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급받았더니 다시 내라”… 美와 관세 분쟁 나선 K-배터리
美 상호관세 무효 판결에 관세 환급 신청 잇따라
전기차 캐즘·中 공세에 적자 늪 빠진 K-배터리, 수천억 환급금 사수 나서
‘무역법 301조’ 적용 여부 새 쟁점… 추가 추징 가능성도 부상

[대한경제=이계풍 기자]국내 배터리 업계가 미국 정부와 새로운 관세 분쟁에 직면했다. 미국 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에 따라 관세 환급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미국 정부가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일부 환급금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과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미국 정부와의 마찰 가능성을 감수하면서도 환급 권리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수백억~수천억원 규모의 환급금이 현금흐름과 투자 여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미국 세관을 통해 관세 환급 절차를 진행 중이다. 회사가 신청한 환급 규모는 3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1000억원 안팎을 돌려받은 것으로 전해지며, 환급 절차가 최종 마무리되면 실제 수령액은 더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SDI도 관세 환급을 신청한 상태이며 SK온은 관련 절차를 검토 중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상호관세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렸다. IEEPA는 국가 비상사태 시 수입 제한 등 경제 조치를 허용하지만 관세 부과 권한까지 부여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후 미국 세관은 지난 4월부터 관세 환급 절차에 착수했고 국내 기업들도 잇따라 환급 신청에 나섰다.
하지만 최근 미국 정부가 무역법 301조를 새로운 변수로 꺼내 들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미국은 공급망 관리 체계와 강제노동 관련 규제 이행 여부를 무역 정책과 연계하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부 품목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는 미국 사업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 내 생산 과정에서 활용되는 소재와 부품 상당수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조달되는 만큼 추가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환급 효과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원가 부담까지 높아질 수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301조 적용 품목에 대해 환급이 제한될 경우 이미 지급된 환급금에 대한 추징 논란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업계가 미국 정부와의 갈등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환급 절차를 밟는 배경에는 녹록지 않은 업황이 자리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한 가운데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수익성도 압박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EV·PHEV·HEV) 배터리 사용량은 162.7GWh로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시장점유율은 28.7%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5%포인트 하락했다. 중국 CATL과 BYD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비중국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실적도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207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고, 삼성SDI도 236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SK온 역시 349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를 이어갔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중국 업체들의 가격 공세가 장기화하면서 배터리 업계의 수익성 확보가 최대 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관세 환급금이 단순 비용 절감을 넘어 현금흐름 개선과 투자 재원 확보에 직결된다고 보고 있다. 북미 공장 증설과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환급 권리를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은 수조원 단위 투자를 전제로 움직이는 산업”이라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해외우려기관(FEOC) 규정에 이어 관세 문제까지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미국 사업 전략을 짜는 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계풍 기자 kp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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