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해달라” 요구 봇물...몸살 앓는 삼성·하닉
용수 현실 외면·집적 생태계 위협
인프라 차질 땐 美 테일러행 우려

국내 반도체 업계가 팹(Fab·공장) 입지 선정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해외는 물론 국내 비수도권까지 투자 요구가 빗발치면서다. 국가 주도로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지만 정치·외교적 압박이 발목을 잡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해외 각국의 거센 유치전에 직면해 있다. 미국과 중국은 막대한 보조금과 관세 정책을 무기로 자국 내 생산시설 확충을 압박 중이다. 여기에 베트남 등 신흥국들까지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부지 지원을 내걸며 패키징(후공정) 및 연구개발(R&D) 거점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해외 견제가 거센 가운데 국내 정치권과 비수도권 지자체도 압박에 가세했다. 9일 지역 정가에 따르면 오는 7월 출범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핵심 사업으로 반도체 시설 유치가 거론된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당선인은 전날 “우리의 기대를 넘어설 규모의 투자 계획이 오래전부터 준비돼 왔다”며 “조만간 공식적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 균형 발전 기조를 내세운 정부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8일 기자회견에서 “산업 정책을 추진할 때 가급적 지방 투자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어 “호남 중에서도 전남광주는 통합 특별 우대를 하도록 법에 명시돼 혜택을 받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반도체 업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자체의 유치 주장이 반도체 공정의 필수재인 ‘공업용수’ 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용인 반도체 산단이 가동되는 2035년 필요한 공업용수는 하루 76만 4000톤이다. 반면 이전을 요구하는 전북 새만금(용담댐)의 일일 공업용수 여유량은 약 18만 톤에 불과하다. 영남권(낙동강)은 수량 여유가 있지만 20여 개 소규모 댐으로 취수원이 분산돼 있다. 대규모 단일 배관망을 새로 구축하려면 4조 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물 부족 대안으로 꼽히는 해수 담수화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반도체 미세 공정에는 고도로 정제된 ‘초순수’가 필수적이다. 검증되지 않은 수원을 사용하면 치명적인 공정 불량을 초래할 수 있다. 생산 비용도 일반 공업용수(톤당 400원)보다 3.75배(1500원)가량 비싸다.
지방 분산 배치는 반도체 생태계의 핵심인 ‘집적 효과(Clustering)’마저 무너뜨린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산업은 수많은 팹리스(반도체 위탁생산)와 장비, 소재 기업들이 한곳에 모여 협력해야 한다. 기존 충청권 등에 예정된 인프라가 다른 지역으로 물리적으로 쪼개지면 물류비용이 늘고 위기 대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정치 논리로 국내 인프라 조성이 지연되면 투자가 해외로 향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보유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부지는 약 500만㎡ 규모다. 향후 반도체 팹을 최대 9개까지 추가로 지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용수·전력 인프라 지원이 확실한 테일러가 오히려 국내보다 리스크가 적다”며 “용인 산단 물량 일부를 테일러로 돌리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 역시 “반도체는 철저한 집적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인 산업”이라며 “글로벌 속도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용인 클러스터 인프라 지원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휘영 장관, 국립발레단장 내정설에 “허황된 뜬소문”…‘가짜뉴스’에 직접 등판
- “여행 가서 얼마나 쓰는 거야”…한국인 카드 해외 사용액 역대급 찍었다
- “집 사려면 대기업 가야 하나” 말 나올만도…직장인들 ‘사내대출’에 몰린다
- “물 4ℓ 마시다 토할 뻔” 대장내시경 장청소 공포, 이젠 옛말
- “두 눈을 의심했다” 평범한 남성 계좌에 33조원 입금…무슨 일
- ‘젠슨황 깐부株’ 효과 벌써 끝…두산로보틱스 16% 급락
- “월 34만원, 고맙지만 ‘이 정도’는 돼야”…어르신 절반이 생각하는 기초연금 적정액은
- 강엔 고속단정, 하늘엔 드론…12㎞ 한강하구 철통경계
- “닭백숙에 넣어 끓였을 뿐인데”…30분 만에 구토·호흡곤란 속출한 이유가
- 시도때도 없이 ‘심쿵’…방치했다가 돌연사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