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집회 앱 만들고, 태극기 그려 나눠주고... 잠실 집회 이끈 2030 ‘소셜 시티즌’

2030 청년들은 주말이었던 지난 6~7일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잠실 참정권 집회’를 이끌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SNS)로 소식을 듣고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투표함 개표가 진행된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 모여 “이번 사태로 ‘공정’과 ‘참정권’이 훼손됐다”고 외쳤다. 집회 현장에서 지켜본 이들은 누구의 지시나 통제 없이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집회에 참가한 2030에게서 ‘소셜 시티즌(Social Citizen)’의 면모가 엿보인다고 했다. 이들이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자발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사회·정치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이다. 본지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집회 현장을 찾은 2030세대 3인을 만나 집회에 나온 이유와 소감을 들어봤다.
◇태극기 1000장 그려 나눠준 이환원씨
경기 하남에 사는 직장인 이환원(31)씨는 유튜브를 통해 이번 집회 상황을 알게 됐다. 이씨는 결국 토요일인 6일 오후 4시 집회 현장을 찾았다. 이씨는 “처음부터 태극기를 그려서 시민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보다시피 이곳에선 집회를 주도하는 조직이나 집단이 따로 없다”며 “하지만 시민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태극기를 생각해냈다”고 했다.
이씨는 곧장 인근 문구점으로 달려가 도화지와 펜을 사 왔다. 그는 “혼자 바닥에 앉아 태극기를 그렸는데 이를 본 시민들이 하나둘 손을 보탰다”며 “국민의 소중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는 분노가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씨는 7일 새벽 2시까지 시민들과 함께 태극기 1000장을 그려 집회에 나온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7일 오후에도 이씨는 집회 현장을 찾았다. 이날 밤 11시 만난 이씨는 가로등 아래서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도화지에 태극기를 계속 그리고 있었다. 옆에는 ‘재선거’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와 태극기 그림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시민들이 건넨 음료와 간식도 가득했다.
◇집회 혼잡도 앱 만든 하성준씨
지난 6일부터 잠실 집회 참가자들은 ‘실시간 핸드볼경기장 혼잡도 안내 앱’을 활용하고 있었다. 핸드볼경기장 출입구별 인파와 혼잡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앱이다. 집회 참가자가 가까운 경기장 입구에 모인 인원 수를 앱에 입력하면 데이터에 반영돼 위치별로 실시간 인파를 계산해 내는 참여형 앱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 앱을 보고 집회 질서를 유지했다.
이 앱을 제작한 하성준(35)씨는 캐나다의 한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개발자다. 6일 아침 집회 현장에 온 하씨는 밀려드는 인파를 보고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겠다는 우려가 앞섰다고 한다. 그는 곧장 노트북을 꺼내 들고 경기장 인근 계단에 쪼그려 앉아 2시간 만에 앱을 개발해 배포했다. 그는 “이제 막 사회에 나와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청년 세대가 당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해 행동에 나섰다”고 했다.
◇목 터져라 “재선거” 외친 윤성현씨
7일 오후 2시 핸드볼경기장 2-1 출입구 앞에는 한 젊은 남성이 시민들 앞에서 확성기를 쥔 채 쉰 목소리로 “재선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충남 천안에서 온 대학생 윤성현(24)씨였다. 윤씨가 “재선거”를 먼저 외치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 외쳤다. 윤씨는 이런 식으로 2시간 동안 구호 제창을 이끌었다.
집회 참석은 처음이라는 윤씨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정리하고, 서로 통행을 안내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나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는 윤씨는 연단 위에서 구호를 외치다 지친 참가자를 찾아가 확성기를 넘겨받겠다고 자처했다. 누군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려 하면 제지했다. 윤씨는 “집회가 정쟁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우리가 여기에 모인 명분과 집회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고 했다.
☞소셜 시티즌(Social Citizen)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사회적 이슈와 정보를 공유하고 연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시민이다. 주로 소셜미디어(SNS)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가 주축이다. 2008년 미국 케이스 재단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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