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털리 부인의 연인 – 살아 있는 관계란 무엇인가

기호일보 2026. 6. 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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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동국대 강사
많은 부부는 아이들 때문에 산다고 말하지만, 그들을 처음 이어준 고리는 분명 사랑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참으로 어려운 개념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했다. "온 인류를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내 곁의 이웃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의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는 일이, 어쩌면 막연한 이웃 사랑보다 더 어렵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이해와 인내,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을 동반하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영화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 2022)은 D.H. 로렌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작품은 에로티시즘을 과감하게 담아낸 소설로 유명하지만, 그 명성 뒤에는 오해가 깊다. 작품은 결국 인간이 살아 있다고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본질적인 질문이며, 육체는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23세의 코니는 클리퍼드 채털리와 결혼한다. 짧은 신혼을 마치고 군에 복귀한 남편은 반년 뒤 하반신이 마비된 채 돌아온다. 아버지로부터 영국 중부 더비셔 지방의 준남작 지위와 영지를 물려받은 클리퍼드는 광산과 영지를 관리하면서 작가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충실한 아내 코니가 함께한다. 남편이 자신의 불편한 육신을 하인들에게 맡기는 것을 꺼린 탓에, 코니의 삶은 자연스럽게 남편의 시간에 종속되어 흘러간다. 그 생활은 생기 넘치던 코니를 점차 메마르게 만든다.

현실적인 타협으로 볼턴 부인이 간병인으로 들어오면서 코니는 비로소 매인 삶에서 조금씩 벗어날 여지를 얻는다. 그 틈에서 코니는 남편의 영지를 관리하는 산지기 멜러스와 관계를 맺게 된다. 시작은 육체적 관계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단순한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이며 몸과 마음을 함께 열어간다.

이 작품에서 육체는 단순한 욕구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감각에 가깝다. 클리퍼드는 아내를 하나의 역할로 규정한다. 간병인이자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존재로 묶어둔 그의 세계 속에서 '인간 코니'는 점차 사라져 간다. 그런 점에서 코니가 떠난 이유는 남편에게 사랑이 없어서라기보다, 그 사랑이 그녀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로서가 아니라, 사랑과 결혼, 아내라는 개념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유지하려는 인물에 가깝다. "차 마실 시간이 되기 전에 돌아와.", "내 곁에 있어 줘."라는 말들은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실제로는 코니의 삶이 자신의 질서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그의 말투에는 교양이 있지만, 그 안에는 무의식적인 위계가 작동하고 있어 관계를 답답하게 만든다.

결국 코니가 떠나는 것은 남편의 장애 때문도, 단순한 성적 결핍 때문도 아니다. 코니의 이탈은 살아 있는 감각을 회복하려는 선택이며,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나는 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서로에게 정신과 육체 모두로 다가가려는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관계는 유지되고 있어도 더 이상 살아 있는 관계로 경험되기 어렵다. 이 작품은 정신과 육체 어느 한쪽을 우위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두 차원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며 인간이 살아 있다고 느끼게 되는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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