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세계 5위’ 목표 제시…“현실성 없다” 비판 임원들의 말로

김기훈 기자 2026. 6. 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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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의 TalkTalk] 고기영 한신대 교수 ③
현대차, 1980년대 미국 수출 확대 추진
품질 문제로 수출 급감에 브랜드 추락
정 회장, 취임 후 원대한 목표 내걸고
패배주의 걷어내며 생산 3배 증가 시동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취임 후 현대차를 세계 5위 이내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사진은 정 회장이 계열사인 현대건설 사옥에서 사기를 힘차게 흔들고 있는 모습./조선일보 DB

2006년경 현대차그룹의 비자금 사건이 터져 정몽구 회장이 구속됐다. 그러자 모든 회사 경영이 올스톱 되었고 정 회장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노사 문제도 시들해졌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본사 노사관계 조직도 해체되었다. 고 교수는 글로벌경영연구소로 되돌아갔고 2009년 현대차를 퇴사했다. 이후 2012년부터 에어백과 시트벨트 분야 세계적 기업인 일본 다카타의 한국 자회사인 ㈜한국다카타에서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2014년부터 한신대에서 경제학 강의를 하고 있다.

부족한 현대차그룹 연구

―현대차그룹에 관해 연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현대차가 어떻게 세계적 기업이 되었는지 경영사적 관점에서 정리하는 책을 다른 교수 2명과 준비하고 있다. 생산 시스템, 연구·개발, 경영 일반 등 세 분야로 나눠서 집필할 예정이다. 내가 연구·개발 분야를 맡았다. 생산 시스템은 일본 메이지대학 오재훤 교수가, 경영 일반은 강릉원주대 여인만 교수가 맡았다. 3~4년 전부터 연구를 시작했는데 올해 말쯤 일본에서 책을 낼 계획이다.”

―왜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책을 내려 하나?

“한국은 기업의 역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자동차 산업만 해도 전기자동차, 완전자율주행 자동차, 미래 모빌리티(이동 수단) 같은 일에는 관심이 많은데, 현대자동차가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다. 출판사들도 소극적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기업 경영의 역사에 관심이 많고 출판사도 전향적이다. 연구자 3명 모두 도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점도 작용했다.”

자동차 연구 전문가들은 일본 도요타자동차에 비해 현대자동차의 발전사를 연구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4월 베이징모터쇼의 도요타자동차 전시 코너./EPA 연합뉴스

―현대차에 대한 연구가 이미 많이 진행되어 있지 않나?

“생산 시스템에 대해서는 비교적 연구가 많이 있다. 하지만 현대차가 설립된 1968년부터 2010년대까지 전 시기를 일관된 흐름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글은 별로 없다. 이는 경영 일반, 연구·개발 분야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특히 연구·개발 분야는 파편적인 연구가 몇 개 있을 뿐 체계적인 연구나 저술이 많이 부족하다. 이번 저술은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부터 세계적 명차 제네시스의 탄생까지 현대자동차 연구·개발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이다.”

현대차 주역 40여 명 인터뷰

―저술을 위한 자료는 충분한가?

“참고할 만한 자료가 별로 없다. 특히 1차 자료라 할 수 있는 기업의 내부 자료가 부족하다. 그래서 애로 사항이 많다. 특히 연구개발 부문은 기업 입장에서 민감한 부분이다 보니 공개된 자료가 거의 없고 기존 연구도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이번 연구에서는 생산과 연구·개발, 그리고 경영면에서 관련 인물에 대한 인터뷰에 크게 의존했다. 현대차 발전에 크게 공헌한 주역 30~40명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인터뷰했다. 1인당 2~3번 인터뷰를 진행했고 심지어 20번까지 인터뷰한 경우도 있다.”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원래는 현대차 발전에 기여한 주역들에 대한 인터뷰 기록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본에서는 도요타자동차 주역들에 대한 방대한 인터뷰 기록이 있다. 도쿄대학 등 주요 대학의 교수들이 열정을 바쳐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들은 도요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새롭게 도요타를 연구하려는 연구자들에게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런 인터뷰 기록을 남기자는 것이 최초 목적이었다. 무엇보다 현대차의 과거 주역들이 나날이 늙어가고 있어 더 늦기 전에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현대차는 남겨진 기록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 주역들이 사라지면 현대자동차의 역사는 영원히 블랙박스가 되어 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계획이 변경되어 현대자동차 발전사를 정리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전문적인 논문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서적으로 완성하기로 했는데, 대중이 보기에는 좀 어려운 서적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고 교수의 말에 확신이 가득했다. 정몽구 회장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현대차그룹은 현재 세계 3위 자동차 회사이다. 정몽구 회장은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보나?

“정 회장은 1999년 현대차 회장에 취임해 2020년경에 사실상 퇴임했다. 이 20년 동안에 현대차 그룹은 세계 4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비약했다. 자동차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분야이다. 현재의 글로벌 톱 10 기업을 20년 전과 비교해 보라. 전자 산업, IT(정보기술) 산업과 같은 분야에서는 톱 10 기업 리스트가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밑에서 치고 올라온 기업도 많고 반대로 톱 10 지위에서 밀려난 기업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20년 전 톱 10 기업이 지금도 여전히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예외적인 경우가 현대자동차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산업을 시작하여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만큼 정몽구 회장이 이룩한 성과는 대단한 것이다. 이는 모두의 노력으로 이뤄낸 것이지만 정 회장의 리더십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재임 기간에 현대차는 세계가 놀랄 정도의 혁신을 이뤄냈고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했는데, 이 모든 일을 정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했다. 정 회장의 이런 기업가 정신이 오늘날 현대차를 만든 원동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MK 경영 ① : 원대한 비전 제시

―정 회장의 성공 비결을 몇 가지 꼽는다면?

“첫째, 원대한 비전의 제시이다. 이를 통해 타성에 젖어 있던 현대자동차를 깨운 점이다.”

―예를 들면?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 회장으로 취임하고 얼마 안 있어 ‘GT5(글로벌 톱 5)’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10년 안에 미국의 GM, 독일의 폭스바겐, 일본의 도요타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원대한 목표였다. 이 목표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목표를 달성하려면 최소 연산 600만대는 되어야 하는데 당시 현대차는 연산 210만대에 불과했을 뿐만 아니라 고질적인 품질 문제까지 안고 있는, 변방의 작은 기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어떤 효과를 가져왔나?

“정 회장의 원대한 목표는 잠들어 있던 현대차 조직을 깨웠다. 당시 현대차 조직은 패배주의에 젖어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연간 30만~40만대씩 급증하던 미국 수출이 불과 3~4년 만에 품질 문제로 추락하면서 현대차의 해외 진출 의지는 완전히 꺾여 버렸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에 대한 평판은 땅에 떨어졌고 현대차는 그저 가격이 싼 맛에 한번 타보는 그런 자동차에 불과했다.

다행히 미국 수출의 격감은 1990년대에 찾아온 한국 시장의 모터리제이션(자동차의 대중화)에 힘입어 벌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 이후 현대차는 해외 시장 개척보다는 국내 시장에 안주하는 회사가 되어 버렸다. 겉으로는 여전히 해외 시장 진출을 외쳤지만 속으로는 도전 의지가 없었다. 조직은 느슨했고 패배주의가 조직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현대자동차는 1980년대에 미국 수출에 나섰으나 품질 문제 때문에 고난을 겪었다. 사진은 1980년대 현대자동차 포니가 미국에 수출되는 모습./조선일보 DB

―패배주의에 젖은 조직이 어떻게 살아났나?

“정 회장의 포부와 비전은 회사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듯, 임직원 모두 긴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일갈은 한번 던져보는 것이 아니었다. 정 회장은 한번 목표를 정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의 경영자였다. 현대정공(현재 현대모비스) 회장 시절부터 소문이 자자했다. 컨테이너를 생산하는 보잘것없는 현대정공에서 온갖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뚝심 하나로 싼타모라는 한국 최초의 SUV 자동차를 개발해낸 일은 유명하다.

정 회장이 목표를 제시한 이후 회사 전체가 술렁거렸다. 목표는 원대하지만 현실성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임원도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정 회장이 제시한 목표는 너무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이런 패배주의적 태도에 철퇴를 가했다. 본인들 명예 때문에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정 회장 취임 초기에 현실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유를 대다가 해고당한 고위직 임원이 한둘이 아니다. 이는 정 회장이 회사 조직에 보내는 경고임과 동시에 무슨 일이 있어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임직원들의 태도 변화는?

“임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악물고 죽었다 생각하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이때부터 현대차 조직은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역동적인 조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간 정 회장의 리더십, 이것이 현대차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고기영 한신대 교수는 현대차 임원 출신으로, 현대차그룹 전직 고위 간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 발전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 ④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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