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철강·화학 탄소감축 비용, 정부가 메워준다···탄소차액계약제 법제화 착수
다배출·난감축 업종 고비용 혁신 설비 지원
10~15년 장기계약 검토···유상할당 수익금 재원 유력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정부가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의 저탄소 전환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형 탄소차액계약제도(CCfD) 법제화 작업에 착수했다. 기업이 탄소 감축 설비에 투자해도 손해를 보지 않도록 정부가 일정 기간 수익성을 보완해주는 제도다.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저탄소 설비의 투자 불확실성을 낮추는 장치가 될 전망이다.
10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한국형 탄소차액계약제도 설계 및 법령안 마련 연구'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용역은 지난 3월25일 더불어민주당 박지혜 의원이 대표발의한 '탄소중립산업 육성 및 기업의 탈탄소 전환 촉진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에 탄소차액계약제도가 포함된 데 따른 후속 조치 성격이다.
정부는 법안의 하위법령안을 조속히 마련하고, 국내 산업 여건에 맞는 한국형 탄소차액계약제도(K-CCfD)를 설계한다는 계획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탄소중립산업법 통과를 전제로 하위법령과 운영지침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자 한다"며 "다배출 업종과 감축이 어려운 난감축 분야를 대상으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탄소차액계약은 시장의 탄소 배출권 가격이 약정 가격보다 낮으면 정부가 기업에 차액을 지급하고, 반대로 시장가격이 약정 가격보다 높아지면 기업이 초과분을 정부에 돌려주는 양방향 정산 구조다. 탄소가격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기업이 장기 투자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정부가 사실상 가격 하한선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국내 배출권 가격이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도 탄소차액계약 도입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그동안 한국 배출권 시장은 과잉 할당 영향으로 유럽연합(EU) 등에 비해 낮은 가격을 형성해왔다. 예컨대 기업이 탄소 1톤(t)을 줄이는 데 10만원을 써야 하는데 배출권 가격이 1만원에 그치면, 기업 입장에서는 설비 투자보다 배출권 구매가 유리하다.

◇ 다배출·난감축 업종 겨냥···"고비용 혁신 설비 대상"
탄소차액계약의 우선 지원 대상으로는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이 거론된다. 이들 업종은 생산 공정에서 필연적으로 대규모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데다 감축 기술을 도입하려면 막대한 초기 투자비가 필요하다. 특히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확대, CCUS, 저탄소 화학공정 등은 상용화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고난도 기술로 꼽힌다.
다만 정부는 수소환원제철이나 CCUS 등 특정 기술에 한정해 제도를 설계하기보다는 감축 효과와 투자비 부담이 큰 혁신 설비 전반을 살펴보겠다는 방침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고비용이 들어가는 혁신 설비,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혁신 설비를 대상으로 하려고 한다"며 "수소환원제철이나 CCUS 등 특정 기술을 정해놓고 가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탄소차액계약을 15년 안팎의 장기계약 방식으로 설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탄소 감축 설비는 초기 투자비가 크고 회수 기간이 긴 만큼, 장기간 탄소가격 변동성을 보완해 기업의 투자 불확실성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기후부 관계자는 "CCfD는 독일 등 유럽에서도 10년 또는 15년짜리 장기계약을 전제로 고안된 제도"라며 "고비용 혁신 기술은 장기 투자 없이는 개발이나 상용화가 어려운 만큼 정부가 일정 기간 변동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제도의 핵심"이라고 했다.

◇ K-스틸법 못 채운 재정지원 공백 메운다
전날 국무회의서 의결된 철강산업법(K-스틸법)이 저탄소 철강의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면, 남은 과제는 재원이다. 오는 17일 시행되는 K-스틸법은 저탄소철강 인증제와 특구 지정, 재생철자원 공급망 정비 등을 담고 있지만, 수소환원제철이나 전기로 확대에 필요한 투자비를 직접 보전하는 법안은 아니다. 산업계에서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만큼 실제 투자 결정을 끌어낼 재정지원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계에서는 탄소차액계약이 재정지원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수소환원제철이나 전기로 확대는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 어려운 대규모 투자"라며 "탄소가격이 낮거나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는 기업이 투자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고 했다.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현재 석유화학 업황 자체가 좋지 않아 기업들이 대규모 감축 설비 투자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며 "탄소차액계약은 기업 입장에서 리스크를 줄여주는 장치"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독일·네덜란드·일본 등 주요국의 탄소차액계약 법·제도와 운영 사례를 조사해 한국형 제도 설계에 반영할 계획이다. 정책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전문가 간담회와 업계 의견수렴도 진행한다. 제도 설계 과정에서는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난감축 업종의 투자 수요와 감축 비용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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