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정상회담에서 사라진 '한반도와 비핵화'

이유 에디터 2026. 6. 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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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살펴본 시진핑 7년만의 방북 회담
북중 관계 한반도 넘어 확장, 반패권 연대 추진
시진핑-김정은 "국가주권·안전·발전이익 수호"
시 "중조관계 최상위 설계" 김 "제1 전략사업"
협력의 새 영역…외교·법집행·군대 교류 추진
시, 북한의 핵무기 영구화 노선 ‘묵인’한 듯
"피로 맺어진" 북중 우호의 역사 소환하기도

"올해 중조(중북) 관계는 새로운 역사적 출발점에 서 있다." 북한(조선)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8일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연회 답례 연설에 이렇게 말했다.

시 주석이 평양에서 던진 이 말은 의례적 수사가 아닐 수 있다. 시 주석은 7년 전 평양 정상회담 때는 거론했던 '한(조선)반도'와 '비핵화'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북한의 제9차 조선노동당 대회와 전략적 협력을 전면에 내세웠다. 또한 외교와 법집행, 나아가 군대 분야까지 교류 확대를 제안하며 새로운 차원의 관계 격상을 예고했다.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을 명시한 '북중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조중우호협조호상원조조약) 체결 65주년도 강조했다.

올해 첫 해외 방문이자 7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국빈 방북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 결과를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 의미를 짚어본다. 정상회담은 이날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진행됐다.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영하여 지난 8일 평양체육관에서 공연이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2026.6.9 연합뉴스

사라진 '한반도와 비핵화'

연합뉴스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의 정상회담 보도자료를 보면 두 정상의 발언 중 한반도를 뜻하는 '조선반도'나 '반도'란 단어는 없었다. 방북에 앞서 노동신문에 게재한 시 주석이 기고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2019년 6월 평양 정상회담의 중국 보도자료에선 '반도'는 시 주석의 발언에서 9번, 김 위원장의 발언에서 6번 나온다. 작년 9월 베이징 정상회담 발표문에서도 횟수가 시 주석 2번, 김 위원장 1번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있었다.

특히 2019년 6월 중국 보도자료엔 "중국은 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지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조건을 누적·창조할 것", "반도의 비핵화와 지역의 장기적 안정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할 용의가 있다"는 시 주석의 발언에서 '비핵화'라는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묵인'하고 전략적 이익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앞서 미국은 5월 14일 미중 정상회담 발표문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중국 측 발표 자료엔 없었다. 그리고 5월 20일 중국‧러시아 베이징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대북 제재 반대 문구만 있고 '비핵화'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영하여 평양 목란관에서 연회를 마련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2026.6.9 연합뉴스

북한의 제9차 조선노동당 대회

또한 시 주석은 연회 답례 연설에서 "중국은 김정은 총서기를 핵심으로 하는 조선노동당 중앙의 강력한 영도 아래 북한 인민이 조선노동당 제9차 당 대회가 제시한 목표와 임무를 순조롭게 완수"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9차 당 대회에서 북한은 김정은을 총비서로 재추대하는 한편, '평화 통일'을 공식 폐기하고 핵무기를 영구적 국가 능력으로 확정했으며, 남북 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로 규정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시 주석의 당 대회 관련 발언도 북한의 핵무기 영구화 노선을 '묵인'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북중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 65주년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올해가 북중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 체결 65주년이라고 직접 거론하고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화답하고, 서명일인 오는 7월 11일에 즈음해 양국 모두 기념행사를 열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 방중과 시진핑 국가주석 방북을 보도한 인민일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소식을 다룬 지난달 15일자 인민일보 1면(왼쪽)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북 소식을 전한 9일자 인민일보 1면. [인민일보 캡처.  2026. 06. 09 연합뉴스.

이 조약은 제2조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을 명시하고 있다. 그동안 20년마다 세 차례 자동으로 연장돼왔고 지금도 유효하지만, 1992년 한중 수교와 1993년 1차 북핵 위기를 계기로 중국은 이 조약에 담긴 '군사동맹'의 의미를 애써 축소해왔다. 이런 역사를 고려하면, 시 주석의 이 발언은 단순한 '역사의 회고'가 아니라, 과거 일본, 미국을 상대로 함께 싸웠던 '혈맹의 복원'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회담 전 발언에서도 "피로 맺어진" 양국의 전통적 우호 관계를 소환하고, 특히 수망상조(守望相助·지키고 살펴서 서로 도와준다)를 강조했다.

일각에선 이것을 북한이 2024년 6월 러시아와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맺고 쿠르스크에 대규모 전투병력을 파견하고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걸 견제하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도 해석한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앞으로 조중친선을 가장 중대한 제1의 전략적 사업으로 견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전적으로 지지하겠다고 거듭 확인했다.

이번 회담에서 양 정상은 북중 관계의 미래와 관련해 최상급 표현을 자주 써 눈길을 끌었다. "새로운 시대의 중조 관계에 대한 최상위 설계와 전략적 지침 강화" "중조관계의 고수준 발전(시진핑) "조중친선을 가장 중대한 제1의 전략 사업으로 견지"(김정은) 등이다.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의 회담이 지난 8일 금수산 영빈관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2026.6.9 연합뉴스

협력의 새 영역…외교, 법집행, 군대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외교, 법집행, 군대 등 분야의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북중 교류는 당과 경제 중심으로 이번에 '군대'가 공식 거론된 점이 눈길을 끈다. 중국이 타 우방국과 맺는 '외교·국방·치안(3+3)' 형태의 공식 정부 간 채널을 북한에도 도입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북한 언론 보도에선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아 궁금증을 낳고 있다.

시 주석은 또한 "(양국의) 발전 전략 연계를 강화하고 무역·농업·건설·과학기술·보건의료 등 실질 협력을 확대해 양국 인민에게 더 큰 혜택을 주기를 원한다"며 "국경 통상구의 전면 재개통과 민항 항공편, 국제 여객열차 운행 재개를 계기로 인적 교류를 확대하고 쌍방향 교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2일엔 6년 만에 베이징-평양 간 여객 열차 운행이, 3월 30일엔 에어차이나의 직항 노선이 각각 재개됐고, 앞서 작년 9월엔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을 따라 달리는 중국 내륙 고속도로인 지린 G331 국경 관광벨트가 국가 국경 풍경 도로로 공식 개통됐다. 코로나19 이후 닫혔던 북중 간 인적·물적 왕래의 정상화. 신압록강대교 개통 및 나진항 사용권, 두만강 출해권 등 물밑에서 다져온 무역, 농업, 보건의료 등의 실질적 경제 협력이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아내 리설주 여사가 지난 8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맞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2026.6.9 연합뉴스

한반도를 넘어…국가주권·안전·발전이익

시 주석과 김 위원장 모두 주권과 안전, 발전이익의 수호와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발전 수호를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조 양국은 전략적 조율과 협력을 강화하고, 각자의 주권·안보·발전 이익을 확고히 수호하며,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공동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위원장은 "조중 양국은 전략적 조율과 협력을 강화하고 각자의 주권·안보·발전 이익을 확고히 수호하며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공동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주권과 안전, 발전이익의 수호'는 미·중 패권 경쟁과 다극화 질서 속에서 서로 협력하자는 뜻이고,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발전 수호'는 이제 북중 관계를 '한반도 차원'을 넘어서 글로벌 무대에서의 협력과 반패권 연대로 확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 주석은 노동신문 기고에서 국가주권과 안전, 발전이익의 수호, 지역의 평화와 안녕을 강조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국제적인 공평과 정의, 그리고 전후 국제질서의 공동 수호"로 강조했다. 그러면서 "패권과 강권정치를 반대하면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고 지역의 안전과 위해를 주는 모든 야욕과 책동을 반대해야 한다"고 말해 미국과 일본을 겨냥했다. 또한 시 주석은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의 다극화"와 "인류운명공동체 건설" 공동 추진을 제안했다. 북중 관계를 '한반도 차원'을 넘어서 아시아와 글로벌 차원의 전략적 협력관계로 확장하자는 취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아내 리설주 여사가 지난 8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맞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탑승차가 의전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2026.6.9 연합뉴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회담에는 북한 측에서는 박태성 내각총리, 김재룡·리일환·김성남 당 비서, 최선희 외무상, 노광철 국방상, 그리고 김덕훈 제1부총리 등 당과 내각 최고위급 실세가 모두 나왔고, 중국 측에서는 차이치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 왕이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류하이싱 대외연락부장, 둥쥔 국방부장, 정산제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왕원타오 상무부장 등이 배석했다.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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