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람으로 왔어, 사람을 부른게 아니더라도”…비닐하우스 속 ‘속헹’들의 이야기 [플랫]

플랫팀 기자 2026. 6. 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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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이론
김숨 지음 | 민음사 | 344쪽 | 1만8000원
난 한 사람으로 왔어… 사람을 부른 게 아닌데 ‘사람이 왔다’고 재수 없어할지라도.

이것은 어떤 편지의 서두다. 쓰는 이는 미얀마인 여성 샤빼다. 한국의 한 딸기밭에서 일하며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한다. 편지를 받는 이는 샤빼보다 먼저 딸기밭에서 일하고 있던 캄보디아 출신 여성 보파다. 딸기밭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을 “한 봉지 속에 든 일회용 젓가락이나 종이컵 취급”한다. 샤빼도 자신들이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살아낸다. 그리고 딸기와 딸기밭, 현재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 이해해 보려 한다. 편지는 그 기록이다.

[플랫]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들의 ‘일그러진 코리안드림’

<딸기 이론>은 소설가 김숨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그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해 강제이주 고려인, 장애인, 조선소 노동자 등 사회의 소외된 자리에 위치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문학으로 조명해 왔다. 이번에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 자리한 인물은 여성 이주 노동자다.

경기도 포천시의 한 비닐하우스 농장 인근 폐쇄된 이주노동자 농막 기숙사 내부 모습. 성동훈 기자

보파와 샤빼는 7년째 한 딸기밭에서 딸기를 따고 한 방을 쓰며 같이 살지만 ‘친구’는 아니다. 캄보디아인인 보파는 크메르어를 쓰고 샤빼는 미얀마어를 쓴다. 말과 글이 통하지 않으니 제대로 된 소통을 해 본 적 없다. 둘 다 한국어에 서툴다. 샤빼는 그나마 한국어를 배워보려 하지만 보파는 관심도 없다. “딸기” “있어” “없어” 정도의 짧은 단어들로 그들은 대화한다.

사실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공장의 기계, 낫과 괭이 같은 것과 대화하려 들지 않는 것처럼 그저 ‘노동력’으로 존재하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소통을 위한 언어는 불필요한 능력이다. 샤빼와 보파의 사장님 부부는 어쩌면 둘이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를, 한국어를 한 마디도 할 수 없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야채김밥 한 줄을 우리 손에 들려주고는 그것의 세 배 되는 식비를 월급에서” 떼어가더라도 두 사람이 아무런 항의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저출생 고령화로 노동력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 노동자의 존재는 더 이상 가볍지 않다. 앞으로 인력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돌봄을 비롯해 전국의 농촌, 중소 공장의 현장직을 비롯해 다양한 직종에서 내국인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선이 개선된 것도 사실이나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차별받고 있는 것도 맞다.

딸기이론

<딸기 이론>이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직접 다룬다는 점에서 이들이 겪는 차별과 소외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그려진다. 다만 소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인물의 내면에 들어가 그들의 다양한 욕망과 마주한다.

일터로서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고, 논밭이 아닌 도시를 바라보며 노동자가 아닌 교환학생이기를 꿈꾸는 어린 여성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쌓여 있으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사장님 말에 ‘네’라고밖에 말하지 못하고 그렇게 번 돈을 고향 가족에게 모두 보내버리는, 어떤 면에서는 영악하고 또 한없이 순진한 이들이 바로 샤빼, 보파, 완나, 뚜라… 그리고 수많은 이름 모를 이주 노동자들이다.

2025년 10월 14일 장편소설 <간단후쿠>를 출간한 김숨 작가가 14일 서울 정동길을 걷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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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은 일본 ‘위안부’를 다룬 <간단후쿠>, 시각장애인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무지개 눈> 등 최근작에서 시적 표현과 구성을 적극 사용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시적 언어가 눈에 띈다. 시적 느낌을 강화하는 단문, 일상적이지 않은 감각을 드러내는 단어 등은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소설 속 샤빼의 상황과 어우러진다.

“보파, 너 없어. / 어제 딸기밭에, 너 없어. / 나, 너 불렀어. / 너, 대답 없어. / 딸기밭에, 너 없어.”

“나는 딸기를 노려보며 딸기가 날 삼키길 기다려. 한입에. 오케이? 딸기처럼 딸기 따는 여자애도 그냥 한입에 삼켜야 제맛이야. 나는 딸기에 삼켜지려 딸기가 내 눈에 고인 핏방울처럼 느껴질 때까지 노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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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장이 시적이진 않다. 샤빼가 자신과 주변의 상황, 일부 사건을 다루는 몇몇 부분은 소설이 사건을 다소 직접적으로 설명한다는 인상도 준다.

작가는 2년여에 걸친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이번 책을 썼다고 했다. 책에는 2020년 12월 영하 20도 한파에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자다 숨진 속헹의 이야기 등 실제 우리가 뉴스에서 본 사건도 등장한다.

▼ 고희진 기자 gojin@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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