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나광호 울진 두천1리 이장 “자연재벌로 살고 싶었습니다”
MBC 이벤트 감독 출신…사람과 자연 잇는 공동체 꿈꿔

울진군 두천1리 나광호 이장 명함 뒤편에 있는 '자연재벌'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돈이나 명예보다 맑은 공기와 산,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진짜 부자라는 뜻처럼 자신의 삶의 방향을 표현했다.
나 이장은 예순이 넘었다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활기찼다. 최근에도 네팔 안나푸르나를 다녀왔다는 그는 자연 속 삶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한때 그는 전국 행사 현장을 누비던 MBC 이벤트 감독이었다. 국가행사와 지역 축제를 기획하며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고, 안정적인 직장과 보장된 미래도 있었다. 불현듯 그는 삶을 무게를 내려놓고 무등산 자락에 쉼터를 만들고 자리를 잡았고 제2의 쉼터로 울진을 낙점했다.
"젊을 땐 늘 담배를 물고 있을 정도로 정신없이 살았어요. 먹고 입는 건 바꿀 수 있어도 살아가는 공간은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자연이 단순히 세상에서 도망치는 장소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이 다시 숨을 맞추고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여러 차례 거절했던 나는 자연인이다 출연도 결국에는 결심하게 됐다.
"자연인은 혼자 사는 사람처럼 비춰지지만, 저는 자연 속에서도 결국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두천리와 맺어진 인연
그는 2017년 울진을 찾으며 두천리와 인연을 맺었다.
십이령 옛길 보부상 주막촌 사업을 돕기 위해 처음 마을을 찾았던 그는 아름다운 산세와 계곡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했다.
"십이령길 풍경이 참 좋았어요. 처음 봤던 한옥도 인상 깊었고요. 결국 지금의 터를 발견해 정착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말투도 다르고 어색해 조심스럽게 말을 나눴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주민들의 정을 느끼게 됐다. 오히려 먼저 마음을 연 것은 마을 어르신들이었다.
그는 첫 마을총회에 참석해 회비 운영과 통장 입출금 내역을 주민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하자는 의견을 냈다. 투명한 운영 제안은 자연스럽게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1년만 하겠습니다."
울진 대형 산불 이후 마을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시기, 주민들의 추천으로 그는 등 떠밀려 이장을 맡게 됐다.
"처음에는 정말 1년만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주민들과 함께 마을 일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면서 어느덧 두 번째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밥 한 끼가 만든 공동체
그는 산불 이후 가장 먼저 주민들을 회관에 모아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결국 사람을 이어주는 것 같아요."
그 모습에 감동한 자녀들이 어르신들 식사를 돕겠다며 후원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는 지금의 두천리 분위기를 만든 원동력 역시 함께 밥을 먹고 웃던 시간들이라고 말했다.
특히 기억에 남은 일은 어르신 대상 글쓰기와 그림수업을 꼽았다.
주민들은 그림과 차, 음악 활동을 함께 배우며 조금씩 서로 가까워졌고, 평소 말이 없던 어르신들 얼굴에도 웃음이 늘어났다.
"한복 입고 졸업식도 했어요. 서로 꽃다발도 건네고요. 직접 쓴 글과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자녀들이 와서 굉장히 놀라더군요."
그의 말 속에는 마을이 단순히 사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사람으로 움직이는 주막촌
십이령 옛길 보부상 주막촌 운영 역시 그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그는 주막촌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로 주민들의 손길을 가장 먼저 이야기했다. 주민들이 직접 산에서 나물을 캐고 말려 산채비빔밥 재료를 준비하고, 가족들 역시 광주와 울진을 오가며 힘을 보태고 있다고 했다.
"결국 사람들의 정성과 마음이 있어야 운영이 됩니다."
그는 마을사업 역시 단순한 경제논리보다 신뢰와 공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역사업과 관련해 주민들과 함께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을 견학하며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기 전에 직접 보고 판단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견학 후에는 마을 수익금으로 어르신들에게 호텔 뷔페 식사를 대접하며 특별한 추억도 선물했다.
"다시 찾아오는 마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5월 30일에 있을 산채비빔밥 이웃 나눔 잔치와 10월 세계농업유산 인증 1주년 국밥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손님을 맞이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산채비빔밥 300그릇과 다과를 준비할 계획이다.
인터뷰 말미, 그는 "노는 게 삶이다."라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놂'은 단순한 쉼이 아니었다.
사람과 자연이 무리 없이 함께 살아가는 삶,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공동체.
두천리에서 그가 만들고 싶은 것은 거창한 개발이 아니라, 사람들이 한 번 더 머물고 다시 찾아오고 싶은 따뜻한 마을이었다.
나광호 이장은 오늘도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조용한 등불처럼 마을을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