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수십번 거부했는데 성폭력 “무죄” 판결···재판소원 간다

최혜린 기자 2026. 6. 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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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죄 피해자 동의 아닌 ‘최협의설’ 적법성 따져
장애인 버스 탑승 설비 일부 설치도 전원재판부 회부
헌법재판소 정식 심리 재판소원 8건으로 늘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성동훈 기자

성폭행 피해자의 저항을 무력화할 정도의 위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가해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이 합당했는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게됐다. 지체장애인들이 버스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휠체어 탑승설비 설치 관련 재판소원도 헌재가 들여다볼 예정이다.

헌재는 9일 법무법인 지향과 시민단체 등이 “강간죄 인정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성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동의 여부임에도 불구하고 ‘최협의설’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며 제기한 재판소원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했다.

청구인 A씨는 성폭행 피해자다. 가해자 B씨는 A씨가 여러 차례 거부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유사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고, 검사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지난 3월 판결이 확정됐다. 법원은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했다.

A씨가 문제 삼는 건 법원이 ‘피해자의 저항이 가능했는지’를 기준으로 강간죄를 인정하는 ‘최협의설’에 따른 판결을 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2023년 9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강제추행죄 최협의설을 40년만에 폐기했는데, 강간죄 사건에서는 최협의설에 따른 판례를 유지해왔다.

이날 헌재는 지체장애인들이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버스업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실제 이용 가능성이 높은 노선에만 휠체어 탑승 설비를 제공하면 된다’고 본 법원판결에 대해 제기한 재판소원 사건도 전원재판부에 넘겼다.

청구인 C씨는 버스회사들이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 대법원은 모두 이를 차별로 인정했다. 다만 대법원은 소송 대상이 된 두 업체의 영업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모든 노선에 즉시 설비를 갖추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고들이 탑승할 개연성이 있는 노선으로 설치 범위를 다시 정하라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은 C씨의 직장이 있는 서울과 부모의 주소지 등을 잇는 7개 노선에만 탑승 설비를 설치하라고 판결했다. C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해 판결이 확정됐다.

이후 C씨는 “법원이 휠체어 탑승 설비 제공 범위를 직장과 가족 거주지를 오가는 노선으로만 제한한 것은 이동권과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이 판결에 따른다면 거주지나 직장을 옮길 때마다 다시 소송을 내야 하는 문제가 생기고, 이는 재판 청구권을 침해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날 회부된 2건을 포함해 헌재의 정식 심리를 받는 재판소원 사건은 8건으로 늘었다. 지난 3월 제도 시행 이후 이날까지 접수된 재판소원 사건은 877건이고, 이 중 736건(84%)은 사전 심사 단계에서 각하됐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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