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자작한 불고기 국물에 흰쌀밥 비벼…‘밥도둑’ 따로 없네

관리자 2026. 6.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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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불고기
1930년대 평양서 즐겨 먹어
피란길 따라 서울 밥상 올라
쇠고기에 간장양념해 구워
깊은 풍미…세계 입맛에 ‘딱’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
meat자작한 국물에 당면을 넣은 불고기. 게티이미지뱅크

1930년대, 봄이 되면 평양 사람은 대동강변 모란대로 몰려들었다. 솔밭 아래 자리를 펴고 숯불 화로에 간장으로 양념한 쇠고기를 구웠다.

“대동강변 40리 긴 숲의(중략) 늙은 소나무 밑에는 봄놀이도 한창이다. 소고기를 굽는 것이다.”

‘동아일보’ 1935년 5월1일자 석간 3면에 실린 이 글은 당시 평양지국 기자 오기영(1908∼?)이 썼다. 평양 쇠고기는 ‘평양우(平壤牛)’로 불릴 정도로 맛이 뛰어나 일본에까지 알려졌다.

‘매일신보’ 1935년 5월5일자 4면엔 모란대의 을송정·봉황각·기림정 같은 음식점에서 불고기를 팔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심지어 ‘매일신보’ 1941년 7월30일자 석간 3면엔 불고기를 아예 일본어 ‘야끼니꾸(燒肉)’라고 썼다. 몇년 전 불고기가 일본어 ‘야키니쿠’에서 왔다는 주장을 펼친 음식 칼럼니스트가 있었다. 그는 ‘매일신보’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다는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일본어에도 능통했던 이 신문사의 조선인 기자가 ‘평양 명물 불고기’를 한자로 ‘소육(燒肉)’이라고 쓰고 일본어 읽기로 ‘야끼니꾸’라고 적었다. 그러니 불고기는 일본어 ‘야키니쿠’의 번역어가 절대 아니다.

19세기 이래 서울 사람은 평양의 불고기처럼 양념한 쇠고기를 ‘너비아니’라고 불렀다. 1938년 펴낸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에선 ‘너비아니’를 “소고기를 얇고 너븟하게 저미어 갖은 양념을 하여 구운 음식”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에서 ‘너븟하게’는 지금의 말로 ‘너붓하게’이다. ‘너붓하다’는 “조금 넓은 듯하다”라는 뜻으로 곧 쇠고기를 얇고 넓게 펼친 모양으로 썰어낸다는 말이다.

함경북도 학성 출신 시인 김기림(1908∼?)은 1949년 7월 잡지 ‘학풍’에서 “불고기라는 말이 한번 평양에서 올라오자 얼마나 삽시간에 널리 퍼지고 말았는지”라고 적어 해방 이후 남한에서의 불고기 유행을 기록으로 남겼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으로 피란 온 평양 사람이 평양식 불고기를 서울에 더욱 널리 알렸다.

불고기는 1958년 출간된 방신영의 ‘고등요리실습’에서 한국 요리책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방신영은 이 책에서 불고기라는 이름이 너비아니의 속된 말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1960년대 출판한 요리책에선 불고기를 너비아니와 같은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1972년 한정혜가 펴낸 ‘생활요리 : 동양요리’에선 너비아니란 이름을 쓰지 않고 불고기라고 적었다. 전쟁과 피란이 사람만 옮긴 건 아니었다. 평양 음식이 서울로 내려오면서 서울 사람의 식탁 위 음식 이름까지 바꿔놓았다. 당시 남한 사람은 쇠고기든 돼지고기든 불고기를 매우 즐겨 먹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식 양념 쇠고기 구이인 너비아니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평양식 불고기가 시민권을 얻었다.

2021년 불고기는 한국을 넘어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bulgogi’로 등재돼 세계적인 케이푸드(K-Food·한국식품)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 사전에선 불고기를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재운 다음 굽거나 볶은 음식”이라고 정의했다. 1960∼1980년대엔 쇠고기 불고기를 볼록한 구이판 위에 구웠는데 구이판 가장자리로 국물이 모였다. 이 국물을 흰쌀밥 위에 올리고 비빈 다음 잘 익은 배추김치와 함께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단맛이 나는 일본식 양조간장에 설탕과 양파즙, 심지어 배즙까지 넣은 불고기 양념은 쇠고기의 아미노산 풍미를 극대화한다. 소불고기 국물에 넣어 익힌 당면을 먹으면 어떤 국수보다도 맛있다. 이것이 소불고기의 매력이다. 

주영하 음식 인문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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