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고의 가치도 없는 ‘항미원조’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6. 6. 11. 07:03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에는 중국인도 무척 많다. 6·25 전쟁 당시 다 망해가던 북한이 중공군의 참전 탓에 가까스로 되살아난 점을 기억하는 한국인으로서 썩 달가운 일은 아니다. 기념관 전시물은 전쟁 당시 중국의 지배자이던 마오쩌둥(毛澤東)의 얼굴 사진을 북한 김일성, 소련(현 러시아) 이오시프 스탈린과 나란히 게시하며 ‘침략자’라고 명백히 규정했다. 마오를 국부(國父)로 여기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보기에는 다소 언짢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명백한 ‘팩트’(사실)인 것을 어떡하겠나.

지난 2021년 중국에서 ‘장진호’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6·25 전쟁 첫해인 1950년 11∼12월 함경남도 장진군 일대에서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중공군과 격돌한 장진호 전투가 영화의 배경이다. 당시 유엔군은 우세한 화력과 공군력을 토대로 중공군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에게 사상자 수는 별 의미가 없었다. 결국 유엔군은 중공군 포위망에서 벗어나 동해안의 흥남까지 후퇴해야만 했다. 이후 유엔군 장병과 피난민들이 선박으로 북한 지역을 탈출해 남한으로 이동한 것이 저 유명한 ‘흥남철수작전’이다.
그런데 영화 ‘장진호’는 이 같은 6·25 전쟁의 역사를 모두 제거한 채 중공군 장병들의 영웅적 행위를 선전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했다는 대목을 쏙 빼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만 보면 마치 ‘제국주의 미국이 먼저 북한(조선)을 침략했고, 미국에 저항하는 북한 지원을 위해 중국도 참전했다’는 식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영화 ‘장진호’에 남한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이 왜 6·25 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운) 전쟁’이라고 부르며 한국은 ‘투명인간’처럼 취급하는지 깨닫는다.

전쟁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가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6·25 전쟁, 서로 다른 해석’이란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려다가 역풍을 맞았다. 사업회에 따르면 중국에서 쓰는 ‘항미원조’라는 표현이 왜 일고의 가치도 없는지 지적하는 것이 원래 목표였는데, 항미원조의 의미를 널리 알리려는 취지인 것처럼 잘못 알려졌다고 한다. 사업회가 뭐라고 변명하든 시민들의 거센 반발은 당연하다. 6·25 전쟁 당시 전사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전당이 어쩌다 그랬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사업회는 “6·25 전쟁의 역사적 사실과 호국보훈의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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