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된 아이…관계와 믿음이란 무엇인가” 고레에다, SF로 묻다

김은형 기자 2026. 6. 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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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의 양’ 10일 개봉
영화 ‘상자 속의 양’. 뉴 제공

생텍쥐페리의 고전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비행사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한다. 여러 모습을 그려줘도 어린 왕자가 계속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비행사는 구멍 뚫린 상자를 그려주며 “네가 원하는 양이 그 안에 있어”라고 말한다. 어린 왕자는 비로소 만족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새 영화 ‘상자 속의 양’(10일 개봉)에는 엄마 오토네(아야세 하루카)가 침대에서 가케루(구와키 리무)에게 이 대목을 읽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묻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당신은 상자 속 존재를 떠올릴 수 있는가. 영화는 휴머노이드라는 첨단 에스에프(SF) 소재를 가져와 관계와 믿음이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드론 택배 배달이 일상화된 ‘멀지 않은 미래’, 중산층 부부 오토네와 겐스케(다이고)는 2년 전 사고로 아이를 잃은 슬픔을 삭이며 살아간다. 망설임 끝에 휴머노이드 제작 회사 설명회에 간 부부는 7살 가케루와 똑같은 모습의 휴머노이드를 집에 들인다.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아들을 반기듯 스스럼없이 휴머노이드를 받아들인 오토네는 시간이 지날수록 평범한 아이와 다른 모습을 불쑥불쑥 보여주는 가케루에게 이질감을 느낀다. 처음엔 ‘진짜 아들이 아니라 기계일 뿐’이라고 되새기며 “아저씨라고 불러”라고 무뚝뚝하게 굴던 겐스케는 점점 마음이 흔들리며 죽은 아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되살아난다.

영화 ‘상자 속의 양’. 뉴 제공

곁에 없는 아들을 복제한다는 설정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에이. 아이.’(2001)를 떠올리게 한다. ‘에이. 아이.’의 휴머노이드가 ‘사랑’이라는 하나의 열망만 심어진 로봇이었다면, 20여년 뒤 생성형 인공지능이 현실화된 ‘상자 속의 양’의 가케루는 좀 더 독립된 인격체처럼 느껴진다. 가케루는 또래 아이들과 달리 금세 엄마의 감정을 읽는 법을 익힌다. 하지만 이런 모습에 엄마는 불편함을 느끼고 가케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휴머노이드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지난 4일 내한한 고레에다 감독은 죽은 사람을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부활시키는 사업이 인기를 끈다는 외신 기사를 보고 영화를 구상했다고 했다. 그는 중국 상하이의 해당 업체를 취재하면서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절실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동시에 죽은 이의 존재는 대체 누구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영화는 죽은 이를 복제하는 기술 진보의 의미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미래 사회의 전망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질적인 존재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인간적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등이다.

영화 ‘상자 속의 양’. 뉴 제공

오토네와 겐스케는 평범한 부부이지만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겪는 내밀한 고통과 죄책감을 공유하지는 못한다. 가케루가 집에 온 뒤 느끼는 각자의 혼란 역시 마찬가지다. 고레에다는 “사람과 휴머노이드뿐 아니라 남편과 아내도 이질적 존재”라며 “아이가 성장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부모가 자신과 다른 존재로서 자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가케루의 변화를 대하는 부모의 감정적 변화는 실제 아이의 성장과 독립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과 꽤 많이 겹친다.

영화는 ‘어린 왕자’의 상자 속 양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즉 상상력이 관계의 빈틈을 채울 수 있는 인간의 힘이라고 말한다. 기술 발전으로 개인 간의 틈이 점점 더 벌어질 미래에 사람다움을 지킬 수 있는 건 상자 속 양을 들여다보는 상상력이라는 의미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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