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의 세상 속으로]도망치지 않는다

정보라 소설가 2026. 6. 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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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 고진수 지부장이 구치소 안에서 단식 중이다. 이 글을 쓰는 6월9일 현재 19일째다. 6월5일에 구속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있었다. 이 공판에서 판사는 연대 시민들의 방청을 막기 위해 4명까지만 방청권을 배부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옳지 않다. 형사재판은 공개방청이 원칙이다. 그래서 고진수 지부장과 법률대리인 측은 재판을 거부했다.

구속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경향신문 5월28일자 기사에서 더 자세히 보실 수 있다.) 고진수 지부장은 A학교 성폭력 사태의 공익제보자 지혜복 선생님이 복직하기 위해 투쟁하는 서울교육청 농성장에 연대하러 갔다. 4월29일 지혜복 선생님은 서울교육청 건물 옥상에 올라가 고공농성에 나섰다. 고공농성 4시간 만에 경찰이 와서 지혜복 선생님과 연대동지들을 연행했다. 고진수 지부장도 이때 연행되었다. 그리고 왠지 구속되었다.

‘왠지’라고 쓴 이유는 이전에 고진수 지부장이 세종호텔 로비 농성을 하다가 연행되었을 때는 구속영장이 기각돼 풀려났기 때문이다. 구속영장은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는 사람에 한해 발부된다. 고진수 지부장은 2021년 12월 세종호텔에서 정리해고당한 이후 5년이 넘게 농성장을 지키며 복직 투쟁을 해왔다. 그 기간 중 2025년 2월부터 2026년 1월까지 1년 가까이 명동역 앞에서 고공농성을 했다. 그러니까 고진수 지부장은 부당해고 철회와 복직이라는 목적을 위해 같은 자리를 계속 지켜온 사람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를 지킬 사람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법원이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사실 자체가 모욕이다.

고진수 지부장의 옥중 단식 사실은 단식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알려졌다. 연대하는 동지들이 면회를 갔다가 알게 된 것이다. 지금이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도 아닌데 구치소 측이 수감자의 단식 사실을 알리지도 않고 방치했다는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

고진수 지부장이 연행되고 구속되었을 때 나는 시드니 작가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호주에 가 있었다. 고진수 동지가 어떤 투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나는 구치소에서 답답해할 동지를 위해서 편지를 보내 호주 얘기를 신나게 썼다. 귀국해서 보니 고진수 동지가 답장도 보내줬다. 구치소 안의 꽃과 새들 얘기, 매가 날아와 까마귀를 물어가는 광경을 직접 보고 놀랐다는 얘기가 적혀 있었다. 단식 이야기는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

세종호텔 공동대책위원회는 6월2일부터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릴레이 동조단식을 하고 있다. ‘동조단식’이라고 해도 하루 종일 굶는 건 아니고 4시간 단위로 한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벌어졌을 당시에 또 외국에서 열린 도서전 참가하러 나가 있다가 어제 귀국했다. 그래서 오늘 동조단식하러 간다.

‘농성(籠城)’이란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요구조건을 주장하거나 항의하려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한데 모여 떠나지 않고 버팀”이라는 뜻이다. 농성의 ‘농’은 ‘장롱’이라는 단어의 그 ‘농’자다. 장롱 안에 옷이나 이불을 넣어두듯이 농성장 안에 사람들이 모여 문을 꼭 닫고 안 나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한데 모여 떠나지 않고 버팀’이라는 부분이다. 우리가 한데 모여 떠나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부당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고, 성폭력 사건의 공익제보를 했다고, 자본의 강압에 맞서거나 ‘윗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고 노동자가 하루아침에 생계수단을 잃는 사회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부당함과 불의를 남의 일이라고 하나둘씩 내버려두면 곧 너와 나의 노동할 권리도, 표현의 자유도, 생계도 같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연대는 공감이고 동의의 표현이다.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 곧 나를 위한 투쟁임을 이해하기 때문에 연대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고진수 지부장을 뭔가 범죄집단의 우두머리 같은 존재로 간주하여 우두머리를 잡아 가두면 나머지 일당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 예상하는 모양이다. 농성이나 연대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도망치지 않는다. 투쟁하는 동지들은 현장을 지키고 연대하는 우리는 동지들을 지킨다. 지난 5년간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농성장은 세종호텔 앞에 여전히 있다. 이제 서부지법 앞에도 조그만 임시 릴레이 단식농성장이 생겼다. ‘요구조건을 주장하고 항의하기 위해 떠나지 않고 버팀’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정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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