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료제품법의 도입과 한계 [지평 테크레이더]

2026. 6. 1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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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주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AI, 빅데이터, 소프트웨어 기술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기존 의료기기법 체계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의료제품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2025년 시행된 ‘디지털의료제품법’은 국내 디지털 헬스 규제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도적 진전
디지털의료제품법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규제 대상의 확장이다. 종래 의료기기법이 물리적 장비 중심의 규율에 머물렀다면, 이 법은 AI 기반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디지털의료기기, 디지털융합의약품, 디지털의료ㆍ건강지원기기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을 도입했다(제2조 제1호). 특히 ‘허가 중심’ 규제를 넘어 제품의 전 생애주기(TPLC)를 고려한 관리체계(제36조 제1항)를 채택한 점, 변경관리 계획을 통해 AI 제품의 지속적 업데이트를 일정 범위 내에서 수용한 점은 규제 패러다임의 실질적 전환으로 볼 수 있다(제11조 제1항 및 제2항, 디지털의료제품법 시행규칙 제23조 제2항).

실사용데이터를 활용한 실사용 평가 제도(제15조 제1항), AI 알고리즘 구성요소에 대한 성능평가(제40조), 허가 전 사전 검토 제도(제39조) 등도 기업 입장에서 반가운 변화다. FDA의 SaMD(Software as a Medical Device) 규제 프레임워크나 EU MDR(EU 의료기기 규정)이 실사용증거(RWE)를 지속적 안전성 검증의 핵심 수단으로 채택한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한다. 우수 관리체계 인증 시 허가 자료 일부를 면제해주는 조항(제18조 제1항)은 스타트업의 규제 부담을 낮추는 실용적 장치로 기능한다.

남아 있는 과제들
그러나 제도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이 법이 풀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많다.

우선, 규제 대상 판단 기준의 모호함이다. 해당 기술이 의료적 판단이나 치료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제2조 제2호), 이 기준 자체가 지나치게 개괄적이어서 결국 사례별 해석에 기댈 수밖에 없다. 비침습적 기술을 이용한 웰니스 제품과 의료기기 사이의 경계 문제는 규제 적용 여부를 둘러싼 기업의 불확실성으로 직결된다.

[제미나이]
다음으로 책임 귀속의 문제다. AI 의료기기가 오류를 일으켰을 때 개발사, 의료인, 의료기관 간 책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특히 소프트웨어가 제조물책임법상 ‘제조물’에 해당하는지 자체가 불분명하다. 긍정설은 무체물에도 결함 책임을 확장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부정설은 소프트웨어는 유체동산이 아니므로 현행 제조물 개념에 포섭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업데이트된 알고리즘이 문제를 일으킨 경우 이 논쟁은 더욱 첨예해진다.

의료데이터 활용과 개인정보보호 간의 긴장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실사용 평가가 확대될수록 방대한 의료데이터 수집과 공유가 전제되는데, 이는 개인정보보호법 체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의료데이터는 의료인의 전문적 판단이 개입된 정보라는 점에서 데이터 소유권 귀속 문제가 민감하며, 수만 개에 달하는 의료기관들 사이에서 실질적 정보 공유를 이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가명화와 재식별 가능성, 데이터 이동권 같은 세부 쟁점들도 향후 규제 충돌의 진원지가 될 공산이 크다.

사이버보안 의무(제13조, 제14조)의 확대가 중소기업ㆍ스타트업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는 문제, 의료기기법ㆍ약사법 등과의 복잡한 준용 구조(제5조 제1항)가 초래하는 규제 불확실성, AI 기반 기기가 원격지에서 의료 판단을 보조하는 경우 의료법상 원격의료 규제와의 충돌 가능성도 실무적으로 중요한 현안이다.

결국 관건은 예측 가능성
결론적으로, 이 법이 ‘허가 중심 규제의 종말’을 선언했다고 보기는 이르다. 다만 TPLC 기반 관리, 실사용 평가, 변경관리 제도를 통해 그 방향으로의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평가는 가능하다.

법의 성패는 규제의 존재 여부보다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에서 갈린다. 신기술과 관련된 규제는 우선허용ㆍ사후규제 원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하위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을 통해 해석 기준을 신속히 명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규제 당국과 산업계 사이의 지속적 대화 채널도 그만큼 중요하다. AI 기반 의료 환경이 현실이 된 지금, 디지털의료제품법은 단순한 개별 법률을 넘어 새로운 의료 규제 패러다임의 기틀로 자리 잡아야 한다.

[지평 테크레이더]에서는 ­AI, 데이터,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급변하는 법·제도 환경을 기업ㆍ기관 실무자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전달하고자 합니다. 정진주 변호사는 약사 출신 변호사로서 지평 IPIT그룹 및 AI바이오헬스케어센터에 소속돼 지적재산권, 제약 ∙ 바이오 ∙ 의료 관련 소송 및 자문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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