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초 앤 타코] 월드컵에 묻힌 멕시코 실종자들
멕시코 거리 곳곳에 얼굴 전단지
‘당국, 월드컵 맞아 은폐' 지적도
북중미 월드컵 개막을 사흘 앞둔 8일(현지 시각) 멕시코 과달라하라 대성당 주변은 초록색 멕시코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거리의 가로등과 도로 안전봉 등에는 흥겨운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전단지 같은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사람 얼굴 사진에 스페인어로 ‘실종자(Desaparecido)’라고 적혀 있었다. 찾고 있는 사람의 이름과 나이, 실종 날짜, 인상착의와 문신 모양 같은 글귀가 빼곡했다. 마약 카르텔에 의해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가족들이 붙인 전단지였다. 대성당에서 약 3㎞가량 떨어진 ‘소년 영웅의 로터리’에도 실종자를 찾는 전단이 가득했다. 이곳은 원래 이름 대신 ‘실종자의 로터리’라고 불린다.

카르텔에 의한 실종자 문제는 멕시코의 주요한 사회 이슈다. 전국 실종자 수가 13만명이 넘는다. 할리스코주는 그중 1만2500여 명으로 실종자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다. 멕시코에서 실종자가 급증한 건 2006년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부터다. 이에 자극받은 카르텔 조직들이 세를 과시하려고 경쟁 조직원을 살해한 뒤 암매장하거나, 일반 시민을 납치해 마약 재배·운반 등 노동을 시키기 시작했다. 최근엔 가짜 구인 광고나 로맨스 스캠 사기 등으로 일반인을 납치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신정환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장은 “치안 당국이 무능하거나 카르텔과 결탁하고 있어서 제대로 된 수사·기소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공권력을 믿을 수 없으니 가족이 직접 실종자를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월드컵을 맞아 당국이 실종자 문제를 축소·은폐하려는 지적도 나온다. 할리스코주에선 실종자 전단을 함부로 폐기할 수 없게 돼 있는데, 지난해 12월 주의회가 관광지·대학교·관공서 등에선 폐기할 수 있도록 법안을 개정하려다 실종자 가족 단체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들은 “우리의 가족을 찾으려는 전단은 도시 미관을 이유로 내다 버릴 수 있는 쓰레기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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