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의 고향! 한국 축구와 인연 깊은 멕시코 [권종오의 올라! 멕시코]
32년 만의 월드컵 본선도 밟은 곳
홍명보호 새 도전의 무대가 된다

멕시코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에 도착한 9일 새벽(현지 시간) 공항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1990년 6월부터 스포츠 전문기자의 길을 걸어온 필자에게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개인적으로 통산 10번째로 취재하는 월드컵이어서 감회가 깊었다. 특히 한국 대표팀이 조별리그를 치르는 무대가 멕시코이어서 그 의미는 더욱 남다르게 다가온다. 한국 축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곳이자 ‘붉은 악마’의 고향이 멕시코이기 때문이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U-20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지치지 않는 기동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하자 우리 대표팀의 붉은색 유니폼에 착안해 해외 언론들은 태극전사를 ‘붉은 악령(Red Furies, Red Devils)’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표현이 국내에 ‘붉은 악마’로 번역되어 소개되었고, 이는 1997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서포터즈 이름으로 자리잡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83년 6월 멕시코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4강 신화는 한국 축구가 사상 최초로 FIFA 주관 세계 대회에서 거둔 위대한 금자탑이다. 멕시코는 해발 2천m가 넘는 고지대로, 조금만 뛰어도 숨이 턱 막히고 공의 궤적이 완전히 달라지는 극한의 환경이었다. 호랑이 지도자로 유명한 박종환 감독은 선수들에게 산소 흡입을 제한하는 마스크를 씌운 채 태릉선수촌 운동장을 돌게 하는 혹독한 고지대 적응 훈련을 시켰다. 이 지옥 훈련 덕분에 한국 선수들은 고지대에서도 지치지 않고 90분 내내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 무시무시한 체력을 갖추게 되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스코틀랜드에 0-2로 졌지만 2차전에서는 홈팀 멕시코를 2-1로 꺾었다. 멕시코 축구의 성지라 불리는 수도 멕시코시티의 아스테카 스타디움에 모인 홈 관중 7만 1천명의 일방적인 응원과 심판의 텃세를 뚫고, 노인우의 동점골과 신연호의 극적인 역전골로 개최국을 침몰시키며 반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호주와 3차전에서 김종건과 김종부의 골로 2-1로 이기며 조 2위로 당당히 사상 첫 8강 진출에 성공해 우루과이와 만났다, 8강전 장소는 이번 월드컵에서 홍명보호의 조별리그 3차전이 열리는 몬테레이.

전반전에 신연호가 선제골을 터뜨렸지만 동점골을 내줘 승부는 연장전으로 갔는데 연장 전반 14분, 신연호가 극적인 결승골을 넣어 2-1 대역전승을 거두며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세계 최강 브라질과 준결승이 열리는 날 한국 시간으로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학교들이 수업을 중단하고 라디오와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출근길 도심이 한산해질 정도로 온 나라의 시선이 멕시코로 향했다.

몬테레이에서 벌어진 준결승에서 김종부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브라질에 내리 2골을 허용하며 1-2로 석패했다. 3·4위전 무대는 홍명보호의 조별리그 1-2차전이 열리는 이곳 과달라하라. 태극전사들은 폴란드에 져 4위로 대회를 마감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대등하게 맞선 청년들의 투혼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다.
거대한 신드롬이 형성됐고 귀국한 대표팀은 김포공항에서부터 서울 시청까지 대대적인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영웅들의 귀환을 환영했다. 이 대회는 한국 축구에 "우리도 세계 무대에서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자신감을 심어준 전환점이 되었다. 4강 신화의 주역 신연호는 “당시 분위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못지 않았다. 택시 기사들은 택시비를 받지 않았고, 대기업들은 앞다퉈 선물로 컬러TV 등을 줬다”고 회고했다.
멕시코가 다시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한국은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라이벌 일본을 꺾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무려 32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대진운이 좋지 않았다. 슈퍼스타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그리고 직전 대회인 1982년 우승팀 이탈리아와 한 조가 되는 그야말로 ‘죽음의 조’에 끼였다.

모든 관심은 당시 축구 천재였던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에게 쏠렸다. 국내 언론에서는 “마라도나는 내가 맡겠다”는 식의 기사가 넘쳐났다. 마라도나를 막을 수비수가 1주일마다 바뀔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 붙어보니 슈퍼스타 마라도나는 한국 선수가 쉽게 막을 선수가 아니었다. 전반에만 3골을 내리 내주자 ‘악바리’로 유명한 고참 허정무가 해결사로 나섰다. 마라도나를 마크하던 허정무의 발이 마라도나의 허벅지와 충돌하는 격렬한 장면까지 나왔다. 외신들은 이를 ‘태권 축구(Taekwondo Football)’라 부르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세계 최강을 저지하기 위한 한국의 필사적인 투혼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이 경기에서 1-3로 패배했지만 한국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골'이 후반 28분에 터져 나왔다. 대표팀의 주장 박창선이 페널티박스 외곽에서 과감하게 날린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슛이 아르헨티나의 그물을 흔든 것이다. 이 골은 대한민국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터뜨린 사상 첫 번째 골로 기록되었다.
불가리아와 2차전이 열린 멕시코시티에는 엄청난 비가 내렸다. 수중전으로 치러진 혈투 끝에 김종부의 동점골로 1-1로 비겨 역사적인 첫 승점 1점을 따냈다. 김종부는 3년 전 청소년축구에 이어 멕시코에서 유독 강한 선수로 기억됐다.
마지막 3차전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 비기기만 해도 16강을 바라볼 수 있었던 한국은 최순호와 허정무가 골을 넣으면 선전했지만 결과는 2-3 석패.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강호 이탈리아를 상대로 2골이나 몰아치며 전 세계에 한국 축구의 매서운 저력을 똑똑히 각인시킨 경기였다.
과달라하라(멕시코) =권종오 기자 kj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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