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로' 명칭 유지 가닥… 제주 현대사 기억 논쟁은 남았다

정용복 2026. 6. 1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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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도로명 현행 유지 잠정 결정
토론회·주민설명회·두 차례 설문 거쳐
도민 설문 유지 57%·변경 43%
주소사용자 설문 유지 66%·변경 34%
주소 혼선·행정비용 부담이 유지론 키워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516로 구간. 제주특별자치도는 토론회와 주민설명회, 두 차례 설문조사를 거쳐 516로 도로명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 현대사 기억 논쟁으로 번졌던 '516로' 도로명이 현행 유지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5·16 군사정변을 떠올리게 하는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지만, 실제 주소를 쓰는 주민과 사업자 사이에서는 주소 혼선과 행정적·경제적 부담을 우려하는 의견이 더 많았다.

10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도는 516로 도로명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올해 초부터 이어진 토론회와 주민설명회, 두 차례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한 판단이다.

516로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한라산 횡단 간선도로다. 제주시 아라동 제주대입구 사거리에서 서귀포시 토평동 비석거리교차로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도민 생활과 관광 이동에 모두 쓰이는 주요 도로다.

논란의 출발점은 숫자 '516'이 지닌 역사성이다. 5·16은 한국 현대사에서 군사정변을 뜻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도로명이 특정 정치적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반면 오랫동안 생활 주소와 도로 이름으로 쓰여 온 명칭을 바꾸면 주민과 사업자가 감당해야 할 불편이 크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제주특별자치도가 2026년 1월 30일 개최한 516로 도로명 관련 도민공감 토론회. 제주도는 올해 1~2월 권역별 토론회, 3월 주민설명회, 4월 도민 설문, 5월 주소사용자 추가 설문을 거쳐 도로명 변경 여부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제주도는 올해 초 516로 명칭 문제를 공론화 절차에 올렸다. 1~2월 권역별 도민 공감 토론회 2회가 열렸고 260여명이 참석했다. 3월에는 516로 주소사용자가 많은 아라동과 영천동에서 주민설명회 2회가 진행됐고 100여명이 참여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유지 의견이 우세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4월 도민 설문에는 369명이 응답했다. 현행 유지가 209명으로 57%, 변경이 160명으로 43%였다.

주소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설문에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제주도는 5월 11일부터 31일까지 3주간 주소사용자 1238명에게 큐알(QR)코드 안내장을 등기우편으로 보내 의견을 물었다. 응답자는 179명으로 응답률은 14.5%였다. 응답자 가운데 117명인 66%가 현행 유지를 선택했고, 62명인 34%가 변경을 택했다.

유지 의견의 핵심은 생활 주소의 안정성이었다. 도로명이 바뀌면 주민등록, 사업자등록, 등기, 각종 계약서, 우편·택배, 간판, 지도 정보 등 생활 행정과 민간 거래 전반에 수정 부담이 생긴다. 제주도 설문에서도 현행 유지를 택한 응답자들은 주소 사용 혼선과 행정적·경제적 부담을 주요 이유로 들었다.

지역별로는 서귀포시에서 유지 의견이 제주시보다 높았다. 연령대별로는 40대부터 60대 이상에서 유지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실제 주소를 오래 써 온 주민일수록 변경에 따른 생활 불편을 더 크게 본 것으로 풀이된다.

변경 의견도 분명했다. 변경을 택한 62명은 5·16의 역사적 배경이 도로명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점, 새로운 도로명이 더 적합하다는 점, 제주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점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516로 명칭 문제가 생활 편의만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인식과 공공 기억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행정 절차상 도로명 변경은 쉽지 않다. 도로명주소법상 도로명을 바꾸려면 주소사용자 5분의 1 이상 신청이 필요하다. 이후 주소정보위원회 심의를 거치고, 주소사용자 과반수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 여론조사에서 변경 의견이 존재하더라도 법정 절차를 충족하지 못하면 행정적으로 도로명을 바꾸기 어렵다.

이번 조사 결과를 전체 주소사용자 기준으로 보면 변경 동의 규모는 더 작아진다. 주소사용자 1238명 가운데 추가 설문에 응답한 변경 찬성자는 62명이다. 응답자 안에서는 34%지만 전체 주소사용자 기준으로는 5% 수준이다. 도로명 변경 신청과 과반수 서면 동의라는 법적 기준과 비교하면 행정 추진 동력은 제한적이다.

과거 한라산 횡단도로로 이용되던 516로 일대. 516로 명칭을 둘러싼 논쟁은 5·16 군사정변을 떠올리게 하는 역사성 문제와 생활 주소 변경에 따른 주민 불편 문제가 맞물리며 이어져 왔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제주도의 이번 잠정 결정은 역사 논쟁을 끝냈다기보다 행정 결론을 생활 주소 안정 쪽으로 정리한 성격이 강하다. 516로 명칭에 대한 문제 제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공공 공간의 이름이 어떤 기억을 담아야 하는지, 오래 쓰인 생활 주소를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남았기 때문이다.

다만 제주도는 여러 차례 의견 수렴에서 현행 유지가 우세한 점을 중시했다. 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과 주소사용자 설문 모두 유지 의견이 변경 의견보다 많았고, 주소사용자의 실제 부담이 확인됐다는 판단이다.

제주도는 516로 도로명을 현행대로 유지하되 관련 민원과 의견은 계속 관리할 방침이다. 역사적 의미에 대한 문제 제기와 주소사용자의 생활 불편 우려가 함께 존재하는 만큼 향후 도로명 정책에서도 공론화와 법적 절차, 주민 수용성이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재관 제주도 건설주택국장은 "공론화와 설문 결과 변경 의견이 소수에 그친 만큼 주소사용자 의견을 존중해 현행 명칭을 유지하기로 했다"며 "관련 민원과 의견은 지속적으로 살피겠다"고 말했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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