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도 못 들었는데… 뇌전이 폐암 이겨내고 골프-탁구 즐겨”[이진한 의사·기자의 따뜻한 환자 이야기]
폐암-다발성 뇌전이 진단 70대
EGFR 표적치료제로 증상 호전
뇌전이 병변-폐 원발 병소도 감소

흔히 폐암은 흡연자에게만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근에는 전체 환자의 30∼40%가 비흡연자일 정도로 비흡연 폐암 환자가 늘고 있다. 특히 비흡연자와 동양인에게 흔히 발생하는 대표적인 유전자 변이가 바로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변이’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인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절반가량에서 이 변이가 확인된다.
문제는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의 경우 치료 과정에서 암세포가 뇌로 퍼지는 ‘뇌전이’를 경험하는 비율이 60∼70%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중추신경계 병변 관리가 치료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과제로 꼽힌다. 다행히 최근에는 표적 항암제의 발전으로 뇌와 전신 병변을 동시에 강력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치료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EGFR 변이 폐암과 뇌 전이의 특징은….
이윤규 교수=“폐암은 여러 고형암 중에서도 뇌 전이가 흔한 암으로, 특히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은 뇌전이 발생 위험이 높다. 뇌전이 병변은 일반적인 항암제에 충분히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다른 부위의 암이 조절되더라도 뇌 병변은 진행할 수 있다. 또 병변이 커지면 전이 위치에 따라 인지·운동·언어 기능 저하가 나타날 수 있어 환자의 예후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처음 어떤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고, 진단 당시 상태는….
김해옥 씨=“2년 전 샤워를 하던 중 한쪽 손이 전기가 오는 것처럼 찌릿했다. 단순한 관절 문제인 줄 알고 정형외과 치료를 받았지만 갑자기 젓가락질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힘이 빠져 강북삼성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폐암과 뇌전이 진단을 받았다. 당시에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심정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손 기능 저하였다. 식사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고 음료 뚜껑도 혼자 열지 못했다. 당시에는 ‘다른 건 몰라도 손만 다시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절박했다.”
이 교수=“진단 당시 뇌의 여러 중요 부위에 다발성 전이가 확인됐고 왼쪽 전두엽과 측두엽을 침범해 오른팔 기능에 이상이 나타난 상태였다. 비흡연자는 폐암을 의심하기 어려워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뒤 진단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환자 역시 폐 증상보다 손 기능 저하와 같은 신경학적 증상이 먼저 나타났고 검사 과정에서 폐암과 다발성 뇌전이가 진단됐다.”
―치료는 어떻게 진행했고, 치료를 시작하는 데 부담은 없었나.
이 교수=“당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에게 표적 치료가 가능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 EGFR 변이가 확인돼 해당 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었다. 환자의 심근경색 병력과 치료 목표, 뇌전이 동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여러 치료 옵션 가운데 렉라자 단독 요법을 선택했다.”
김 씨=“당시에는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렉라자는 주사 치료가 아닌 경구용 약제라 복용이 편리했고 건강보험이 적용돼 비용 부담도 크지 않아 꾸준히 치료를 이어갈 수 있었다.”
―치료 경과는 어땠으며, 그 이후 일상은 어떻게 변했나.
이 교수=“치료 시작 후 신경학적 증상이 빠르게 호전됐다. 특히 영상 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전부터 환자가 체감하는 증상 개선이 먼저 나타났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는 뇌전이 병변뿐 아니라 폐에 처음 발생한 암 조직까지 크기가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김 씨=“가장 큰 변화는 가장 힘들었던 손 기능이 회복된 것이다. 당시에는 식사조차 어려웠지만 지금은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 최근에는 탁구와 골프를 즐길 만큼 건강을 되찾았고 몸무게도 3㎏ 정도 늘어 주변에서 암 환자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폐암 치료가 발전하면서 앞으로는 어떤 점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나.
이 교수=“환자의 생존 기간이 길어질수록 어떤 치료제를 먼저 선택하고, 삶의 질을 유지하며, 치료를 이어갈 것인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치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내성과 질환 진행을 관찰하며 환자별 최적의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폐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교수=“암 진단을 받으면 많은 환자가 자신을 자책한다. 하지만 암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최근 렉라자처럼 개발 단계부터 뇌전이 병변 조절을 고려한 약제들이 등장해 치료 성과도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주변의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의존하기보다는 담당 의료진과 충분히 상의해 자신에게 맞는 치료를 신속히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씨=“환자라는 생각에만 머무르기보다 먹고 싶은 음식을 잘 챙겨 먹고 체력을 유지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려는 노력이 치료를 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치료에 임했으면 좋겠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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