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극우는 혐오와 조롱을 ‘놀이’ 처럼 소비하나

이병권 인문연구가 2026. 6. 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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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에 대해 묻다 ①] 민주 공론장 교란
전쟁 영웅 존 메케인을 '포로'라며 밈·짤로 조롱
미 '대안 우파'·MAGA의 디지털 문화전쟁 흉내
역사적 비극을 희화화, 놀이 소재로 둔갑시켜
치밀한 계획 하에 분노·냉소를 정치적 조직화
이론보다 밈, 토론보다 조롱의 전파력에 주목
한국은 국정권 댓글공작·기무사 심리전이 기원
현실정치 극단화하고 거리의 정치폭력과 결합
공감 능력 해체하고 공적 세계 붕괴까지 초래

극우의 혐오와 조롱은 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가. 민주공화정은 왜 지금 다시 보다 심각한 근본적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 이 시리즈는 단순한 정치비평이 아니다. 디지털 플랫폼과 인지전, 극우의 감정정치, 미국식 자유주의와 동아시아 공론 전통,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공화정의 역사적 정체성까지 연결하며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정면으로 분석한다.

특히 이번 연재는 서구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전통은 물론, 맹자와 동학,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이르는 한국 민주주의의 사상적 뿌리까지 되짚으며 시민의식과 공론장의 역사적 의미를 복원하고자 한다.

필자 이병권 작가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민주공화정의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는다. 그는 표현의 자유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무제한적 권리가 아니라 시민이 함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어렵게 발전시켜온 공론의 질서라고 강조한다.

특히 마지막 7편에서 제시된 민주공화정 수호를 위한 개혁 과제들은 단순한 정책 제안이 아니라 오늘 대한민국 사회가 반드시 직시하고 풀어나가야 할 역사적 과제에 가깝다. 이번 연재는 혐오와 조롱, 인지전과 극우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다시 어떤 민주주의와 어떤 공동체를 선택해야 하는가를 깊이 숙고하게 만든다.(편집자 주)
오늘날 혐오와 조롱은 단순한 감정표현 이 아니라 플랫폼 알고리즘 속에서 증폭되는 정치적 동원 기술로 변하고 있다.

■ 조롱이 된 애도, 놀이가 된 비극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애도의 공간조차 조롱의 무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현장에서는 혐오 표현이 '인증 콘텐츠'처럼 소비되고, 5·18민주화운동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은 밈과 짤의 형태로 유통됩니다. 공동체의 비극은 냉소 속으로 흡수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문화가 조금 거칠어진 정도로 넘기기에는 그 결이 심상치 않습니다.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 이후에도 극우적 감정정치와 혐오의 문화가 한국사회 내부에서 계속 증식하고 있으며, 그것이 점점 더 조직적이고 일상적인 형태로 스며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를 맞은 봉하마을 추모 현장에서는 일부 극우 성향 청년들이 고인을 조롱하는 표현과 행동으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한겨레, 2026.5.24). 일부는 'MC무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 장면과 음성을 왜곡 편집해 희화화한 극우 인터넷 문화의 대표적 표현입니다. 또 다른 일부는 '운지'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서거를 조롱하기 위해 극우 커뮤니티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혐오 은어입니다. 원래 인터넷 방송인 이름에서 파생됐다는 설도 있으나, 실제 한국사회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의미로 소비되며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포스트잇과 방명록에 이런 표현을 남기고, 이를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인증사진' 형태로 게시하며 소비했습니다. 애도의 공간은 어느 순간 인터넷 놀이문화의 무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슬픔은 조롱거리가 되었고, 공동체의 기억은 냉소적 콘텐츠로 소비됐습니다.

비슷한 논란은 최근 신세계그룹 계열 스타벅스코리아 행사에서도 나타났습니다(MBC, 2026.5.19).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는 5·18민주항쟁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다시 밈(meme·인터넷상 반복 소비되는 이미지·농담)과 짤(온라인 패러디 짧은 이미지 영상)의 형태로 유통됐습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문장은 원래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거짓 해명을 상징하는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문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극우 인터넷 문화 속에서는 역사적 비극조차 냉소적 놀이 콘텐츠로 변형되고 있습니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정용진 회장은 2026년 5월 26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습니다. 그는 "모든 책임은 제게 있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동시에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표현을 사용해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받았습니다(주간조선, 2026.5.26). 이후 여론은 오히려 더 악화됐습니다. 무엇을 왜 잘못했는지에 대한 인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고(경향신문, 2026.5.26), 과거 그가 반복적으로 보여준 '멸공' 발언과 극우적 정치행보 역시 다시 소환됐습니다. 특히 정용진 회장은 미국 MAGA 진영과 연결된 보수진영의 후원 네트워크인 '록브리지코리아(Rockbridge Korea)' 이사로 활동해왔다는 점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과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극우적 정치행보나 과거 발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계와 언론에서는 당시 신세계그룹이 상당한 재정적 부담에 직면해 있었다는 분석이 이어졌습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신세계그룹의 핵심 '캐시카우'로 평가받고 있으며, 미국 스타벅스 본사의 콜옵션(call option) 행사 가능성, 광주지역 스타필드 개발사업 부담, 불매운동 확산 등이 그룹 전체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YTN, 2026.5.26). 결국 이번 사과는 역사적 비극 희화화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기보다, 재정적 위기와 브랜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방어적 대응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실제로 정용진 회장은 자신의 극우적 정치행보와 미국 극우 네트워크와의 연결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논란 확산에 따른 기업 리스크 수습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는 익숙한 반응이 곧바로 이어졌습니다.

"It's just a joke."(그냥 농담이잖아.) "Why so serious?"(왜 그렇게 진지하냐.) "You're too sensitive."(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 오늘날 극우의 혐오와 조롱은 대부분 이 구조 속에서 작동합니다. 먼저 비극과 상처를 희화화합니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왜 그렇게 예민하냐"며 비판하는 사람을 다시 조롱합니다. 혐오는 놀이처럼 소비되고, 조롱은 유머처럼 포장되며, 정치적 책임은 농담 속으로 숨습니다. 미국 극우 연구자들은 이러한 방식을 "아이러니의 방패(irony shield)"라고 설명합니다. 조롱은 공격이 되고, 농담은 면책의 언어가 됩니다. 지금 한국 극우 커뮤니티와 유튜브 공간에서 반복되는 냉소와 조롱의 상당수는 미국 MAGA와 알트라이트(alt-right·대안우파) 세력이 온라인 공간에서 발전시켜온 디지털 문화전쟁의 형식을 거의 그대로 번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 미국 MAGA가 만든 디지털 문화전쟁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세력은 흔히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946~ )의 등장 이전부터 형성된 극우보수세력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이제 이 MAGA는 미국 극우 포퓰리즘과 백인보수주의, 반이민 정서, 음모론 정치가 결합된 거대한 정치문화 전체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확장됐습니다. 이른바 알트라이트(alternative right·대안 우파)는 기존 미국 공화당 보수주의보다 훨씬 급진적인 인터넷 기반 극우세력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4chan·8chan 같은 익명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커뮤니티는 원래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중심 게시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여성혐오·인종주의·음모론·극우 밈 문화가 집중적으로 유통되는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Reddit·Gab 같은 플랫폼 역시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매우 분명합니다. 긴 정치이론보다 짧은 감정 자극을 선호합니다. 논리보다 조롱, 토론보다 냉소, 사실관계보다 분노와 굴욕감을 더 강력한 정치적 동력으로 사용합니다. 한국에서 극우 네티즌들이 '일간베스트'라는 공론장을 점령해 극우의 아지트로 만든 것과 유사한 행태입니다.

대표적 사례가 존 매케인(John McCain, 1936~2018)에 대한 조롱입니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1967년 하노이 상공에서 격추돼 약 5년간 포로생활을 했던 미국의 전쟁영웅이었습니다. 미국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오랫동안 애국자의 표상으로 존경받아온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는 공개 행사에서 "나는 포로가 되지 않은 사람을 좋아한다(I like people who weren't captured)"고 말하며 그를 조롱했습니다(CNN, 2015.7.18). 이후 MAGA 온라인 문화는 이를 다시 밈과 짤로 소비했습니다. 미국 보수주의가 스스로 존중해온 애국과 희생의 상징조차 냉소의 대상으로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1973~2020)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2020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백인 경찰의 무릎 압박으로 사망한 흑인 남성이었습니다.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는 그의 마지막 말은 전 세계적 충격을 불러왔고,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일부 극우 커뮤니티에서는 경찰의 무릎 압박 장면을 패러디한 밈이 유통됐습니다. 타인의 죽음과 공동체의 비극이 인터넷 놀이문화 속으로 흡수된 것입니다.

2022년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1940~ ) 미국 하원의장의 남편 폴 펠로시(Paul Pelosi)가 괴한의 습격으로 중상을 입었을 때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일부 MAGA 성향 커뮤니티와 극우 인플루언서들은 사건을 조롱하는 밈과 음모론을 퍼뜨렸고, "왜 그렇게 진지하냐(Why so serious?)", "그냥 농담인데(It's just a joke)"라는 반응으로 비판을 흘려보냈습니다(The Washington Post, 2022.10.30).

공동체적 충격과 폭력의 사건조차 냉소와 놀이의 소재로 바꾸는 방식입니다.

계속해서 현대 극우는 시민사회의 공감 능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여왔습니다. 애도의 감각을 조롱하고, 역사적 비극을 희화화하며, 결국 모든 것을 냉소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공동체의 슬픔은 어느새 콘텐츠가 되고, 시민적 공감 능력은 놀이와 냉소 속에서 조금씩 마비됩니다. 공론장은 서로 다른 시민들이 최소한의 사실과 감정, 현실 인식을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비극조차 냉소와 놀이의 소재가 되는 순간, 시민들은 더 이상 같은 현실을 공유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민주공화정의 공론장은 가장 먼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공동의 현실과 공감 능력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는 선거 이전에 먼저 공론장 안에서 붕괴하기 시작한다.

■ 스티브 배넌과 '문화전쟁'

이러한 흐름 뒤에는 분명한 전략가들의 치밀한 논리와 주장이 존재합니다. 대표적 인물이 스티브 배넌(Steve Bannon, 1953~ )입니다. 그는 MAGA의 주장과 정당성을 이끌어가는 대표적 이론가이자 트럼프 1기 백악관 수석전략가였으며, 미국 극우 디지털 정치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됩니다. 배넌은 반복적으로 "정치는 문화의 하부에 위치한다(Politics is downstream from culture)"고 주장해왔습니다(The Guardian, 2018.11.18). 정치권력은 선거 결과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문화와 감정구조, 일상적 상식과 언어를 장악해야 정치 역시 따라온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는 특히 게임 커뮤니티와 인터넷 하위문화의 정치적 가능성을 일찍부터 주목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의 극우 연구자들은 배넌이 온라인 남성 커뮤니티와 게임문화 내부에 존재하던 분노와 냉소, 반엘리트 감정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합니다(Bloomberg, 2015.10.8).

여기서 자연스럽게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의 『옥중수고(Prison Notebooks)』가 떠오릅니다. 그람시는 권력이 군대와 국가기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학교·언론·문화·일상 언어 같은 시민사회 공간 속에서 사람들의 상식과 감각을 장악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것을 '진지전(war of posi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일부 극우세력이 이 개념을 사실상 역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선거 이전에 먼저 인터넷 문화와 감정 구조를 장악하려 했습니다. 긴 이론보다 짧은 밈이 더 빠르게 확산되고, 토론보다 조롱이 더 강한 전파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극우 유튜브와 커뮤니티 공간에서 반복되는 조롱과 냉소는 우발적 감정 표출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정을 조직하고, 공론장을 피로하게 만들며, 시민적 판단력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신뢰를 해체하고, 공동체적 연대감을 냉소의 대상으로 바꾸며, 결국 "모든 것은 위선이고 조롱거리일 뿐"이라는 감각을 사회 내부에 퍼뜨립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혐오와 냉소는 강력한 정치적 동원 자원이 됩니다.

■ 한국 극우와 이명박 정부 시기의 인지전

여기서 한국사회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극우의 조롱과 혐오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황이두 노무현재단 이사는 최근 여러 인터뷰와 발언에서, 오늘날 한국 극우 커뮤니티의 냉소와 조롱 문화는 이명박 정부(2008~2013) 시절 국정원 댓글공작과 기무사 심리전 활동에서 본격적으로 조직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특히 당시 국정원과 기무사는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높아진 시민사회의 비판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온라인 여론전과 심리전을 적극 수행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행위의 범법사실이 적발되고,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조직적 댓글공작과 온라인 여론조작 정황들이 상당 부분 확인됐습니다. 당연히 관련자들은 법적 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2023년 광복절 특별사면에서 이 사건의 책임자였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등을 사면했습니다(한겨레, 2023.8.14). 김관진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과 심리전 활동 의혹으로 재판을 받았던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입니다. 기무사 계엄문건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됐던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역시 귀국 이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됐고, 국정원 댓글공작과 군 심리전 사건 관련 인사들 일부도 보수진영과 극우 유튜브 생태계 속에서 사실상 정치적으로 복권되는 흐름을 보여왔습니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흐름이 이제 하나의 '극우생태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단순한 인터넷 막말이 아닙니다. 공감 능력 자체가 정치적으로 해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극우의 혐오와 조롱은 몇몇 청년들의 인터넷 일탈 수준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온라인 혐오는 유튜브 알고리즘 속에서 수익이 되고, 분노와 냉소는 조회수와 후원금으로 전환됩니다. 일부 대형교회와 정치집단은 조직적 인적 동원을 통해 거리와 광장을 채우고, 보수 성향 기성매체들은 이러한 갈등과 혐오를 반복적으로 확대 재생산합니다. 극우적 감정정치는 다시 유튜브와 커뮤니티, SNS 알고리즘을 통해 증폭됩니다. 그 과정에서 조직적 댓글공작과 심리전 경험을 축적했던 세력들이 정치적으로 재등장하고, 극우 선동과 정치폭력에 대해 충분히 엄정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사법·수사체계가 형성될 경우, 혐오와 냉소는 훨씬 빠른 속도로 사회 내부로 침투하게 됩니다.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와 이후 이어진 극우세력의 거리 선동, 음모론 정치, 법원과 선관위에 대한 공격적 불신 조장 역시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축적된 혐오와 냉소, 음모론과 적대감은 결국 현실정치의 극단화로 이어집니다. 인터넷의 조롱 문화는 어느 순간 거리의 정치폭력과 결합하고, 민주공화정의 제도 자체를 흔드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최근 서부지법 폭동 사태 역시 그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의 제도와 공론장에 대한 불신을 끊임없이 증폭시키고, 정치적 적대감을 감정적으로 조직화하며, 그 과정에서 조롱과 혐오를 놀이처럼 소비하는 문화가 이미 상당한 규모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연치고는 묘한 시간적 겹침도 존재합니다. 미국 MAGA와 알트라이트 문화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와,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의 온라인 심리전과 댓글공작이 본격화된 시기가 상당 부분 맞물려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현재로서는 미국 극우와 한국 국가기관 사이의 직접적 연계를 입증할 명확한 자료는 없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 구조와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 감정동원 방식, 남성 청년층 기반 정치문화가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합니다.

특히 오늘날 한국 극우 유튜브와 커뮤니티 공간에서 반복되는

• 조롱의 놀이화

• 혐오의 밈화

• 역사적 비극의 희화화

• "왜 그렇게 진지하냐"는 냉소

•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책임 회피

등은 미국 MAGA와 알트라이트 문화가 구축한 인터넷 기반 문화전쟁의 형식을 거의 그대로 번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It's just a joke", "Why so serious" 같은 표현은 미국 극우 커뮤니티에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대표적 인터넷 언어였고, 오늘날 한국 극우 커뮤니티 역시 이를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확산되는 혐오와 조롱의 말들을 그린 이미지. 

■ 인지전(認知戰)과 감정의 정치

최근 NATO와 유럽 안보기관들은 이러한 현상을 '인지전(認知戰, cognitive warfar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허위정보 유포를 넘어, 사람들의 감정과 인식, 공감 능력 자체를 흔드는 현대적 심리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1897~1945)는 대중을 움직이는 데 이성보다 감정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을 집요하게 연구했습니다. 그는 반복적 이미지와 선전, 공포와 분노의 자극이 대중의 판단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 1893~1946) 역시 전후 뉘른베르크 수감 과정에서 미국 심리학자 구스타브 길버트(Gustave Gilbert)와의 대화에서 "국민은 언제나 지도자 뜻에 따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Gustave Gilbert, 『Nuremberg Diary』, 1947). 그는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적을 끊임없이 강조하면 대중은 쉽게 감정적으로 동원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늘날의 권력은 과거처럼 검열과 강압만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감정과 일상 언어, 유머 감각과 놀이문화 속으로 스며듭니다. 오늘날 혐오의 언어는 단지 개인의 분노가 아닙니다.

플랫폼과 알고리즘은 그 감정을 더 자극적이고 더 중독적인 방향으로 끊임없이 증폭시킵니다.

이에 대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의 『안티 오이디푸스(Anti-Oedipus)』 영어판 서문(1977)에서 '우리 안의 파시즘'을 경고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단지 억압에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스스로 권력을 욕망하고 지배를 사랑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푸코는 그것을 단순한 인간 본성의 문제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1976), 「담론의 질서」(1970) 등에서 그는 권력이 학교·언론·문화·의학·정치 담론 같은 일상 속 제도와 규범에 스며들어 인간의 감정과 욕망, 나아가 사회의 '상식' 자체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늘날 극우의 디지털 문화전쟁 역시 바로 그런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유튜브와 SNS, 알고리즘과 밈(meme), 반복적으로 확산되는 혐오 담론은 단순한 의견 표현을 넘어 사람들의 공포와 분노, 우월감과 피해의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증폭시키는 현대적 권력기술에 가깝습니다."(Le Monde Diplomatique, 2021.6.1 / The Guardian, 2021.9.17 / The New York Times, 2022.10.23)

특히 오늘날의 인지전은 알고리즘과 플랫폼을 통해 훨씬 빠른 속도로 확산됩니다. 긴 설명보다 짧은 혐오가 빠르게 퍼지고, 사실관계보다 조롱과 분노가 훨씬 강한 정치적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극우 유튜브와 커뮤니티는 이러한 감정들을 실시간으로 증폭시키며, 혐오와 냉소를 정치적 에너지로 전환합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전체주의의 가장 위험한 징후 가운데 하나로 시민들의 공적 세계(common world)가 붕괴되는 현상을 지적했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공동의 현실과 사실을 공유하지 못하고, 냉소와 불신 속에서 타인의 고통조차 무감각하게 소비하기 시작할 때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2016)는 『영원한 파시즘(Ur-Fascism)』(1995)에서 파시즘은 단지 과거 유럽의 군사독재 체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파시즘에는 시대와 국가를 넘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의 정신적·문화적 구조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Ur'은 독일어로 '원초적', '근원적'이라는 뜻입니다. 즉 '원형적 파시즘(Ur-Fascism)'이란, 시대에 따라 형태를 바꾸며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는 파시즘의 근본적 충동을 의미합니다. 에코는 파시즘이 반드시 군복과 집단행진, 독재자 우상화, 공개 폭력 같은 모습으로만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고 경고했습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 내부에서도 반지성주의와 음모론, 차이에 대한 공포와 배타적 민족주의, 과장된 피해의식과 감정적 선동, 그리고 '강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의 형태로 반복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그는 좌절된 중산층의 불안과 적개심, 비판세력을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 정치, 그리고 선택적으로 '국민'을 규정하는 배제적 민중주의(selective populism)를 파시즘의 핵심 특징 가운데 하나로 보았습니다. 결국 에코가 경고한 것은 파시즘이 하나의 완성된 이념이라기보다, 사회적 불안과 혐오, 공포와 분노가 결합할 때 민주주의 내부에서도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는 정치적 심리 구조라는 점이었습니다."(The New York Review of Books, 1995.6.22)

■ 왜 지금 '표현의 자유'를 다시 묻는가

바로 이것이 이 시리즈를 시작하려는 이유입니다. 이 글은 혐오표현 몇 개를 비난하기 위해 쓰는 칼럼이 아닙니다. 오늘날 극우세력이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정치적 방패로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표현의 자유란 원래 무엇이며 어떤 역사적·철학적 맥락 속에서 등장한 개념인지를 다시 묻기 위해 시작하는 글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원래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한 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민이 공론장을 유지하고, 권력을 비판하며,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기 위해 형성된 민주공화정의 자유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질문해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과연 누구의 자유인가.

왕과 귀족의 특권에서 출발한 자유는 어떻게 시민의 권리가 되었는가. 미국 수정헌법은 무엇을 두려워하며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 권리처럼 만들었는가. 민주공화정은 왜 자유를 공동체의 책임과 연결해 이해했는가. 동양의 공론 전통은 표현과 책임을 어떻게 연결했는가. 그리고 오늘날 플랫폼과 알고리즘, 극우의 문화전쟁 속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떻게 혐오와 조롱의 방패로 변질되고 있는가.

이 시리즈는 표현의 자유의 역사와 민주공화정의 공론장, 미국 수정헌법의 형성과 한계, 동양의 공론(公論) 개념, 현대 플랫폼 권력과 극우의 디지털 인지전을 차례로 따라가려 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몇몇 거친 표현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체의 슬픔을 조롱으로 바꾸고, 시민적 공감 능력을 냉소 속에 침몰시키며, 민주공화정의 공론장 자체를 조금씩 마비시키는 문제입니다. 민주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습니다.

공감이 조롱으로 바뀌고, 시민이 냉소로 서로를 밀어내며, 공동체의 비극이 놀이처럼 소비되는 순간부터 조금씩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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