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절망의 끝에서 다시 길을 묻다

하영란 기자 2026. 6. 1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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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규 시인의 시 '절벽'

삶 곳곳에 놓인 절망의 경계
인내 끝에 마주하는 희망길
최백규 시인

절벽이라는 말은 참 힘이 세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바로 절벽이 펼쳐지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절벽은 어떤 것인가? 절벽 앞에서 마음이 끝없이 무너져 내린 적이 있는가.

절벽은 사전적 의미로는 '바위가 깎아 세운 것처럼 아주 높이 솟아 있는 험한 낭떠러지'를 말한다. 또 다른 뜻으로는 '아주 귀가 먹었거나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고집이 세어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말한다.

어떤 상황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을 때까지 왔을 때, 극복 가능성이 없어 보일 때 절벽 앞에서 선 기분이 든다. 사람에게서도 절벽을 느낄 때가 많다. 아무리 말해도 말이 통하지 않을 때도 절벽을 느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절벽이 있다. 문제와 문제 사이, 상황과 상황 사이에도 절벽이 있다.

최백규의 시 '절벽'에서 시적 화자는 '부숴버리고 싶은 절벽이 있었다'고 한다. 절벽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막막함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부숴버리고 싶은 절벽'이 있다. 답답한 현실 앞에서 절벽은 부숴버리고 싶은 장벽이다.

'초목 아래 새끼들을 숨긴 사슴은 절벽 끝으로 물이 차오르는 현실을 마주했다'에서 이 현실은 어떤 현실일까. 절벽 끝으로 물이 차오르면 그 절벽은 더이상은 절벽이 아닌 것인가. 하루하루가 각박한 현실을 살아내다 보면 어떤 상황들이 변한다. 늘 그 자라에 있던 절벽도 깎이고 깎여서 다른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절벽을 오르는 사람도 있다. 도전이다. 많은 사람들은 도전하지 못한다. 도전은 용기가 필요하다.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있어야 오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경한다. 오르는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며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 절벽을 오르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절벽 앞에서 삶을 살아낸 사람도 대단하지 않은가.

우리들은 대부분 절벽과 함께 살아간다. 마주 선 절벽 앞에서 절망하고, 또 힘을 내며 그 속에서 살아갈 궁리를 한다. 그렇게 세월이 가다 보면 상황이 바뀌기도 하고, 인내한 힘으로 그것이 극복되기도 한다.

어느 곳이든 바람이 분다. 바람은 방향을 만들어낸다. 그 바람이 어디로 불든, 바람이 어디에서든 기다리면 부는 것은 확실하다. 오늘도 누군가에 필요한 바람이 불고 있다.

최백규 시인의 시 '절벽'은 끝없이 좌절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절벽의 끝까지 가보라고 한다. 실제로 가보라는 것은 아니고 사유하라고 한다. 절벽은 어쩌면 절망의 끝이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의 바람이 분다.

절벽

 절벽이 있었다 절벽을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절벽 앞에서 절벽을 오르는 사람을 구경하는 절벽이 있었다 절벽을 깎는 절벽이 있었다 절벽의 손이 서늘해졌다 피지 않는 절벽이 있었다 부숴버리고 싶은 절벽이 있었다 초록 아래 새끼들을 숨긴 사슴은 절벽 끝으로 물이 차오르는 현실을 마주했다 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절벽 위에서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 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 최백규 시집 「여름은 사랑의 천사」(2025, 문학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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