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방기①]중립국이 되고 싶던 한국과 벨기에 125년의 인연

이재명 대통령의 8박 10일 유럽 순방의 첫 날은 유럽의 수도 벨기에였다. 벨기에 하면 떠오르는건 초콜릿, 맥주.... 그 정도였다. 대통령 순방길에 동행하며 벨기에 주요 지역을 방문하며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 125년전 한국과 벨기에는 왜 수호통상조약을 맺었을까
벨기에는 한국 사람들에게 그리 익숙한 나라는 아니다. 교민수는 약 5000여명 정도로 많지 않다. 벨기에는 EU 집행위원회, 이사회, 나토(NATO) 등 20여개 국제기구와 3000여개의 NGO 단체들이 활동하는 국가다. 유럽 정치의 중심지이며, 국제 기준을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수교의 역사는 125년으로 매우 길다. 1901년 대한제국 시절 고종 황제는 벨기에 왕국과 한백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1900년대 초반 대한제국은 러시아, 일본 등 주변 열강들의 거센 압박을 받고 있었다. 고종 황제는 주권을 지키기 위해 영세 중립국이 되는 길을 고민했다.
당시 벨기에는 유럽에서 성공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며 국제 정치적인 안정성과 경제적 성장을 유지한 부유한 산업 국가였다. 주변 국가들에 시달리던 대한제국 입장에서는 벨기에는 강대국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을 잡는 롤모델이자 좋은 파트너로 보였다. 한백 조약을 맺은지 4년 뒤인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이 박탈되면서 양국의 공식 외교 관계는 끊어졌다. 벨기에 역시 중립국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1,2차 세계 대전의 포화를 피해가진 못했다. 벨기에는 나토(NATO)에 가입하며 중립국을 포기했다.
이후 한국전쟁 당시 벨기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부응해 참전을 결정한 16개국 중 하나였따. 3천명 이상의 벨기에 병력이 직접 전투에 투입돼 106명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희생을 치렀다. 휴전 이후 한국 정부는 벨기에를 최우선 수교 대상국으로 지정하고 1965년 공관을 개설하게 됐다.

길마다 있는 자전거 도로와 트램 등 친환경 교통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었다. 말 그대로 유럽이라는 단어 자체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거리였지만 한국 사람은 물론 동양인이 눈에 많이 띄진 않았다. 100여년의 인연이지만 아직은 먼 나라라는 느낌이다.
▲ 필연적 갈등 속에 구성된 복잡한 정치 체제
벨기에라는 나라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복잡한 정치 환경 속에 구축된 미묘한 균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벨기에는 필립 1세 국왕이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왕이 실제로 근무(?)하고 있는 왕실의 존재는 낯설었다. 벨기에 국왕은 국가의 수반이자 통합의 상징이다. 정치적 실권은 없다. 다만 정치가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각 정당들을 조율하는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한다. 벨기에의 국왕이 아니라 벨기에인의 국왕이라는 표현은 그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한국 사회에는 정치적 갈등을 중재해줄 존경 받는 중재자가 있을까? 이제와서 왕이 필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극심한 갈등 상황에서 국민적 존경을 받는 중재자의 존재는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와 지정학적 상황에 따라 겹겹이 누적된 정치적 복잡성은 단기간에 혹은 영원히 해소할 수 없다. 다만 그 복잡한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타협하는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벨기에는 여실히 보여준다. 또 국내적인 정치적 복잡성을 해소해가는 과정이 더욱 복잡한 국제 관계의 중재자로의 입지를 만들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 쇠락한 제조업 공백을 메운 서비스업
또 하나의 특성은 경제 구조다. 벨기에는 GDP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7%로 압도적이다. 금융, 물류, 비즈니스 서비스 등이 주를 이룬다. 특히 수도 브뤼셀은 EU와 나토 본부 등 국제기구가 밀집해 있어 행정 지원 서비스업, 관광업 등이 매우 강하다. 사실 벨기에는 EU의 전신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 탄생을 이끈 제조업 강국이었다. 석탄, 철강은 에너지와 무기를 상징한다. 그만큼 자원이 풍부한 국가였다. 하지만 인건비 상승, 환경 규제 강화 등 비용 구조 변화에 따라 제조업 비중은 낮아졌다. 벨기에는 각종 국제 기구 유치 등을 통해 서비스업을 육성하고 제조업의 공백을 메웠다.
이 부분은 한국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역시 제조업 공동화가 이뤄진 지역에 관광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지역 축제, 랜드마크 건설 등을 통한 관광 산업 육성은 단기적인 성과가 있긴 하지만 지속성에는 한계가 있다. 다양한 국제기구들이 설치가 되면 각종 국제 회의와 인적 교류를 통한 지속적인 관광 산업이 가능해진다.
한국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유치한 국제기후기금이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후 관심을 두지 않아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UN 산하 기관들의 AI 기능을 통합한 UN AI 허브를 유치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중이다. 국제적인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은 핵심 국가로 발돋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와 더불어 국제기구 유치를 통해 서비스 산업 육성도 더할 수 있다. 벨기에의 경험은 한국 관광, 마이스(MICE) 산업 육성을 위해 참고할 만하다.
▲ 타의로 떠난 동포들에게 대한민국이란
벨기에에서 대통령 주재 동포 간담회가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벨기에 동포사회를 대표해 임은희 벨기에한인회장은 환영사에서 “벨기에 동포사회가 현지에서 신뢰받는 작지만 단단한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국 대한민국의 발전과 위상이 뒷받침해 준 덕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듣게 된 특이한 점은 재벨기에 동포 중에 입양인들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 전쟁 이후 발생한 수많은 전쟁고아와 한국 여성과 외국 군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동들은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이들을 서구 사회로 내보내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혼혈아, 빈곤층 자녀, 미혼모 아동 등이 입양의 대상이 됐다. 한국 정부는 산업 고도화와 군사력 강화에 집중 했고, 아동 복지, 양육에 대한 부담은 서구 국가로 사실상 떠넘겼다. 당시 벨기에를 비롯한 서구 선진국은 아동 입양에 관대했다. 한국 사회 입장에서는 해외 입양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어두운 면도 존재했다. 1978년 주한 벨기에 반호버 영사는 한국 아동 1인당 800~1200달러를 받고 입양을 주선하는 브로커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 정부는 민간 차원의 문제라며 이를 방조했고 198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해외 입양 쿼터제가 도입될 때까지 한국은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받았다.
한국 사회에서 배제되고 서구 사회에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간 이들에게 고국은 어떤 의미일까? 이재명 대통령은 교포 간담회에서 “해외에 나오면 본국의 위상에 따라 대접이 다를 것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가 아주 짧은 시간에 극적으로 바뀌었다. 원조를 받아서 힘겹게 살아가던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적으로 좀 앞서더니 이제 세계 문화의 중심 국가처럼 느껴지지 않나. 정말 장족의 발전을 했다. 교민 여러분이 대한민국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취임 이후 동포들과 접촉면을 늘리고 뭘 원하는지 다 조사해보자고 했다. 재외 공관이 주민자치센터의 동장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교민들의 의견을 듣고 불편함을 해결해가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나 위상을 외국 현지에서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작은 나라다. 3면은 바다에 둘러 쌓여 있고 북쪽은 북한으로 막혀 있다. 더 뻗어나갈 물리적 공간은 없다. 그러나 경제 영토는 국경이 없다. 전 세계에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한국 동포들이 있는 지역은 한국과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중요한 경제 영토다. 나라가 못 살아서 동포들을 챙기지 못하던 시절은 지났다. 그들과의 교류 속에 한국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고 한국이라는 존재가 그들에게 자부심이 될 때 그 동질성은 한국의 경제 영토를 넓히는 첫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