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없인 에너지 안보도 없다" AI 데이터센터가 연 전력 패권 시대 [박일근의 이코노픽]

박일근 2026. 6. 11. 04:3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 조석 HD현대 부회장-미운 오리 새끼 적자 기업이 백조가 된 비결
편집자주
다양한 경제, 산업 현장의 이슈와 숨겨진 이면을 조명합니다.
조석 HD현대 부회장이 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전력 인프라 시장이 뜨겁다. 그렇지 않아도 기후변화와 전기차 확대로 전기 사용량이 커지던 와중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광풍이 기름을 부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너도나도 AI 데이터센터 경쟁에 뛰어들며 전력과 전기 관련 기업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해외 고객사들은 가격 불문하고 ‘언제까지 줄 수 있느냐’부터 묻는다. 지금 주문을 넣어도 3년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병목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압기 품귀에 관련 기업들은 매출과 이익도 급증하고 있다. 산업통상부에서 30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다 2019년 민간으로 옮겨 미운 오리 새끼나 다름없던 적자 기업을 영업이익률 24%대의 화려한 백조로 변모시킨 조석 HD현대 부회장을 만나 전력 시장 호황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지 물었다.


-전력 인프라 시장은 어느 정도 호황인가.

“지금은 전 세계가 '석유 패권'에서 '전기 패권'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다. 석유의 시대에서 전기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연평균 4%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30년 현재의 두 배 이상인 약 945테라와트시(TWh)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적으로 전기 수요가 이렇게 빨리 늘어난 적은 없다.”

강준구 기자

-전기 수요가 왜 이렇게 증가하나.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후변화다. 여름엔 더 덥고 겨울엔 더 추워지며 냉난방 수요가 전기로 몰리고 있다. 예전엔 난방을 주로 가스보일러로 했는데 최근엔 히트펌프를 사용해 전기를 쓰는 경우도 많다. 둘째, 전기차다. 내연기관 자동차 한 대가 쓰던 에너지원이 통째로 전기로 바뀌었다. 셋째, AI와 데이터센터다. 데이터센터는 전기 폭식자다. 1만 개도 넘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력량이 일본의 연간 전력 사용량에 맞먹을 정도로 커졌다. 전기의 위상 자체가 바뀐 것도 중요하다. 전기는 저장도 안 되고 효율도 낮아 조명이나 켰던 '2차 에너지'였다. 그런데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술이 발전하며 이제 전기는 가장 범용적인 에너지가 됐다.”


-전기 수요 급증과 변압기가 무슨 상관인가.

“물로 비유하면 쉽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저압 그대로 보내려면 수도관이 상상을 초월하게 커야 한다. 그걸 압축해서, 즉 고압으로 바꿔 보내면 훨씬 작은 관으로도 가능하다. 그리고 집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처럼 소비 지점에선 다시 저압으로 낮춰줘야 쓸 수 있다. 그 역할을 하는 게 변압기다. 전기 수요가 늘어난다는 건 결국 변압기를 포함한 전력망(그리드) 전체 수요가 증가한다는 뜻과 같다.”


-변압기 공급은 왜 부족한가.

“구조적으로 전기 수요가 높아지다 보니 공급이 못 따라가고 있다. 변압기는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숙련 인력이 필요해 공장을 짓는다고 바로 생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문 기관에선 이러한 추세가 최소 2035년까진 지속될 것으로 본다. 실제로 지금 주문을 하면 납기까지 3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시장 전체가 그렇다.”

강준구 기자

-HD현대일렉트릭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100메가볼트암페어(MVA) 이상 대용량 변압기 기준, 미국 시장에서 HD현대일렉트릭의 점유율은 25%도 넘는다. 지멘스, GE, 히타치(구 ABB 전력부문) 같은 글로벌 강자들을 제치고 1위다. 특히 납기와 품질에 강점을 갖고 있다. 지금 고객이 원하는 건 가격보다 납기와 품질이다. AI 데이터센터 하나 짓는 데 수천억 원이 들어가는데 변압기 납기가 하루만 늦어도 전체 일정이 뒤틀린다. HD현대일렉트릭의 납기 준수율은 사실상 100%다. 더구나 품질 실패 비용은 매출 대비 1% 미만이다. 품질도 거의 완벽하다는 얘기다.”


-납기와 품질을 동시에 잡은 비결이 뭔가.

“하나는 제조 공정 자체를 철저하게 관리해서 불량이 아예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 일정을 정밀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변압기를 만들면 공급 전에 시험실서 고압 테스트를 한다. 테스트에 실패하면 제품을 다시 뜯고 원인을 찾아 고쳐야 한다. 그럼 납기를 지킬 수 없다. HD현대일렉트릭은 약속한 납기보다 두 달 앞서 선행 테스트를 끝낸다. 테스트에서 실패할 경우까지 감안해 여유를 두는 것이다. 생산 일정 관리는 영업이 주문을 받을 때부터 시작된다. 공장의 어느 라인이 언제 비는지를 실시간으로 공유, 주문과 동시에 생산 일정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영업과 설계, 생산이 긴밀하게 맞물려 퍼즐처럼 딱딱 맞춰 돌아가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를 통해 우주에 AI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한다. 수상 데이터센터 얘기도 나온다. 변압기 수요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나.

“우주 데이터센터에서도 원리는 달라지지 않는다. 태양광 패널에서 전기를 만들어 바로 쓴다 해도 이를 이동시키거나 용량을 맞추려면 전압을 올렸다 낮췄다 하는 변압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수상 데이터센터는 우주 데이터센터 추진보단 현실적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기회라고 본다. 사실 HD현대일렉트릭은 현대중공업의 사업부로 출발했다. 고 정주영 현대 창업 회장이 배보다 돈이 된다 싶어 시작한 사업이다. HD현대는 선박용 기자재도 만드는 만큼 바다 위에 데이터센터를 짓는다면 선박 기반 변압기가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지난달 22일 미국 텍사스에서 스타십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머스크는 우주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란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 에너지 전환 시기 정부가 에너지 안보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게 대명제다. 전기 없인 에너지 안보도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은 수도권과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형성된 산업 벨트인데, 발전소는 동해안과 서해안, 서남부로 분산돼 있다는 사실이다. 전기를 생산해 소비처까지 옮기려면 대규모 송전망이 필요한데, 송전탑은 혐오시설로 인식돼 지역 주민 반발이 거세다. 실제로 동해안 화력발전소들은 송전망이 없어 가동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대안으로 ‘지산지소’(地産地消)를 검토해볼 수 있다. 발전지 인근에 공장이나 소비처를 배치, 장거리 송전 필요성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은 기업들이 원하는 곳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 에너지 문제는 이해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는 분야다. 이러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건 정부밖에 없다. 이해충돌이 큰 만큼 조정자가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을 우리 사회가 존중해 줘야 하고, 조정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문화도 요구된다.“

조석 HD현대 부회장이 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전력 인프라 분야의 호황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기술이다. 지금은 호황이지만 제조업 역량 자체는 서서히 위협받고 있다. 숙련 인력은 점점 은퇴하는데 젊은층은 제조 현장으로 오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결국 기술로 승부를 봐야 한다. 특히 저소음·친환경 기술이 중요하다. 미국에선 들판에 변전소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아 소음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유럽에선 도심 한복판에 변전소를 지어야 해 소음 기준이 엄격하다. 지멘스나 히타치에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이유 중 하나다. 저소음·친환경 기술만 있어도 가격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소득 수준으로 가고 인구가 줄면 결국 지식 기반 산업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밖에 없다.”


-관료 출신에서 민간 기업 CEO로 성공한 예는 많지 않은 것 같다.

“HD현대에는 빠르고 기민한 걸 중시하기보다 진중하게 기다려주는 문화가 있다. 그런 문화의 덕을 많이 봤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역시 사람이 전부였다. 경영의 핵심은 구성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에이미 에드먼슨 하버드대 교수도 두려움 없는 조직이 되기 위해선 조직원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상사와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말해도 불이익이 없다는 확신이 있어야, 침묵의 굴레에서 벗어나 조직의 진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그래야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문제가 없다는 게 실제로는 문제가 있어도 말을 못 하게 한 것뿐이라면 그야말로 문제다. 지금 시대에는 영웅 한 사람이 '나를 따르라'로 끌어가는 리더십보다,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꺼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강준구 기자

-조직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나.

“처음 왔을 때 회사가 적자였고, 직원들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우선 조직의 체질 개선을 위한 DNA(Do it Now, Action!) 혁신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기존 원가 절감 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것으로, 이미 전 세계 300여 개 기업에서 시행해 성과가 컸다. 골자는 임직원이 직접 참여해 개선 과제를 발굴하고 실행한 뒤 성과에 대해선 철저히 보상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기존 부품을 기능은 같은데 가격은 더 싼 걸로 바꾼다고 해보자. 예전엔 이게 쉽지 않았다. 괜히 바꿨다가 문제가 생기면 책임만 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럼 경쟁사나 선진 기업들은 어떻게 하는지 먼저 알아보자고 했다. 맥킨지는 이런 부분에서 자료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줬다. 실제로 새 부품을 써 봤더니 기능엔 아무 문제가 없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하면 그 팀에 보상을 하는 식으로 2년간 1,000개가 넘는 과제를 수행했다. 점차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기 시작했고 마침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터지면서 실적도 올라갔다. 운이 좋았다. 결국 조직도 구조 이전에 사람들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셈이다. 숫자보다 사람을,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앞으로는 조직원 모두가 서로 소통하며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제 리더도 조화와 합의를 이끌어낼 줄 아는 ‘하모나이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시대정신이라고 믿는다.”

조석

1957년생

1981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 25회 행시 합격

1997년 미주리주립대 경제학 석사

2001년 산업자원부 총무과장

2006년 산업자원부 에너지정책기획관

2007년 경희대 경제학 박사

2009년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2011년 지식경제부 2차관

2013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2015년 세계원전사업자협회장

2019년 현대일렉트릭 사장

2025년 HD현대 부회장

박일근 한국일보 수석 논설위원

박일근 수석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