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60% 고객 갑질 대책 미비···중소기업은 대응에 더 어려움 겪어

김정욱 기자 2026. 6. 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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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부터 고객 갑질 대응 의무화···“정당한 민원 경계 모호”
“업계별로 고객 갑질 사례와 효과적 대응 방안 공유가 중요”
AI(챗GPT) 생성 이미지

일본 기업들이 고객의 폭언·폭행 등 이른바 ‘고객 괴롭힘(고객 갑질)’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대응이 아직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는 9일 “일본 최초로 고객 갑질 방지 조례를 제정한 도쿄도의 조사에 따르면 대응 지침이나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기업이 전체의 60%에 달했다”며 “특히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대응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는 고객 갑질을 ‘카스하라’라고 하는데 고객이 기업이나 직원에게 부당한 요구 또는 과도한 민원을 제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오는 10월부터 일본 내 모든 기업에는 카스하라 방지 대책 마련이 의무화된다.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대응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업 간 사례 공유와 정보 교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 4월 말 온라인으로 열린 고객 갑질 대응 세미나에서는 서비스업, 소매업, 부동산업 등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업종 관계자들의 고민이 잇따랐다. 참석자들은 “어디까지를 고객 갑질로 볼지 기준을 정하기 어려워 매뉴얼 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침은 마련했지만 직원 교육과 사내 홍보가 충분하지 않아 실제 대응은 각 부서에 맡겨져 있다”고 토로했다.

세미나를 주최한 교육업체 임프레션러닝 측은 “무엇을 ‘과도한 요구’로 판단할지는 각 기업이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고객의 요구가 타당한지 여부 뿐 아니라 어떤 방식과 태도로 얼마나 반복적으로 요구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2024년부터 카스하라가 사회문제로 부상했으며, 같은 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 동안 고객 갑질은 기업별 자율 대응에 맡겨져 있었으나 2025년 4월 도쿄도와 홋카이도 등이 고객 갑질 방지 조례를 마련해 시행했다.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침에 따르면 큰 소리로 반복적으로 직원을 몰아세우며 금전을 요구하는 행위, 무릎 꿇고 사과할 것을 강요하는 행위, 직원의 얼굴이나 명찰을 촬영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하는 행위 등이 고객 갑질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일본의 관련 법률에 따라 협박죄나 명예훼손죄 등이 성립할 수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고객이 해서는 안 되는 행위와 기업이 마련해야 할 대책 등을 담은 관련 조례가 10개 이상의 지자체에서 시행되고 있다. 도쿄도와 같은 시기에 조례를 시행한 미에현 구와나시 관계자는 “지역 소매점들로부터 고객 갑질 방지 포스터와 스티커만 부착해도 악성 민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조례 제정이 확산되는 가운데서도 실제 현장에서는 대응 기준을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적지 않다. 도쿄도가 올해 3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한 15개 업종 4727개 기업 가운데 약 60%가 직원 보호를 위한 고객 갑질 대책을 시행하지 않고 있었다.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이유로는 ‘정당한 민원과의 구분이 어렵다’는 응답이 29.6%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대응 노하우 부족’(23.8%), ‘발생 현황 파악의 어려움’(16.7%) 순이었다.

임프레션러닝은 한 슈퍼마켓 사례를 소개했다. 고객이 “구입한 반찬에서 이물질이 나왔다”, “유통기한이 남아 있는데 맛이 이상하다”고 항의했지만 점포 측이 사실관계 확인과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면서 직원이 무릎을 꿇고 사과하거나 장시간 사과를 강요받는 상황으로 번졌다. 임프레션러닝은 “식품 안전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고객의 불안과 분노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며 “하지만 문제는 고객의 요구가 어디서부터 과도한 수준으로 넘어가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이 일반 소비자가 아닌 거래처 기업인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한 광고 제작회사는 거래처로부터 “디자인이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계약 범위를 벗어난 수정 작업을 여러 차례 무상으로 요구받았으며, 담당자는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까지 들었다고 한다.

카스하라 문제를 연구하는 이케우치 히로미 간사이대학 사회심리학 교수는 “고객의 언행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개인마다 다르다”며 “상대가 일반 소비자인지 기업인지, 상품과 서비스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따라서도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2025년 6월 개정된 노동시책종합추진법에 따라 올해 10월부터는 모든 기업이 카스하라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들은 직원 상담 창구 설치, 대응 매뉴얼 작성 등을 추진해야 하지만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도쿄도 조사에서도 이러한 격차가 확인됐다. 직원 수 1000명 이상 기업의 경우 80% 이상이 이미 관련 대책을 시행하고 있었지만 직원 수 30명 미만 기업은 30%에 그쳤다.

이케우치 교수는 “피해 예방 대책을 현장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업계별로 고객 갑질 사례와 효과적인 대응 방안을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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