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주도하는 ‘호남 반도체 투자’ 속도전 우려

박순찬 기자 2026. 6. 1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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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닉스, 전남·충남 검토설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닛케이포럼에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방 반도체 공장의 신설 가능성’을 묻는 한국 취재진에게 ‘숙제’라는 표현을 썼다. 청와대가 오는 29일 삼성·SK 등 주요 그룹 최고경영진을 불러 지역 투자 계획 발표를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에 대한 입장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최 회장은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 (용인 등 이외에) 어딘가로 가지 않을 수는 없고 준비가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며 “어딘가로 가려면 전력, 땅, 사람, 물이 다 갖춰져야 하고 인프라가 엄청나게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어디에 어떻게 짓겠다는 것은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겠다”며 “일단 지금은 용인클러스터를 짓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또 “무조건 한국에만 짓겠다는 것도 아니다”며 해외 투자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김민석 국무총리는 본인의 X(옛 트위터)에 “어떻게 한국에서 되게 할 것인지를 대화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남·충남 지역에 반도체 후공정인 패키징 공장 신설 등을 검토한다는 말이 흘러나오지만, 두 회사는 긍정도 부인도 못한 채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의 발언에도 투자 여부를 선뜻 밝힐 수 없는 고심이 담겨 있다.

그래픽=백형선

◇앞서 나가는 정치권의 ‘호남 반도체 투자’

정부·여당은 다음 달 1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 때 ‘호남 반도체 투자’를 발표하려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작 반도체 사업의 성패 및 지속 가능성을 가를 핵심 인프라와 생태계, 인센티브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6·3 지방선거가 끝나면서 정치권의 ‘호남 반도체 투자론’은 구체화하고 있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당선인은 지난 6일 광주의 한 포럼에서 “김민석 총리가 귓속말로 ‘뭐가 와도 온다’고 했다”며 “머지않은 시간 내 구체적인 반도체 관련 발표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민 당선인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최고기술책임자를 역임한 정은승 전 사장을 인수위원장으로 영입한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지방 투자를 늘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할 것이고, 영호남 문제가 있어서 호남에 균형을 좀 맞춰야겠다”고 했다.

◇인력·인프라 등 구체적 논의 부재

현재 거론되는 투자안은 반도체 후공정에 해당하는 ‘패키징 공장’이다. 반도체 제조는 웨이퍼(반도체 원판) 위에 초미세 회로를 그리는 전(前)공정과 완성된 칩을 자르고 포장·검사하는 후(後)공정으로 나뉜다. 과거 범용 D램 제조에선 전공정이 핵심이었지만 AI 반도체용 HBM(고대역폭 메모리)에선 여러 칩을 아파트처럼 높이 쌓아올리는 첨단 패키징 후공정이 핵심으로 꼽힌다.

첨단 패키징은 미세 배선과 칩 쌓기, 열 관리, 수율 관리가 결합된 고난도 공정이어서, 이를 운용할 숙련 인력 확보가 사업 성패의 첫 관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평택이나 이천조차 꺼리는 직원이 적지 않은데, 기존 생활권을 버리고 광주까지 가려는 인력이 얼마나 될지 미지수”라고 했다.

용인·평택·이천 인근의 반도체 생산 공장 및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와 괴리되는 점도 난점이다. 지자체가 전력·용수 문제 해결을 약속하는 등 뚜렷한 인센티브도 없는 상태다. 김용석 가천대 석좌교수는 “물류비와 이동 시간 증가, 지방 인력 양성 대책 등이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며 “결국 최종 결정은 기업이 해야 한다”고 했다. 재계에선 충분한 논의 없이 ‘지방 투자 계획’을 이사회가 의결할 경우 개정 상법에 따른 이사 충실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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