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도 조직도 없다, 잠실집회 이끈 2030 ‘소셜 시티즌’

고유찬 기자 2026. 6. 10.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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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정치세력으로 떠오른 청년들
오늘 16개大 ‘선관위 규탄’ 시국선언 9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 ‘부실한 관리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선관위를 규탄한다’고 쓰여 있다. 성균관대를 비롯한 대학 16곳 총학생회는 10일 6·3 지방선거 ‘투표 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시국 선언을 합동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장련성 기자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잠실 참정권 집회’ 중심에는 2030 청년들이 있었다. 시민 3만8000여 명이 모인 지난 주말(6~7일) 집회에 모인 시민의 70~80%가 2030대였다. 이들은 “‘공정’과 ‘참정권’이 훼손됐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집회에 모인 청년들은 이념과 진영을 따지지 않았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집회를 오염시키지 말라”며 경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집회에 나온 청년들에게서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이른바 ‘소셜 시티즌(Social Citizen)’의 면모가 두드러졌다고 진단했다. 온라인으로 사회적 사안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고 연대해 목소리를 내는 소셜 시티즌이 한국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SNS로 정보·의견 나누며 집회 주도

소셜 시티즌은 2008년 미국 케이스 재단의 시민 참여 프로젝트 보고서에 처음 등장한 용어다. 디지털로 연결돼 정보를 공유하고 조직을 만드는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를 가리킨다. 정당·노조·협회 중심이었던 전통적 시민운동과 달리, 이들은 X(옛 트위터)·인스타그램·스레드를 통해 생각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며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투표함 개표가 진행된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필기구로 스케치북에 “재선거”를 적고, 태극기를 그려 나눠 들었다. 집회 중에는 “다른 나라의 국기를 흔들지 말자”는 제안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확산시키며 이번 집회의 비정파성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현장에 오지 못한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집회 장면을 지켜봤고, 일부는 음료나 간식 등을 보내며 집회를 응원했다.

2030 청년들이 참정권 회복을 외치며 결집한 배경을 두고는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수년간 누적된 청년들의 소외감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때 일부 정치인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청년층을 두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탓” “반공 교육에 세뇌되어 극우 세력화됐다”고 했다. 이번 집회 현장에서 만난 취업 준비생 김모(26)씨는 “기성 정치권은 청년들이 상식과 공정을 요구할 때마다 본질을 외면한 채 ‘철없는 집단’이라거나 ‘과격 극우 세력’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우리 목소리에는 귀를 닫아왔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선거에서 불거진 선거 부실 관리 사태가 청년층의 억눌린 분노를 폭발시켰다는 것이다.

◇진영 논리보다 ‘공정’ 가치 우선

일요일이었던 지난 7일까지 잠실 집회 분위기는 진영 논리가 앞선 기존 집회와는 달랐다. 청년들은 집회에서 이념성 구호를 경계했고 스케치북에 요구 사항을 적으면서도 특정 정당을 연상시키는 색상 사용을 지양했다. 대신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데 집중했다.

집회에 나온 청년들은 자기들의 행동이 정치권의 정쟁 도구로 소비되는 걸 경계한다고 했다. 정쟁에 끌려 들어가는 순간 집회의 명분과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7일 집회 현장에서 만난 직장인 이모(27)씨는 “우리의 정당한 참정권 요구가 일부 정치인이나 유튜버들이 주장하는 부정선거론과 동일시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일부 정치인과 유튜버도 잠실 집회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이 마이크를 잡으려 하자 2030 시민들은 야유를 보내며 거부했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 온 전한길씨가 집회 현장을 찾았을 때도 청년들은 발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정치 성향을 띠는 일부 단체와 유튜버가 시민들이 일터와 학교로 복귀한 8일부터 집회 현장에서 “부정선거”를 본격 주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집회를 단순한 항의 시위를 넘어선 ‘주권자 운동’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는 오랫동안 축적돼 온 청년층의 불만이 집단적으로 표출된 결과”라며 “소셜미디어를 무기로 청년 세대가 당당한 정치 주체인 소셜 시티즌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준 계기가 됐다”고 했다.

☞소셜 시티즌(Social Citizen)

소셜미디어(SNS)로 정보를 공유하고 사회·정치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을 뜻한다. 2008년 미국 케이스 재단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다. 당시 보고서는 “소셜 시티즌은 서로 디지털로 연결돼 이전 세대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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