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발 뺀 ‘유럽판 F-35’···갈 길 먼 유럽 방산 통합
유럽의 독자적 방위력 강화를 상징해 온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 사업이 사실상 좌초됐다. 프랑스·독일·스페인이 1000억유로(약 176조원) 이상을 투입해 추진해온 ‘미래전투항공체계(FCAS)’ 사업에서 독일이 철수를 결정하면서다.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방위 역량을 강화하려던 유럽의 방산 협력이 핵심 사업에서 난관에 부딪히면서 유럽 안보 전략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유럽판 F-35’ 꿈꿨지만

독일 정부는 8일(현지시간) 프랑스·스페인과 함께 추진해온 FCAS 전투기 개발·도입 사업을 더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독일의 사업 철수 결정은 프랑스 정부에도 사전 통보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FCAS는 프랑스와 독일이 2017년 공동 개발에 합의하고 2019년 스페인이 합류한 유럽 최대 규모의 방산 협력 사업이다.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와 독일·스페인 등이 운용 중인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대체하고, 미국 F-35보다 우수한 6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2040년까지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다. 전투기뿐 아니라 무인기(드론)와 센서, 인공지능(AI) 기반 전투 네트워크를 결합한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로 ‘유럽판 F-35’로도 불렸다.
사업 주도권·전투기 사양 놓고 충돌

사업이 무산된 배경에는 독일 방산업체 에어버스와 프랑스 다쏘항공 간 주도권 다툼이 있었다. 다쏘항공은 자사의 전투기 개발 경험과 실적을 근거로 사업 지분 80%와 하청업체 선정 등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요구했지만, 에어버스는 이에 반발했다. 양측은 지식재산권 접근 범위와 개발 권한을 놓고도 1년 넘게 갈등을 이어왔다.
전투기 성능을 둘러싼 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도 달랐다. 프랑스는 핵무기 탑재와 항공모함 운용이 가능한 전투기를 원했지만, 핵보유국이 아니고 항공모함도 없는 독일은 더 많은 무장을 탑재할 수 있는 중량급 전투기를 선호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 2월 “항공모함에 착륙할 수 있는 핵무기 탑재 전투기는 독일 공군에 필요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다만 FCAS 전체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 정부는 전투기 개발 사업에서는 손을 떼지만 전투기·드론·무인체계를 연결하는 AI 기반 ‘전투 클라우드’ 구축 등 일부 분야 협력은 계속 이어갈 방침이다. 독일과 프랑스 국방 당국은 다음 달 회담을 열어 소규모 공동 사업 중심으로 방산 협력 로드맵을 재정비할 예정이다. 프랑스 정부는 전투기 개발을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략 자립’ 강화의 꿈, 갈 길 먼 유럽

FCAS의 좌초는 유럽 방산 협력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 각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국방비를 대폭 늘렸지만 국가별 이해관계 충돌과 무기체계 비호환성, 중복 투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FCAS는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점차 발을 빼는 상황에서 군사 장비 조달의 비효율성과 호환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된 사업이었다”며 “이번 좌초는 유럽 국가들과 방산업체들이 국경을 넘어 협력하는 과정의 한계와 군사력 재건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FCAS 프로젝트의 실패는 수십 년간의 국방 투자 부족과 러시아 위협 증대, 미국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상황에서 유럽 공동 방위 구상에 큰 타격을 입혔다”고 짚었다.
독일은 이번 결정을 계기로 프랑스와의 방산 갈등을 정리하고 프랑스의 핵 억지력을 유럽 차원으로 확대하는 이른바 ‘프랑스 핵우산’ 논의 등 안보 협력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백민정 기자 mj10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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