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용 다 빼먹고 탕탕탕...유해동물로 버려진 꽃사슴의 '살권리'

2026. 6. 11.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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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하의 생태소양]
<3> 허점 많은 야생 생물 정책
복원 대상인 '대륙사슴' 동종 불구
제주·굴업도 등 지자체선 사살 시작
'식생 파괴' '주민 피해' 등 근거 빈약
'순종주의' 이유 사육 곰도 복원 배제
꽃사슴. 정부가 지난해 꽃사슴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하면서 포획이 가능해졌다.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 제공

생태는 이 시대의 키워드다. 사실은 모든 시대의 키워드라 해야 맞다. 다만 최근 들어 조금 더 강조됐을 뿐. 생명이 어떻게 관계 맺으며 서로 엮여 살아가는지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단 말인가? 돌이나 물, 빛이나 공기 같은 무생물에는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차피 중요함과 의미를 따지는 존재들은 아니다. 살아 있는 생명인 이상 삶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리고 모든 삶을 가능케 하는 원리가 바로 생태다.

우리 사회가 가진 좋지 않은 버릇이 하나 있는데, 특정 단어를 남용한 나머지 그 개념을 붕괴 시키는 일이다. 갑자기 어떤 말이 새롭게 조망되면서 사회적 집중을 받아 '뜨면' 이내 아무 데나 무분별하게 쓰여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급기야 원래의 단어는 제대로 이해 또는 활용되지도 못한 채 더 이상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폐기된다. 여전히 사용은 되지만 신선함이나 깊이 없이 그저 사전적 의미에 국한된 무언가로 전락하고 만다.

생태는 바로 이 과정을 진하게 겪은 단어다. 과학 안에서는 물론, 사회·경제·정치·문화 심지어는 기술 분야에서조차 온갖 방식으로 쓰이면서 원래의 의미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다. 이제는 어떤 단순 '관계성' 정도의 의미로 통용되는 단어로 축소된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생태 자체와 생태학은 그 중요성에 비해 여전히 사회적 인정과 영향력이 약하다. 대신에 '비즈니스 생태계' 같은 말이 오히려 더 자주, 더 전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생태의 개념이 생태학적인 맥락을 벗어나는 이러한 현상은 예상찮게 한 가지 깨달음을 준다. 과학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과학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많은 일에 실은 비과학적인 요인들이 깊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한국의 야생 동물이라는 개념이다. 즉, 어떤 동물이 이 땅에 야생으로 살아도 되고 어떤 동물은 안 되는지에 대한 결정 말이다.

2월 9일 제주 한라산 제주마 방목지를 찾은 꽃사슴 무리가 설원을 누비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가령 꽃사슴을 예로 들어보자. 꽃사슴은 녹용 등 농가소득 확대를 위해 일본·대만에서 들여왔다가 여러 이유로 탈출해 산림에 퍼져나간 동물이다. 정부는 지난해 야생생물보호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꽃사슴을 유해동물로 지정해 사살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동물은 '한국의 야생 동물'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꽃사슴은 정부가 복원하고자 하는 멸종위기종 대륙사슴과 같은 종이다. 예전부터 한반도에 살았지만 무분별한 사냥으로 조선시대부터 급격히 사라진 것뿐이다. 그래서 국립생물자원관이 2018년에 발간한 '한국 포유류 도감'에도 버젓이 등재된 동물이다. 물론 농장으로부터 탈출한 사슴은 일본·대만의 아종이지만 그것만으로 서식 자격이 박탈되는 것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분류학적으로 '이종'이 아니라 '동종'이기 때문이다. 아종 수준의 유전적 차이는 때로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절대적인 잣대는 분명히 아니다. 게다가 원래 살던 아종의 개체군이 절멸한 상태에서는 그 차이가 더더욱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꽃사슴 사살을 앞장서 시행하고 있는 두 곳의 상황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얼마나 비과학적 동인들이 압도하고 있는지가 나타난다. 우선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사살을 시작한 제주도는 꽃사슴이 외부에서 온 동물이고 자생식물을 위협한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우선 꽃사슴은 외부 동물이 아니라 제주도에 원래 사슴이 살았다는 사실이 문헌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나비학자 석주명은 1940년대 중반에 제주도에 근무하면서 다양한 기록을 남겼는데, 2008년에 발간된 '제주도수필'에서 "한라산에는 산돼지와 사슴이 있었으나 20여 년 전에 전멸됐다고 한다"고 쓰고 있다. 또한 그가 인용하는 아오야기 쓰나타로의 '제주도안내'라는 문헌을 보면 한라산에 조선사슴(꽃사슴)이 풍부했다가, 남획으로 당시에 절멸된 상황을 알 수 있다. 꽃사슴은 오늘날 급조해 갖다 붙인 '유해동물'이 아니라, 원래 제주도 생태계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인천 옹진군 굴업도. 굴업도에 서식하는 꽃사슴 개체수는 지난해 기준 178마리로 조사됐다.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 제공

꽃사슴이 식생에 미치는 생태적 영향에 대해선 살처분이 이뤄지고 있는 또 다른 곳인 굴업도의 사례와 연관 지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꽃사슴의 생태적 영향은 모두 과학적으로 평가된 적이 없는 추정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도 조선시대의 섬에는 염소, 사슴, 말 등 다양한 가축이 조정의 공납 등을 목적으로 사육되었다. 특히 인천 서해 도서는 서울과 가깝고, 물과 초지가 풍부하며, 섬 자체가 천혜의 자연 울타리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다수의 섬이 목장으로 운영되었다. 그로 인해 이미 이 섬들은 가축이 인간과 함께 드나들며 교란-회복의 과정을 겪은 상태이며, 섬의 고유 식생이 최근 들어 파괴됐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굴업도의 경우는 섬 주민들이 꽃사슴의 제거를 원한다는 근거가 추가로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가 몸담은 생명다양성재단 현장조사 결과, 굴업도 주민 대부분을 대상으로 한 탐문 조사에서 세간의 보도와는 달리 관광에 도움이 되고, 농작물 피해가 그렇게 크지 않으며, 오히려 사슴과 공존을 원한다는 의견이 절반에 달했다. 꽃사슴 사살이 벌어지고 있는 서해 다른 도서인 안마도의 주민 또한, "개체 수 조절을 원하는 주민이 많지만, 사슴이 900~1,000마리 가까이 된다는 조사는 민원에 의해 과장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피해의 정도, 여론의 향방, 개체 수 등 모든 측면에서 비과학적 논의가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 연천 농가에 살던 사육곰이 철창 사이로 입과 코를 내밀고 있다. 이 곰은 구조된 뒤 전남 구례 곰 보호시설로 이송됐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난 2001년부터 지리산에 복원된 반달가슴곰의 경우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원래 한국에 서식했던 우수리 아종을 복원한다면서 러시아, 중국, 북한에 살던 '외국' 곰을 들여왔지만, 사육곰은 절대로 복원의 대상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2년 사육곰 농가 전수조사에서 보담이라는 이름의 사육곰이 우수리 계통과 가깝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이 개체를 복원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됐다. 그러나 정부는 거부했다. 모계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에서 우수리 계통과 관련이 높지만, 부계 유전자 분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러한 '순종주의'야말로 생태적인 근거 없는 발상이다. 유전자 분석이라고 해도 여권처럼 국적을 명확히 구분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야생 동물의 살 권리를 인간이 자의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 월권이라는 근본적 문제와 함께, 제시되는 근거들이 과학적이지도 생태학적이지도 못하다는 심각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야생동물은 웬만해서는 자연에 살게끔 놔두어야 한다. 게다가 이 모든 논의들을 재고하게 만들 새로운 자연보전 패러다임인 '리와일딩(Rewilding)'이 급부상 중인 국제적 상황에 비추어보면 더욱 무의미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에 대해선 다음 회차에서 본격적으로 다뤄보기로 하겠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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