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억 거대 시장 뚫은 ‘디지털 동맹’…韓-EU, 2500억 투자 품고 경제영토 확장

김윤정 2026. 6. 11.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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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5대 교역국 최초 ‘DTA’ 체결…현지 데이터센터 구축 의무 폐지
소스코드 이전 강요 원천 차단…K-빅테크·콘텐츠 ‘안전판’ 확보
獨·佛 등 유럽 4개 첨단기업 1.65억 달러 韓 투자…핵심 거점화
‘경쟁력 파트너십’ 출범·‘고위급 대화’ 신설…EU 보호무역 선제 대응
이재명 대통령과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가운데), 우르즐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1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이사회 본부에서 디지털 통상 협정(DTA) 서명식이 끝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이재명 대통령,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즐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마로스 셰프초비치 통상 경제 안보 집행위원. [연합뉴스]


대한민국과 유럽의 첨단기술과 디지털 교역, 핵심 공급망을 아우르는 거대한 ‘디지털 경제동맹’이 성사됐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인구 4억 5000만 명, 국내총생산(GDP) 18조 유로에 달하는 제3지대 거대 단일 시장인 유럽과 독자적인 데이터 경제 영토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청와대와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과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즐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경제안보 집행위원이 1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한-EU 디지털통상협정(DTA)’에 정식 서명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맺은 양자 DTA이자, 주요 5대 교역 상대국과 체결한 최초의 디지털 전용 통상협정이다.

이번 협정의 핵심은 ‘데이터 비즈니스 자유화’에 따른 진입 장벽 철폐다. 협정 발효 시 공공 목적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컴퓨팅 설비 및 데이터 현지화 요구가 전면 금지된다. 우리 기업이 3조 324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EU 디지털 서비스 시장에 진출할 때,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현지 데이터센터를 지을 필요 없이 국내 서버에서 자유롭게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K-콘텐츠와 빅테크 기업들의 핵심 영업기밀인 소프트웨어 소스코드의 이전이나 접근 강요를 원천 차단하는 강력한 ‘제도적 방패’도 마련했다. 이 밖에도 전자상거래 소비자 권리 강화, 사이버 보안 사고 발생 시 대응 협력, 전자서명 상호 인증, 전자 송장 및 지급 결제의 표준화 등 교역 원활화 조치가 대거 포함돼 기업 간 거래 처리의 신속성과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디지털 영토의 확장은 물리적인 첨단산업 공급망의 초밀착과 대규모 실물 투자 유치로 직결됐다. 산업부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현지에서 ‘유럽지역 투자신고식’을 열고 양자컴퓨터, 반도체 장비 등 신산업 분야의 유럽 첨단기업 4개 사로부터 총 1억 6500만 달러(약 2500억 원) 규모의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끌어냈다.

독일 첨단소재 기업 ‘오라폴’은 한국 내 반사필름 공장을 증설해 아태지역 수출 허브로 삼고, 프랑스 양자컴퓨터 선도기업 ‘콴델라’는 한국을 연구개발(R&D) 및 제조 거점으로 육성한다. 네덜란드 첨단장비 모듈 제조사 ‘프로드라이브 테크놀로지스’는 한국 법인을 최초로 설립해 국내 반도체 공급망에 전격 합류하며, 스웨덴 전자부품 장비 기업 ‘마이크로닉’ 역시 한국을 아시아 연구 거점으로 낙점했다.

정부도 파격적인 지원과 규제 혁파를 약속하며 세일즈 외교에 힘을 보탰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강경성 KOTRA 사장, 필립 반 호프 주한유럽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참석한 ‘유럽투자가 라운드테이블’을 직접 주재했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국의 경쟁력 있는 첨단산업 공급망과 인공지능(AI) 생태계가 유럽 기업들에 새로운 협력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외국인 투자 인센티브를 지속해서 확대하고 규제 환경을 과감히 개선해 투자 과정의 애로사항이 적시에 해결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화답했다.

양측은 이러한 다방면의 실질적 성과를 거시적으로 아우르기 위해 견고한 컨트롤타워도 새롭게 세웠다. 양측은 이번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통상, 투자, 공급망, 첨단기술 등을 총망라하는 최상위 경제 협력 구상인 ‘경쟁력 파트너십(Competitiveness Partnership)’을 공식 출범시켰다.

나아가 기존에 실무 단위로 파편화되어 있던 통상·산업정책 협의 채널을 격상하고 총괄 조율하는 ‘고위급 경제대화(HLED)’도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유럽의 핵심광물원자재법(CRMA) 등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짙어지는 상황 속에서, 1300억 달러 규모의 양자 교역 관계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EU의 주요 산업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강력한 ‘협상 지렛대’를 확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윤정 기자 kking15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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