식을 택한 건, 예산을 절감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히말라야는 로지를 전부 이용하면서 걸으면 500만~700만 원쯤 드는데 그는 이 방식으로 100만 원에 끝냈다. 2주 안나푸르나 서킷은 비행기 값을 뺀 현지 경비만 36만 원이 들기도 했다. 로지에서 2만 원짜리 치킨을 주문해도 그 정도였다. 치킨을 주문해야 배터리 충전이나 빨래도 할 수 있어서 사먹었다. 숙박을 하면 모두 무료서비스다.

돌로미티도 보름간 20만 원 정도 썼다. 현지에서 커피랑 음식, 마을로 내려가서 산 사과와 콜라 정도였다. 박씨는 "보통 여행사 상품가의 20% 수준으로 다닌다고 보면 된다"며 "나쁘게 말하면 개고생이지만 좋게 말하면 남들은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면서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만나는 주민이나 트레커들도 소위 때깔이 다르니 태도가 다르단다. 일반 상품으로 온 사람은 비교적 멀쩡한데, 거대한 배낭을 메고 초췌한 몰골로 다니면 그에게 '어떤 계획인지', '필요한 건 없는지' 등을 물어보며 정보도 주고 응원도 해준단다.

등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사진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트레이드마크는 점프샷.

"이렇게 산을 다니니 확실히 변한 게 있어요. 산에 있으면 모든 환경이 열악하죠. 물 한 방울도 소중할 정도로요. 그러다 현실로 돌아오는 경험이 누적되니까 원룸에 살면서 아파트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던 제가 지금은 '이 정도면 훌륭한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미 내 주변에 행복이 공기처럼 떠다니고 있고, 그걸 들이쉬고 있었는데, 이제야 숨을 쉬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물질적인 성공보다 편안한 행복을 생각하는 경향도 높아졌고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산을 올랐는지, 얼마나 어려운 길을 얼마나 빠르게 걸었는지를 견줄 때 그는 그저 자신의 보폭으로 자신의 산길을 걷는다. 그게 등산이고, 그게 재미다. 인스타그램 보면서 남의 산행을 따라가려 하거나 '좋아요'를 많이 받을 산행을 하려 하지 않고, 그냥 내가 재밌는 걸 하면 된다. 그에게 산은 놀이터다.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다. 채널명은 'SWC134 산쟁이 충청머시매'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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