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낙동강 방어선… 평범한 사람들 기억이 곧 역사

knnews 2026. 6. 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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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경상남도기록원 공동기획- 기록으로 보는 경남](18)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전쟁 기간 내내 산파 역할 한 지역
물자 양륙 돕고 남북 피란민 수용
도내 민간인 7만2306명 피해 막심

빨치산과 국군 사이 비극적 전투
이름 없는 희생과 슬픔으로 가득
기록, 기억 붙잡고 바로잡는 역할


조용하고 착한 앞집 아저씨였다. 산청의 작은 동네, 윗집 아랫집이 서로 마주 보던 곳에 살던 이웃이었다. 명절이면 음식을 나누었고, 언니들의 친구는 곧 그 집 언니들이기도 했다. 우리 집 문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곳이 그 집 뒷담벼락이었고, 그 벽에 기대어 우리 언니와 그 집 언니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남아선호가 여전히 남아 있던 시절, 동네의 남자들은 거칠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용인되던 분위기라 어린 내 눈에 비친 아저씨들의 모습은 대체로 ‘용맹’에 가까웠다. 그러나 앞집 아저씨는 달랐다.

1950년 8월 마산 학동리 지역에서 미 제25보병사단 제5연대 전투단이 북한군 포로를 후방 사령부로 호송하는 모습.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전갑생 기증기록./경남기록원/
1950년 8월 16일 6·25전쟁 중 마산 진동면 수변 지역에서 피란민들이 LST(상륙함)를 이용해 전투 지역 외부의 섬으로 대피하기를 기다리는 상황.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전갑생 기증기록./경남기록원/

조용하고 평온해 보였고, 그래서 더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좋아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앞집 이야기를 꺼내셨다. “저 집이 부부가 함께 마지막 빨갱이를 신고한 집이다. 그 공으로 보상받아 산 집이 바로 저 집이야.” 어린 나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친 이미지와, 앞집 아저씨의 순박한 모습 사이의 간극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2000년 5월 7일 전쟁중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평화대회, 김주완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아마도 그 불일치가 이 기억을 오래 붙잡고 있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훗날 도서관에서 ‘실록 정순덕’을 접했을 때, 앞집 아저씨가 잡았다는 ‘마지막 빨치산’이 정순덕이라는 사실을 연결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정순덕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다시 6·25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갔고, 그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들려주던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로 이어졌다. 기록을 통해 다시 만난 6·25전쟁은, 내가 기억 속에서 듣던 이야기와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함양군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경남도, 1960년) /경남기록원 소장/
전몰군경유가족대장(양산시, 1950년)/경남기록원 소장/

경상남도사(제5권 제1장 요약·발췌)에 따르면, 6·25전쟁은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목적으로 침략한 전쟁이며,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이 1953년 7월 27일 휴전에 합의하기까지 1129일(3년 1개월 2일)간 전개됐다. 전쟁으로 인해 국군과 유엔군의 인명 손실은 77만6000여 명이었고, 민간인의 피해는 남한 100만여 명, 북한 150만여 명 등 250만여 명이 발생했다. 이는 당시 남북한 전체 인구(2500여만 명)의 10%에 해당한다. 이로 인해 재산 손실, 피란민, 전쟁미망인, 전쟁고아 등이 발생하고, 이는 사회적 기반을 뿌리째 뒤흔드는 국가적 어려움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경남지역에서는 민간인 7만2306명과 건물 14만398동의 피해가 발생했으며, 1만1627가구, 5만4414명에 대한 피해가 집계됐다.

전쟁 중 양민학살 사건 진상규명, 1999년, 김주완 기증기록물./경남기록원 소장/
지리산에 남은 공비관련 기사(정순덕의 자백으로 李應祚의 시신이 발굴되었다는 내용이다) 1963년 12월 23일 마산일보. /국립중앙도서관 신문아카이브/

주요 상황으로는 지연작전기(1950. 7.24~30.) 전투로 미군과 국군이 하동과 진주지역, 함양 및 거창 일대에서 북한군 제4·6사단의 공격을 지연시켜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한 것으로 부산으로의 철수를 막는 ‘사수(死守:Stand or Die) 명령’이 있었다. 두 번째는 낙동강 방어작전기 경남지역 전투(1950. 8. 1.~9. 15.)로 창녕-영산 축선과 진주-마산 축선에서 이루어진 45일간의 공방전이었다. 이는 북한군의 최종 목표인 부산 교두보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경남지역은 전쟁 기간 내내 국민을 보호하는 산파역을 했다. 후방지역 안정과 물자의 양륙을 도왔다. 또한 많은 남과 북의 피란민을 수용하고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낸 최후의 방파제였고, 민중의 설움을 함께 품고 고민했던 어머니 품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마을(1950년 8월 10일 마산),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전갑생기증기록./경남기록원 소장/

그리고 6·25전쟁 중 경남은 지리산을 기점으로 활동한 빨치산과 이를 토벌하기 위한 국군 사이의 전투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낸 곳이기도 하다. 낮에는 군경과 우익세력이, 밤에는 빨치산과 좌익세력이 지배하면서 사람들의 생존은 하룻밤 만에 뒤바뀌었다. 낮에는 토벌작전을 하러 들어온 군경으로부터, 밤에는 ‘밤손님’이라 불리는 빨치산의 징발과 ‘반동분자 처단’이라는 보복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산청군 금서면 가현·방곡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점촌마을, 유림면 서주마을에서는 주민 705명이 희생됐으며, 거창군 신원면 박산골 등지에서도 주민 719명이 희생됐다.

(1950년 7월 19일 진주)한국전쟁 당시 미군(미 제24보병사단 제19보병연대)의 지휘소,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전갑생기증기록./경남기록원 소장/
2000년 5월 14일 지리산 외공 양민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통일기원 진혼굿, 김주완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이러한 희생 위에 1953년 9월 18일 빨치산을 총지휘하던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지리산 빗점골에서 사살돼 지리산에는 구심점을 잃은 망실공비(亡失共匪)만 남게 됐다. 이후 1956년 4월 9일 거창에서는 지리산 공비 토벌이 완료됐음을 축하하는 행사가 거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남은 이가 있었으니, 이가 서두에 이야기한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다. 1951년 남편을 찾아 산에 들어갔으나 만난 지 20일 후 남편이 사망하자 빨치산이 됐다. 1953년 부대가 와해됐으나 정순덕은 지리산에 끝까지 남아 산중에 은거해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다 10년 후 1963년 11월 12일 체포됐던 인물이다.

길가에서 울고있는 여자아이(1950년 8월 경북 군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전갑생기증기록./경남기록원 소장/

전쟁이 일어나면 영웅이 만들어지고, 이야기는 신화가 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름 없는 이들의 희생과 대를 이어 이어지는 가족의 슬픔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기억을 통해 전쟁을 들었고, 그 이야기 속에는 정순덕만이 아니라 피란길에 함께했던 우스꽝스러운 돼지와, 고단한 여정 속에서도 나누었던 소소한 웃음도 함께 있었다. 기록은 그 기억들을 붙잡아 두고, 때로는 흐릿해진 기억을 바로잡는 단서가 된다. 6·25전쟁은 분명 많은 것을 파괴한 비극의 역사였다. 그러나 전쟁은 휴전과 함께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산과 마을,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오랫동안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한다. 늘 조용하고 평온해 보였던 앞집 아저씨와 나의 아버지 역시, 그 시대의 긴 그림자 속을 지나온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1952년 6월 18일 거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발견된 포로들이 만든 무기(단검, 칼, 소총, 수류탄 등)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전갑생기증기록./경남기록원 소장/
산청군에서는 1969년 11월부터 한국전쟁의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에 대한 군민의 염원을 기리기 위한 ‘지리산평화제’를 시작했다. /산청군 소장/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소설가 이병주 선생의 문학비 글귀가 있다. 공식적인 역사 그리고 대대손손 이어지는 기억의 역사, 내가 기억하는 대한민국은 그 두 겹의 시간 위에 놓인 슬프고도 찬란한 나라다.

(2000. 10. 20)제12회 거창민간인학살희생자 추모 평화인권예술제, 김주완 기증기록물. /경남기록원 소장/

전가희 기록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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