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연락 끊긴 부모가 나타나 "유산 내놔"…이젠 상속재산 안 줄 수 있다

2026. 6. 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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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규의 자산관리 법률
민법 개정 '구하라법' 시행
부양의무 위반땐 상속권 상실
이해관계인이 법원 판단 받아야

수십 년 동안 연락이 없던 부모가 갑자기 나타나 상속을 요구할 수 있을까. 언뜻 상식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처럼 보이지만, 과거 민법 아래에서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었던 일이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지 않았거나 오랜 기간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더라도 법률상 상속인이라는 지위는 유지됐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상속권 역시 인정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 이후 한쪽 부모와 사실상 단절된 상태에서 성장한 자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조부모나 다른 가족이 생활비와 교육비를 부담하며 자녀를 키웠지만, 성인이 된 후 예상치 못한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장례 절차가 끝난 뒤 수십 년 동안 연락이 없었던 부모가 법정상속인으로서 상속재산의 분배를 요구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로 부모를 수년간 간병하고 생활비를 지원한 자녀가 있음에도 오랫동안 왕래가 없던 형제자매가 동일한 상속권을 주장하는 경우도 현실에서 적지 않게 나타난다. 상속은 혈연을 기준으로 이뤄지지만 실제 가족관계의 모습은 법 조문이 전제하는 모습과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오랫동안 상속제도의 한계로 지적돼 왔다. 특히 가족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자녀를 양육하거나 부모를 부양한 사람이 따로 있음에도 법률상 상속분은 혈연관계만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됐고, 상속제도가 단순히 혈연관계만을 기준으로 운영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그 결과 이른바 ‘구하라법’으로 알려진 민법 개정이 이뤄지며 상속제도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기존 민법에도 상속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상속결격 제도가 존재했다. 그러나 적용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피상속인이나 다른 상속인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경우, 유언서를 위조·변조한 경우, 사기 또는 강박으로 유언을 방해한 경우와 같이 중대한 위법행위가 있을 때만 상속권을 잃도록 규정돼 있었다. 반면 부모가 자녀를 장기간 방치하거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던 경우, 또는 가족으로서의 책임을 사실상 포기한 경우는 상속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았다. 도의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 행위일지라도 법정 상속권은 그대로 유지되는 구조였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상속권 상실 제도다. 현행 민법은 최근 개정을 통해 상속인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 피상속인이나 그 배우자·직계비속에게 심각한 학대 또는 범죄행위를 한 경우, 그 밖에 현저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에는 상속인의 상속권을 상실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가족관계등록부상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속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서 부담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를 이행했는지도 함께 고려하겠다는 취지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상속권 상실은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인이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 선고를 청구해야 하며 법원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심리해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단순히 부모와 자녀 사이의 왕래가 적었다거나 연락이 끊겼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장기간 양육을 방기했는지, 경제적·정서적 부양의무를 사실상 이행하지 않았는지, 학대나 유기에 준하는 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결국 이 제도는 가족 간 갈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속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서의 기본적 책임을 현저히 저버린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장치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상속권 상실 제도의 도입은 우리 사회의 가족관계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재혼가정, 한부모가정, 사실상 단절된 가족관계 등이 증가하면서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상속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부모를 수년간 간병한 자녀와 그렇지 않은 자녀 사이의 갈등, 장기간 연락이 없었던 가족의 상속권 주장, 가족 구성원 간 부양 정도의 차이 등은 더 이상 드문 사례가 아니다. 상속법 역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단순한 형식적 관계보다 실제 관계의 내용과 책임 이행 여부를 점차 중요하게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상속은 단순히 재산을 나누는 절차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삶과 가족관계가 법률적으로 정리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반영된다. 최근의 민법 개정은 상속제도가 혈연이라는 형식적 기준에만 머무르지 않고 가족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실질적인 기여를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령화와 가족 형태의 다양화가 계속되는 만큼 상속제도 역시 실제 가족관계의 모습과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지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곽종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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