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 의료취약지 그늘, ‘중진료권’ 맹점 깨야 지역의료가 산다

백승호 2026. 6. 10. 18:5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살랑살랑한 봄이 짧게 지나가고 벌써부터 더운 여름이 온 것만 같다. 필자가 속한 의료재단은 도시지역과 도서지역에 운영하는 종합병원이 있어 여름과 겨울, 봄과 가을과 같이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진 지역에서 365일 응급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흔히들 '의료취약지'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의료취약지란 의료서비스의 공급이 부족하여 주민들이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지역을 의미하는데,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 접근성, 의료인력 현황, 진료 이용률, 응급의료 접근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의료취약지를 지정하고 있다. 인천 강화군의 경우 섬 지역의 특성과 의료 접근성, 교통트래픽의 문제로 응급, 분만, 소아 취약지로 지정되어 여러 국책사업의 범주에 들어 있다.

의정갈등 등의 문제로 아픈 아이를 등에 업고 새벽부터 응급실을 찾아 타 시·도로 뺑뺑이를 돌고, 산모가 분만할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 안에서 출산을 하는 뉴스는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정부는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의료취약지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지방의 의료 공백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행정구역의 이름 뒤에 숨어 정부의 정책적 배려와 지원에서조차 소외된 '진짜 의료 오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인천광역시(강화군, 옹진군), 울산광역시(울주군), 대구광역시(달성군) 등이 마주한 현실이 바로 그 서글픈 단면이다.

예를 들어 흔히 '인천광역시'라는 광역 지자체의 명칭이나 '수도권'이라는 지리적 범주를 접할 때, 풍부한 인프라와 고도화된 의료 서비스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는 거대한 도심에만 국한된 착시일 뿐이다. 강화군은 인구 소멸 위험 지역이자, 지리적으로 도심과 단절된 전형적인 농어촌 거점 지역이다. 그리고 읍에서도 북한이 보이는 군접경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이자 '광역시의 부속 군'이라는 이유만으로 중진료권이 도시와 같이 묶여있어 정부의 각종 국책 의료 지원 사업에서 외면받거나 순위가 밀리기 일쑤였다. 행정구역상의 분류가 현장의 실질적인 의료 수요와 철저히 괴리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정책적 맹점을 만들어낸 이유는 다름 아닌 정부가 설정한 '중진료권' 제도에 있다. 정부는 지역별 의료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위해 전국을 몇 개의 시·군·구를 묶어 '중진료권'으로 분류하고, 이를 기준으로 거점 병원을 지정하거나 공공의료 정책을 수립한다. 문제는 이 중진료권이 인구수와 행정 편의주의적 경계만을 기준으로 획정되다 보니, 강화군과 같은 특수 지역의 지리적 접근성과 실제 주민들의 이동 동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1층짜리 건물이 20층짜리 건물과 같은 잣대로 평가를 받는다는 의미가 된다. 1층에서는 없어도 되는 엘리베이터 등과 같은 기준이 같은 기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왜곡은 현장의 고통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지난 2023년, 강화군 내 유일한 종합병원인 비에스종합병원의 소아청소년과가 전문의 구인난 등의 사유로 결국 폐과했을 때의 일이다. 아이가 밤새 고열에 시달려도, 청소년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해도 부모들은 김포나 인천 도심으로 원거리 원정을 떠나야 했다. 분만을 앞둔 임산부들의 불안감 역시 극에 달했다.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수도권 광역시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고 기를 가장 기본적인 '생명 안전망'마저 상대적 소외를 느끼게 된다.

지난 2월 강화군 행복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의료혁신추진단과의 간담회'에서 주민들은 소아과와 산부인과 부재로 인한 생존의 불편함을 눈물로 토로했다. '제발 차가 막히는 주말을 피해 출산하기를 기도했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적극적인 정책 참여로 '2026년 의료취약지 소아청소년과 및 분만취약지 외래산부인과 지원사업'에 동시 선정되는 결실로 이어졌다. 오는 8월이면 마침내 강화군에서도 아이들이 입원할 수 있는 소아과 병동이 다시 문을 연다. 이는 단순히 한 병원의 진료과 개설을 넘어, 현장 맞춤형 의료 정책이 왜 필요한지를 증명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이번 성과가 일회성 기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제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는 획일적인 인구수 기준의 중진료권 설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지리적 고립도, 인구 고령화율, 실제 이동 시간 등을 가중치로 두는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특히 수도권이나 광역시 내에 위치하면서도 실질적인 혜택에서 소외된 부속 도서 및 농어촌 지역들을 별도의 '특례 진료권'로 지정해 상시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주 인천 서구의 한 대학병원과 협약을 통해 의료인력 구인이 어려운 강화군 특성에 맞게 개설되지 않은 심장내과 등을 정기적으로 개방진료를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인적자원 협약을 맺었다. 의료취약지의 민간병원과 대학병원간의 자발적 협력을 통해 전문의를 파견하는 첫 상생모델이 잘 협의가 되어 8월부터 시작을 한다.

지역 의료를 살리는 것은 단순히 의사 몇 명을 더 배치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지역에서 오래 살 수 있는 여건을 결정짓고, 인구 소멸을 막아서는 가장 강력한 방파제이다. 아이가 아파도 갈 병원이 없고, 출산할 곳이 없는 동네에 어떤 젊은 부모가 가정을 꾸리려 하겠는가. 정부와 지자체는 이번 강화군의 사례를 거울삼아, 전국에 숨겨진 또 다른 '행정구역의 그늘'을 샅샅히 살펴야 한다. 통계 학회지 속의 숫자가 아닌, 현장 주민들의 가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필수·지역의료 혁신은 완성될 것이다.

백승호 성수의료재단 이사장

Copyright © 저작권자 © 중부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