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2026이 보여준 비만약 전쟁의 다음 국면…‘GLP-1 이후’ 차별화 경쟁 본격화
국내 기업도 단순 GLP-1 보유 넘어 임상적 가치 입증 과제
글로벌 비만·당뇨 치료제 시장의 경쟁 기준이 바뀌고 있다. 주 1회 주사제 중심으로 급성장한 GLP-1 계열 치료제 시장이 경구제, 복합기전, 장기지속형 제형, 동반질환 적응증으로 빠르게 확장되면서다.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당뇨병학회(ADA 2026)는 이 같은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자리였다. 과거 비만 치료제 경쟁의 중심이 '얼마나 많이 감량시키는가'였다면, 올해 학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떤 환자에게, 어떤 추가 임상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으로 부상했다.
GLP-1 계열 치료제의 시장성은 이미 입증됐다. 그러나 경쟁자가 급증하면서 단순한 계열 진입만으로는 차별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이제 개발사들은 경구 복용 편의성, 아밀린·GIP·글루카곤 등 복합기전, 월 1회 이상 지속되는 제형 기술, 신장·간·심혈관 대사질환까지 포괄하는 확장성을 앞세워 다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경구 비만치료제의 부상이다. 노보 노디스크의 경구 비만치료제 '위고비 필(Wegovy pill)'은 지난 1월 미국 출시 이후 5개월 만에 누적 처방 300만건을 넘어섰다. 특히 신규 처방 환자의 80% 이상이 기존 GLP-1 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로 집계됐다는 점은 경구제가 주사제의 대체재에 그치지 않고 치료 미진입 환자층을 새롭게 흡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라이 릴리의 경구 GLP-1 치료제 '파운다요(Foundayo·orforglipron)'도 같은 흐름에 있다. 음식이나 물 섭취 제한 없이 복용할 수 있는 비펩타이드 소분자 경구 GLP-1 제제라는 점을 앞세워 위고비 알약과 차별화된 편의성을 강조하고 있다. ADA2026에서 공개된 ATTAIN-1 임상 3상 세부 분석에서는 폐경 전·폐경 이행기·폐경 후 여성 모두에서 의미 있는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됐다.
이는 비만약 경쟁이 평균 체중감량률 중심에서 성별, 연령, 호르몬 상태, 동반질환 등 세부 환자군 중심으로 세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치료제가 늘어날수록 시장은 단순히 '가장 강한 약'이 아니라 '어떤 환자에게 더 적합한 약인가'를 묻게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바이오텍의 추격도 본격화되고 있다. 아스클레티스는 ADA2026에서 경구 GLP-1 후보물질 ASC30과 경구 아밀린 수용체 작용제 ASC39, 경구 GLP-1/GIP/glucagon 삼중작용제 ASC37 데이터를 공개했다. ASC30은 미국 13주 임상 2상에서 위약 보정 평균 체중감소율 5.4~7.7%를 보였고, 회사는 글로벌 3상 진입을 준비 중이다.

GLP-1 계열 내부에서도 차별화 경쟁은 더 정교해지고 있다. HK이노엔이 국내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도입한 에크노글루타이드는 위고비와의 직접 비교 임상에서 우수한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에크노글루타이드는 세계 최초 cAMP 편향 GLP-1 수용체 작용제로, 신호 전달 선택성을 높여 효과와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하도록 설계된 약물이다.
중국 파트너사 사이윈드 바이오사이언스가 ADA2026에서 발표한 임상 2상은 중국 17개 연구센터에서 비만 성인 환자 16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에크노글루타이드 또는 위고비, 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를 동일 유지 용량인 2.4mg으로 주 1회 투여받았다. 20주 차 기준 최소제곱평균 체중 변화율은 에크노글루타이드 투여군 -12.8%, 위고비 투여군 -9.5%로 나타났다. 체중이 10% 이상 감소한 환자 비율도 각각 74%, 40%로 차이를 보였다.
이 결과는 후발 또는 도입 신약이 기존 블록버스터와 경쟁하기 위해 무엇을 입증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같은 GLP-1 계열이라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직접 비교 임상에서의 우위, 내약성, 국내 개발 단계, 환자 접근성까지 함께 설명해야 시장 진입 논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HK이노엔은 2024년 사이윈드 바이오사이언스와 에크노글루타이드의 국내 개발 및 상업화를 위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으며, 현재 비만과 당뇨병 적응증으로 국내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복합기전 경쟁도 ADA2026의 핵심 흐름이었다. 노보 노디스크의 카그리세마(CagriSema)는 아밀린 수용체 작용제 카그릴린티드와 GLP-1 수용체 작용제 세마글루티드를 결합한 고정용량 복합제다. 이번 학회에서 공개된 REIMAGINE 1, 2, 3 연구는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 카그리세마가 혈당 조절과 체중 감소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REIMAGINE 시리즈에서 카그리세마는 초치료 환자부터 기저 인슐린 투약 환자까지 다양한 제2형 당뇨병 환자군에서 HbA1c와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했다. 특히 과체중 또는 비만한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REIMAGINE 2에서는 카그리세마 2.4mg/2.4mg군의 HbA1c 감소폭과 체중 감소율이 세마글루티드 단독요법을 상회했다.
이는 GLP-1 단독요법 이후의 개발 전략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준다. 비만과 당뇨병 치료가 분리된 시장이 아니라 혈당, 체중, 식욕, 에너지 대사, 간·신장 대사지표를 함께 관리하는 방향으로 재편되면서, 하나의 기전만으로는 충분한 차별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원제약과 팜어스바이오사이언스가 공동 개발 중인 4중 작용제가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해당 후보물질은 GLP-1, GIP, 글루카곤과 함께 가스트린(Gastrin) 호르몬에 동시에 작용하도록 설계됐다. GLP-1, GIP, 글루카곤에 작용한다는 점은 일라이 릴리가 개발 중인 레타트루타이드와 유사하지만, 여기에 가스트린 호르몬 분비 촉진 작용을 추가해 췌장 기능 개선과 간 기능 개선 가능성을 차별화 포인트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복합기전 경쟁은 기대만큼 검증 부담도 크다. 작용 기전이 늘어날수록 체중 감소 효과뿐 아니라 혈당, 체성분, 근손실, 위장관계 이상반응, 장기 안전성, 대사질환 개선 효과를 균형 있게 입증해야 한다. 글로벌 빅파마가 대규모 후기 임상으로 근거를 쌓는 상황에서 국내 후발주자는 초기 데이터의 강점을 실제 환자 대상 장기 임상으로 연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경구제와 복합기전이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장기지속형 제형이다. 경구제가 주사제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방식이라면,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만성질환 치료에서 복약 순응도와 치료 지속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지투지바이오는 ADA2026에서 카그리세마, 터제파타이드, 레타트루타이드를 1개월 지속형 주사제로 개발할 수 있는 전임상 약동학 데이터를 공개했다. 자체 약물 전달 플랫폼 '이노램프(InnoLAMP)'를 기반으로 고함량 약물 탑재와 초기 과방출 제어 기술을 적용했고, 전임상 설치류 실험에서 첫 투약 이후 24시간 내 초기 방출을 5% 미만으로 제어하면서 혈장 내 약물 농도를 28일 이상 유지했다.
인벤티지랩도 세마글루티드 기반 월 1회 장기지속형 주사제 후보물질 IVL3021과 터제파타이드 기반 후보물질 IVL3024의 전임상 데이터를 공개했다. IVL3021은 비만 동물모델에서 용량 의존적인 체중 감소 효과와 지방량 감소, 지질대사 개선 가능성을 보였고, 위고비 투여 후 IVL3021로 전환하는 유지요법 전략에서도 체중 감소 상태가 유지되는 결과를 제시했다. IVL3024는 미니피그 약동학 평가에서 단회 피하주사 후 2개월 동안 안정적인 약물 노출을 유지했다.
이들 데이터는 아직 전임상 단계라는 한계가 있지만, 시장의 미충족 수요를 분명히 겨냥하고 있다. 비만 치료는 단기간 감량보다 장기 유지가 중요한 질환 관리 영역이다. 실제로 GLP-1 계열 치료제는 투약 중단 이후 체중 재증가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월 1회 또는 수개월 지속형 제형은 경구제와 다른 방식으로 환자 편의성과 치료 지속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이다.
ADA2026에서 확인된 또 다른 흐름은 비만·당뇨 치료제 경쟁이 신장, 간, 혈압, 체중 등 동반질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큐라클은 당뇨병성 신증 치료 후보물질 CU01의 임상2b상 하위분석 결과를 통해 표준치료 이후에도 남는 잔여 위험을 겨냥했다.

동아에스티는 SGLT-2 억제제 DA-2811, 제품명 다파프로와 포시가의 비교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제2형 당뇨병 환자 225명을 대상으로 한 24주 임상에서 DA-2811은 HbA1c 변화에서 포시가 대비 비열등성을 입증했고, HDL-콜레스테롤, 중성지방, 간 효소, 요산, 혈압, 체중, 허리둘레 등 다양한 대사 관련 지표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이 같은 결과들은 ADA가 더 이상 혈당 강하제만의 무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당뇨병 치료의 평가는 혈당 조절을 넘어 신장 보호, 간 대사 개선, 체중 조절, 혈압 관리, 심혈관·신장 대사 위험 감소로 확장되고 있다. 비만 치료제 역시 체중감량률만으로 평가받기보다 동반 대사질환을 함께 개선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기회와 부담이 동시에 커졌다. 일동제약그룹의 신약개발 계열사 유노비아가 개발 중인 ID110521156은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의 저분자 경구 신약 후보물질로, 임상 1상 반복투여 시험에서 4주 기준 200mg군 평균 체중감소율 9.9%, 최대 13.8%를 확인했다. 반복투여 시 체내 축적성이 확인되지 않았고 식이 영향도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져 경구 GLP-1 경쟁 구도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해당 데이터는 건강한 성인 대상 초기 임상 1상 결과다. 글로벌 경쟁에서 의미 있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비만 환자 대상 장기 투여 데이터와 대규모 유효성·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 이는 일동제약뿐 아니라 국내 비만·대사질환 개발사 전반에 해당하는 과제다.
한미약품은 HM15275와 에페글레나타이드 후속 연구, 근육량 보존을 목표로 하는 HM17321, MSD에 기술이전한 MASH 후보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드 등을 통해 체성분 개선과 대사질환 동시 치료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MASH와 대사질환 영역을 중심으로 개발을 진행 중이며, 펩트론과 인벤티지랩은 장기지속형 플랫폼 기술을 앞세우고 있다.
결국 ADA2026은 비만·당뇨 치료제 시장이 'GLP-1을 보유했는가'의 단계에서 '어떤 GLP-1인가, 무엇을 더 입증했는가'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구제는 치료 접근성을 넓히고, 복합기전은 혈당·체중·대사 조절을 동시에 겨냥하며, 장기지속형 제형은 치료 지속성을 높이고, 동반질환 적응증은 시장의 외연을 넓힌다.
업계 관계자는 "GLP-1 계열 약물만으로 기술수출이나 기업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시기는 사실상 지나가고 있다"며 "글로벌 빅파마가 경구제와 복합기전, 동반질환 적응증까지 경쟁 범위를 넓히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들도 체중감량 외 추가 임상적 가치를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만·대사질환 시장의 성장성은 분명하지만, 경쟁의 문턱도 높아졌다. ADA2026 이후 신약 개발의 승부처는 단순한 체중감량률이 아니라 환자군, 투여 편의성, 장기 유지 가능성, 동반질환 개선 효과를 아우르는 종합적 임상 가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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