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항일 불꽃...대구 학생 항일운동 '특별전'

한현호 2026. 6. 1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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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구는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였죠.

그 중심에는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당당히 맞섰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3.1독립만세운동부터 비밀결사까지 목숨을 걸고 항일 투쟁을 이어갔던 대구 학생들을 조명한 특별기획전을 한현호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1919년 3월 8일 일제에 항거해 서문시장 거리를 가득 채운 대구 3.1독립만세운동.

이 만세시위를 주도한 건 계성학교와 신명여학교, 대구고등보통학교 등 대구의 학생들이었습니다.

당시 체포된 학생만 1백 명이 넘고 40여 명이 법정에 섰지만, 이들의 항일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은 결사로써 한국독립의 목적을 관철해야 한다. 일본인과 상거래를 중지하길 바란다."

1919년 4월 계성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비밀결사단 '혜성단'이 상인들에게 배포한 격문입니다.

조선인 관공리들에겐 사직하고 독립운동을 할 것을 요구하는 등 일제에 고개 숙인 어른들을 향한 서슬퍼런 경고장을 거리에 날렸습니다.

또 식민지 교육을 규탄하는 동맹 휴학부터 비밀결사를 통한 격문과 간행문 발행, 군사훈련까지, 교실을 넘어 전국 최대 규모의 학생조직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42년 대구상업학교는 단장 이상호를 중심으로 비밀결사단 태극단을 조직했지만, 내부 밀고로 26명 전원 체포됐고 이상호를 비롯한 4명이 혹독한 고문 끝에 젊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상곤/이상호 독립운동가 동생 "(저희 형님은) 학생들 독립운동한 사람 중에서 최고형을 받으셨습니다.단기 5년의 장기 10년인데 아주 심한 고문을 받으셔갖고..."

일제 탄압에 맞섰던 대구의 학생들 중 절반은 평안도와 전라도 등 외지 출신이어서, 대구가 전국 항일 학생운동의 거점 역할을 한 셈입니다.

[신형석/대구근대역사관 관장 " "학교 차원의 역사가 아니라 이번 기회에 지역사 차원에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래야 대구 근대사에서 학생 항일 운동이 한 자리를 제대로 차지할 수 있고..."]

대구근대역사관이 대구 학생 항일운동을 조명한 특별기획전을 오는 11월 29일까지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재판기록과 대구사범학교 비밀문집 '반딧불' 등 자료 100여 점이 공개되는데, 특히 일제의 강제 신사 참배와 노역, 군사훈련에 동원된 학교 생활을 담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안장호 일기'는 이번에 일반에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TBC 한현홉니다. (영상취재 박종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