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반반이라 보면 되지예” 대구도 놀란 김부겸의 패배

“이제는 반반이라고 보면 되지예. 대구 사람들이 참 많이 바뀌었어예.”(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이아무개씨)
6·3 지방선거 대구시장 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뜨거운’ 패배를 맞았다. 선거 초반 앞서 달리던 김 전 총리는 45.1%를 득표해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자(53.9%)에게 8.8%포인트 차로 낙선했다. 9일 대구에서 만난 시민들의 감정은 “변화의 가능성을 봤다”는 희망과 “대구는 안 된다”는 절망, “보수의 심장을 어떻게 내주냐”는 안도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김 전 총리의 ‘성적표’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김 전 총리의 득표율은 역대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 최대치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58만6927표를 득표했다. 지난해 대선 때 이재명 대통령의 대구 득표율(23.2%)의 갑절이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후보(서재헌) 득표율(17.8%)보다는 3배에 가까운 수치다. 김부겸 인물론은 득표 끌차 구실을 한 듯했다. 한 70대 여성은 “김부겸이 그 사람 국민의힘 쪽으로 했으면 대통령 후보감이지”라고 말했다. 건어물 가게를 하는 60대 상인도 “박근혜 안 나왔으면 99.9% 김부겸이 됐다. 박근혜 때문에 다 추경호 찍어뿟다 아이가”라고 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세대별로 비교적 선명했다. 유점순(75)씨는 “김부겸이 찍어야지 싶어도 투표장에 들어가면 고마 2번 딱 찍는다. 여기는 어지간하면 안 내준다. 심장을 누가 내주나”라고 했다. 한아무개(80)씨도 “젊은 사람들은 김부겸 이카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암만캐도 ‘우리 쪽’에 하지요. 당연히 추경호”라고 했다. 대구에서 압도적인 국민의힘 조직력이 위력을 나타낸 경우도 있었다. 김아무개(82)씨는 “우리는 김부겸이도 모르고 추경호도 잘 몰라. 우리 구청장이 노래교실에 와서 노래를 두곡이나 부르고 갔다 아이가”라고 말했다.
힘 있는 여당 후보라는 김 전 총리의 구호는 민주당에 대한 불신이 상쇄한 것 같았다. 한양옥(82)씨는 “암만 민주당이 돼도 나랏돈이 없어가 지 맘대로 몬 한다”고 했다. 한 나물집 상인은 “칼자루를 저놈들이 쥐어가 마음대로 한다. 이재명이는 지 죄지은 거 없앨라꼬 하고”라며 민주당이 발의했던 조작기소 특검법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70대 이아무개씨는 “김부겸이 되면 지원해주고, 안 되면 안 해준다는 거는 좀 야비하잖나. 내 생각엔 누가 돼도 지원을 해줘야 하는 거 아인가 싶은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50대 이하 시민들은 김 전 총리의 낙선에 절망을 감추지 못했다. 대구 만촌동에 사는 50대 문아무개씨는 “슬펐다”고 말했다. 문씨는 “다시는 김부겸 같은 사람이 대구에 나오기 어렵다. 김부겸이라는 전국구 인물이 15년을 대구에 투자했는데도 8% 차로 큰 패를 당했다. 대구가 변화의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박아무개(40)씨는 “대구 하면 무조건 ‘보수’ ‘빨간 당’이라고 낙인찍혀 있다. 우리 아이들이 커가면서 사회에 나가서 ‘대구 출신’이라는 이유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며 “이번에는 한번쯤은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투표했다”고 말했다. 대구시장은 김 전 총리를, 구청장 후보는 국민의힘을 찍었다는 자영업자 김영재(57)씨는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심판론이라 카나, 그거 동감하거든요. 추경호는 쫌 아이잖아. 국민의힘도 이번에 정신 차려야 한다.”
투표 세대차는 방송 3사(KBS·MBC·SBS) 공동 출구조사에서도 드러났다. 김 전 총리의 예측 득표율은 30대 50.7%, 40대 66.3%, 50대 57.3%로 추 당선자를 앞질렀다. 그러나 추 당선자는 60대에서 69.6%, 70대 이상에서는 81.4%의 예측 득표율을 보여 김 전 총리를 압도했다.
‘변화’를 기대했던 시민들은 김 전 총리의 실패에서 희망을 보기도 했다. 김아무개(36)씨는 “대구서 이 정도면 선전한 거다. 젊은 사람들은 솔직히 김부겸이 좋아서라기보다 일단 국민의힘은 무조건 안 된다는 생각에 뽑은 사람도 많다”며 “점점 세대가 지날수록 대구도 바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수연(32)씨도 “주변에 김부겸 지지자가 많았는데 선거 결과를 보고 허탈했다”면서도 “다음 선거에 더 좋은 사람이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때 또 어떤 사람이 나오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를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비례대표 2명, 기초의원 48명을 대구에서 당선시켰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선 각각 1명, 28명이 당선됐다.
민주당과 김 전 총리 캠프는 선거 결과를 되짚어보고 있다.
경북도당위원장인 임미애 의원은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이번 선거는 대구·경북의 눈으로 보면 전략의 실패”라며 “선거 기간 불거진 조작기소 특검법이나 스타벅스 사태가 ‘민주당이 권력을 남용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부추겼다. 그분들 눈에는 이재명 정부가 일을 잘한다 하더라도 민주당이 더 많은 의석이나 지방권력까지 다 가져야 할 이유는 없었다”고 했다.
김 전 총리 캠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구에서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민주당이 낼 수 있는 최상의 후보를 내고도 넘지 못한 벽을 확인했다”며 “30~50대는 김부겸 후보 지지가 분명히 확인됐지만, 공고한 고령층과 10·20대 보수화는 과제다”라고 했다.
대구/조희연 기자, 김규현 고한솔 기자 cho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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